빛의걸음걸이2011. 6. 19. 05:30






책은 요즘 잘 집중이 안되고 그나마 영화는 시청각을 고스란히 내어주어야 하는 탓에 좀 나은 것 같다. 보름 쯤 전에는 극장에서왕의 남자를, 그제는 사랑을 놓치다를 봤고 연휴에는 채널을 돌리다가 여선생 vs 여제자와 ...홍반장을 우연히 봤다. 요즘 스크린쿼터 축소 때문에 시끄러운데, 보는 영화의 팔할 이상이 우리 영화가 된 지도 벌써 한참. 문화주권이니 문화다양성이니 다 중요하고 지켜야하지만, 누군가의 말마따나 스크린쿼터에 목 매는 영화인들이 우리 농민분들이나 노동자들의 싸움에도 힘을 보태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사실 별 기대없이 영화는 보고 싶은데 마땅히 볼 게 없어서 고른 거였다. 이준기에 목을 매고 있는 공부방의 6학년 여자애들은 연합캠프를 가서도 밤에 '마이걸'을 보겠다고 졸라대고는 했는데, 딱 내가 좋아할 슬림형 꽃미남이기는 하더라만 나이를 먹어선지 이제는 그저 그렇다. 영화가 관객몰이를 시작하면서 이준기와 감우성과 정진영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고, 연산과 남사당패를 새롭게 조명하는 뉴스도 간혹 접했다. 그 즈음 한겨레에 실렸던 한 평론가의 이야기가 나는 더 인상적이고 공감이 갔는데, 어떻게 보나 동성애 영화인 왕의 남자에 대한 관객과 평단의 동성애에 대한 비언급에 관한 것이었다.
 

한양으로 도망친 장생과 공길이 시전 구경을 하다가 떡값을 물어보고 돌아서는 장면이 있었다. 돌아선 장생이 훔쳐 온 떡을 자기 입에 던져 넣고 공길에게도 하나를 건네줬는데, 그때 장생을 보던 공길의 표정이 나는 기억에 진하게 남았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연인에게로 향하는 부드러운 미소. 궁에서의 공연이나 연산과의 관계, 장생과의 갈등 같은 하일라이트가 꽤 여러 번 등장하지만 시전에서의 공길의 표정만큼 그 감정이 근원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게는. 보는 나까지 순간 무방비상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던 그 표정이 참 좋았다.



2006-01-31 02:2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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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