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03. 1. 13. 23:23
요절, 강렬한 시대착오의 매력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만을 소란스럽게 고민하는 현실에서 요절이라는 단어는 낯설고 시대착오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천재 예술가의 요절이라는 분명 거부할 수 없는 퇴락과 염세의 매력을 담고 있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대상은 나혜석, 구본웅, 이중섭, 오윤 등 그 이름이 익히 알려진 작가로부터 조선조의 윤두서, 이인상, 내게는 낯선 이름이었던 전 기, 김종태 등으로 (일반인에 대한) 유무명을 막론하고 예술에 생을 걸었던 인물들이다. 옴니버스 인물 열전의 형식으로 쓰여져 한 인물에 할애되는 분량의 한계는 있지만, 말미에 덧붙여진 참고자료의 방대함이 아니라도 이 책에 들인 저자의 애정과 진심은 평전과 비평을 곁들인 객관적인 해설 사이로 보이는 감정 이입적 글쓰기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름을 따르는 전형적인 수사들과 몇 점의 대표작으로 이미 박제가 되어버린 그들의 삶이, 죽음과 함께 연소된 예술혼과 고독하고 지난했던 생을 향한 저자의 진정어린 감탄과 애도로 행간을 통해 살아 전해지는 느낌이랄까.미처 알지 못했던 생과 사의 주인공들이 그저 요절한 천재예술가라는 진부한 이름 뒤에 가려져버린 아쉬움만큼이나 모노톤으로 조용히 가라앉은 책 표지의 잔잔함 역시 아쉽기 그지없다.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기력과 자기 소외에 빠져 공허한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나누고 싶은 쓸쓸함이 담겨있는, 그리고 조금은 살아야겠다는 새삼스런 기대마저 일게하는 고마운 책.


 
요절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예술가
지은이 조용훈 (효형출판,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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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