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 관심을 갖는 일은, 어린 시절의 내가 조금은 깊어지거나 멋있어지는 듯한 묘한 허영심과 환상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게다가 '카프카'라는 건조하지만 절도있는 발음과 '프라하'라는 그가 태어나 묻힌 우아하고 울림이 있는 땅의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뜻모를 매혹에 사로잡히게 만든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어릴 적 읽었던 책 속에서의 그는 상상불가한 이야기들을 너무나 태연하고 진지하게 풀어내는 이해할 수 없지만 매력적인 인물이었고, 이후에 보게 된 영화 속에서 그는 어둡고 갑갑한 브라운관 속의 방황이 마치 운명처럼 잘 어울리는 음울한 인물이었다. 내가 만난 그의 책들은 거의가 어두운 무채색톤의 포장을 두르고 있었고, 책날개에 담긴 그의 사진 역시 병색이 완연한 창백함 위에 예민한 신경을 두 눈에 곤두세운 모습이었다. 그런 사진들을 보고 어떤 친구는 불길하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섬짓하다고 했다.
어리버리 짐을 꾸려 배낭여행을 떠났던 지난 가을,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쉬어가는 물가 싸고 볼 것 많은 고풍스런 도시 프라하에서의 3박 4일이 내겐 무척이나 특별한 기대와 황홀의 날들이었다. 쉽게 다시 오지 않을 기회, 프라하에서 나의 테마는 카프카. 게으른 여행자의 가상한 열심에 부응하듯 마침 그 곳에서는 '카프카-프라하전'이라 이름 붙은 잔 패트릭(?)이라는 작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간 그 곳의 사진들은, 내가 익히 봐왔던 흑백의 창백한 카프카와 너무나 어울리는 조금은 음산하고 조금은 비밀스러운 그의 날들의 기록이었고, 유대인 지구 한 구석에 번잡함을 피해 자리 잡은 까페 '프란츠 카프카' 역시 편치만은 않은 나른함으로 내가 가진 그의 이미지의 끈을 이어주는 곳이었다. 또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간 황금소로에 자리한 카프카가 머물며 글을 썼다는 오틀라의 집은, 카프카의 책이 잘 보이게 전시해놓은 아담하고 사랑스러운.. 실망스럽지 않게 조용한 책방이였다.
<카프카의 엽서 -누이에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산 책 중에서 읽을 책을 고른다'는 얼마 전 들은 김영하님의 명언(?)대로, 그에 대한 도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야 책장을 덮은 이 책은 '투병한 카프카. 요절한 카프카. 불행한 카프카. 멋있는 카프카' 로 이어지는 망자에 대한 나의 몹쓸 환상을 통쾌하게 박살내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담고자한 탓인지, 특이한 편집으로 성의를 보이려한 탓인지,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임에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카프카가 '그냥' 좋은 나같은 얼치기에게는,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에 꽤 많은 답을 주는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 대한 얘기가 너무 짧긴 하지만.. 사실 별 할 말은 없기 때문에.
2001-07-05 03:11,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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