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너무 많은 노래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와의 상관이라면 기껏해야 잘 듣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듣는다는 정도, 노래가 없는 일상을 상상하면 마음이 심히 갑갑해진다는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음계와 박자와 화음과 등등의 노래의 룰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이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주제 넘는 걱정에 마음이 쓰이던 한 때가 있었다. 물론 이런 나의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노래는 오늘도 또 내일도 끊임없이 새롭게 흘러나올 것이다. 비록 도가 넘는 리바이벌과 리메이크의 행렬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그 역시 새로움이라면 달리 할 말은 없으니.
한차현의 소설을 읽으면서 불현듯 이런 예전의 생각들이 떠오른 건 왜인지 잘 모르겠다. 소설은 이제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물론 난 그런 주제를 마음에 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꽤 오래 집착하는 윤대녕과 김영하, 전경린에 이어 누군가 새로운 요즘 얘기를 풀어줄 사람을 기다리고도 있었던 것 같다. 소설 마당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본다면 나와 맞는 글 몇 가닥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내게로 다가온 어떤 심상찮은 글들의 여운을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의 에디터스 초이스라는 형광(?) 연두색 글씨에서 난 마음 놓고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처음엔 너무 경쾌하고 리듬감이 느껴지는 산문체의 제목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주저했었지만, 각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모든 것은 상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골라잡은 책이다. 솔직히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쩌면 감기는 눈과 힘 풀리는 손목을 무시한 침대맡 새벽 독서로 이 책을 읽었던 까닭일 게다. 비록 소설일지라도 행간에서 느껴지는 작가의(혹은 화자의) 고독하고 자존적인 자의식을 목도하는 일은, 실은 그런 훔쳐보기를 꽤나 즐기는 편임에도 침대맡이었기 때문에 다소 비루하고 지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방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각 소설마다의 분위기와 문제의식을 도드라지게 새겨내는 것이나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존재와 세계에의 화두를 내려놓지 않음에도 헛헛한 웃음 한 자락은 남겨놓는 여유는 소설과 별개로 자꾸만 감기는 눈을 치켜올리게 만드는 꽤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한편 시점의 혼용이나 화자의 교란(?)과 같은 장치에 잠시간 멀뚱해졌던 순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되새김이 무의미한 쉬운 글들에 무신경하게 노출되어왔던 정신의 나태에 상쾌한 자극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든 것은, 소설 말미에 실려있는 무려 세 장 반에 이르는 작가의 말이었다. 조금은 긴 호흡으로 담담하고 진솔하게 뱉어낸 그의 말을 읽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했으니까.
2001-09-25 02:37, 알라딘
사랑이라니여름씨는미친게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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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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