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03. 1. 20. 11:30
조금은 고요해도 좋다면..

'성공과 승리란 좌절과 실패의 반어일 뿐 결코 행복의 진정한 모습이 될 수는 없다.'이런 얘기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책장을 덮은 지 두어 달이 지나 다시 펼쳐보다 발견한 밑줄이다. 제목만큼이나 소박하고 잔잔하게, 비우고 비워 고요해진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생활관쯤이 될 것 같다. 그는 하루 종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행복과 마음의 충일을 느끼는 천상 자연의 사람이다. 악순환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꿈꾸고 그리던 바다와 마주해도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이리저리로 지루한 시선 돌릴 곳을 찾아대던 기억을 가진 나같은 사람과는 조금 다른 부류랄까.

희생이나 헌신, 깨달음이나 유유자적, 극복이나 인간승리. 한 인간의 흔적을 기록한 많은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나도 그처럼' 이라는 꿈은 조용히 접어버린 것 같다.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훌륭하구나. 대단하구나. 혹은 아름답구나. 이제 더이상 그들이 부럽거나 그들처럼 되고 싶어 안달하지는 않는다. 수없이 넘긴 책장과 아로새긴 감동이, 나를 변화시키는 추동질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엿보는 일은 분명 흥미롭다. '조금은 가난해도 좋다면'이라고 말을 꺼내는 작가의 이야기는 마치 속세를 초월한 듯 청아하고 우아한 삶의 본령을 파고들며 중간중간 우주와 세계를 향한 화두를 던진다. 하지만 여름 홍수로 범람하는 개천을 걱정하고, 입에 풀칠하기 위해 민박을 치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줄 붕어싸만코의 낙상에 안타까워하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면모 또한 숨김없이 드러낸다.실제로 가난한 화가이며 민박집 주인인 작가의 투박하고 정직한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그가 꿈꾸는 것이 피안의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누구에게나 주어진 현실에서 세상 모든 생명있는 것과 상생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자연을 그리고 가축들을 키우며 인간들만의 것이라 착각되고 있는 소통과 교감에 더 큰 차원의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름답고 애틋하지만, 아무나 그처럼 고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고요하고 담백한 그의 현재와 달리 피끓는 시절 연애에 목매고 청춘에 힘겨워했다는 고백처럼, 한없이 뜨겁게 타올랐던 사람만이 차갑게 맑아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가난해도좋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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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최용건 (푸른숲,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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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