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03. 1. 20. 00:00
조금은 어설프다, 하지만 진심어리다.

'경찰서여, 안녕'의 신선한 충격과 감동으로 그의 이름 석자를 일종의 기대감과 함께 기억하고 있다.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그를 가까이서 접하고, 작품 속 비범한 발랄과 재기와는 달리 너무나 평범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면서 그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한동안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71년생 다인이 또래의 선배들과 함께 학창 시절 절반 남짓을 운동의 언저리에서 보냈고, 그 시절 그들은 몇 살 나지않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까마득한 선배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겨났다. 하지만,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대부분 외면한다고해서 당사자들마저 잊을 수는 없겠지만, 담담하게 돌아보기엔 너무나 뜨거웠었고 다시 빠져들기엔.. 안타깝지만 시대착오적이다. 

누구보다도 시대와 인간을 사랑했지만 광장의 시대 끄트머리에서 시작된 이해받지 못하는 소수로서의 삶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변화의 주인공이었던 선배들의 환희에 찬 무용담에 덩달아 가슴 벅차하면서도 막상 돌아서면 세상에, 사람에, 현실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곤하던 그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스스로 결정한 양심의 무게에 짓눌려 눈부신 젊은 날을 소진해버린 그들. 아마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후일담 소설의 퇴폐적 낭만성과 잠정적 패배주의라는 한계 때문인지, 이 작품은 다층적인 시점의 화자가 등장하는 입체적 구성의 성장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금은 구태어린 주제를 다루는 대신 미흡하나마 추리적인 구성도 가미해 소설적 재미에 신경을 쓴 흔적도 역력하다. 어쩌면 후일담도 성장기도 아닌, 그저 자신이 속했던 시대적 비극과 불운이 세상의 속도에 밀려 흔적을 잃어가는 것을 진정으로 가슴 아파하는 젊은 글쟁이의 개인적 욕망의 소산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이른 시도였을까. 행간에 보이는 작가의 마음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욕심이겠지만, 소수의 눈물어린 안타까움이나 뒤늦은 회한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개 끄덕일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71년생다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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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종광 (작가정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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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