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1:02


우리 현대사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내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더라도 시간적 근접성으로 인한 친근감 덕에 어떠한 사건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애가 끓도록 안타까운 마음이 되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장준하 선생의 죽음 역시 그렇다. 그리고 반복된다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생각하며, 혹시 세상은 정복하고자하는 몇몇의 더러운 인간에 의해 끊임없이 그 진보가 유예되는 안타까운 반복이 아닌가 답답해지곤 한다. 나라를 잃는다는 설움이 어떤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거국적이고 민족적인 슬픔은 당시 피끓는 젊은이들의 운명을 바꾸는 매우 당위적이고 아름다운 이유가 되었고 후대인 내게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남겨주었다. 

장준하 선생은 1973년 의문사로 돌아가셨다. 엄혹한 시대의 의문사가 정권에 의한 타살의 다른 이름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학자풍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학생 시절 '브나로드' 운동을 통해 애국심과 반일의식을 고취하게 되고 이후 자신의 삶을 조국의 독립에 바치기로 마음 먹는다. 불가항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학병에 차출되지만 중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해 임시정부를 찾아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돌베개를 마다하지 않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 

조국이 광복되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미국과 소련이 군정을 실시하는 혼란의 와중에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의사들의 임시정부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동족끼리의 전쟁이 벌어지는 한반도. 3년 간의 소모전 끝에 정전이 되었지만, 반으로 갈라진 조국에서는 나라를 팔아 일신을 돌보고 치국의 야욕을 드러내던 기회주의자들의 득세로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섰다. 그 혼란의 근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혀 바른 조국을 만들어보려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등에 업은 정권의 푸른 서슬 아래 얼마나 고통받고 죽어갔는가를 생각하면, 역사의 비정함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1950년대부터 '사상계'라는 정론잡지를 만든 언론인이었던 그는 중국에서 군사훈련을 받는 동안에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열악한 상황에서도 잡지를 통한 계몽활동을 쉬지 않는다. 장준하 선생의 용기와 신념은 50년이 흐른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고 진실한 언론의 정도를 지켜내며 국민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비양심적인 정복자 집단인 박정희 정권의 광기에 맞서는 일이었던 까닭에 음모 속에 폐간되고 만다. 하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장준하 선생은 목숨을 건 박정희와의 정면 대결을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고 결국 그가 걸었던 목숨은 독재자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시대의 라이벌이었던 장준하와 박정희, 역사를 선택한 박정희와 역사가 선택한 장준하의 운명이 눈물나도록 가슴 아프고 원망스러운 까닭은 아직도 인간이 만들어낸 이 땅의 모순이 너무나 극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90년대에 태어난 이 책을 읽을 어린 아이들에게 일제강점기나 혼란의 근대사는 조선시대나 삼국시대만큼이나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유독 우리나라는 기술과 정치사상의 지체현상이 두드러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비도덕적인 정치가들에게 맡겨진 정치판의 시대착오적 퇴행이 여전하고, 그와 별개로 풍요로운 일상의 세례 속에서 아이들은 더욱더 진정한 현실의 문제를 멀게만 느끼며 성장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외쳤던 '대~한민국!'은 불과 쉰 살을 조금 넘긴 짧은 역사를 지닌 정부이고, 날 때부터 이미 그렇게 되어있었다고 믿을지도 모르는 현재의 부조리와 불합리가 실은 바름을 향한 열망을 지닌 분들의 힘겨운 싸움을 짓밟은 야욕적 인간들과 외면한 다수 사람들이 남긴 상처라는 것을, 하여 이제 우리들이 더욱 바른 조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3-07-18 22:54, 알라딘



장준하민주주의의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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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민수 (사계절출판사펴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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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