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쓰고 보니, 30일보다 29일이 더 마지막 날 같은 느낌이다. 월요일 첫 출근을 하고 목요일까지, 고작 나흘이었지만 엄청 피곤했다. 차라리 빨리 인수인계를 해서 명확하게 할 일이 맡겨지면 좋겠는데 특별한 업무 없이 늘어져 있는 게 은근 고역, 그나마 이런저런 외근이 있어 숨통이 좀 트였지만 뭐랄까... 소위 '시민사회'에 한 발 담그고 있는 느슨한 연대체 사무처의 정수를 보는 것 같더라. 그저 최저임금 직장인이라고 스스로를 정체화하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난망하겠다는 느낌. 물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단 한 번도 온전히 헌신한 적 없으면서 소시적 흑백논리를 탈피하지 못하고 소위 '운동'의 경계를 머리로 가르는 나의 미성숙에 있겠지만 말이다. 암튼, 겪어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생계와 타협한 생활인의 갈등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당분간 마음은 퇴근 후 일정에 두는 것으로 해야겠다는 생각. 해서 나름 실천이랍시고 퇴근 후에 바로 움직이다 보니 마치 열심히 사는 듯한 피곤함이 막 밀려오더라. 다행히 어제부터 연휴 시작이라 늦잠을 자고 빨래도 돌리고 했는데... 종일 집에 있자니 널널한 시간이 갑자기 무거워져 거의 석달을 백수로 지냈던 게 무색할 만큼 금세 쓸쓸한 마음이 되었다. 올해 들어서는 정말 사람이 얼마나 간사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인지를 무섭게 실감한다. 며칠 집에서 뒹굴다 문 밖을 나서면 세상의 어지러움에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고, 며칠 복작대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늘 그렇게 살아오기라도 한 양 적적한 마음이 되니.
암튼, 그렇더라. 무심결에 공중파에서 방송하는 "완득이"를 보며 아하, 추석이구나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더 그렇고. 명절은 명절이라 여기저기서 뭔가 일상의 긴장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분위기다. 저녁엔 새누리당 앞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정이 취소됐다기에 종일 집에 있으면서... 이따금 날아오는 안부 연락에 답을 하고 나도 생각나는 이들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전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많이 남은 무료문자 좀 써버리자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ㅠ 그렇게 안부를 주고 받다가 그런대로 지인과 통화하면서 컬러링 얘기를 들었다. 너무 지겹다고, 좀 바꾸라고. 사실, 내가 들을 일은 거의 없으니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십 몇 년 휴대폰 쓰는 동안 의지적으로 늘 같은 통화연결음이었고, 바꾸려고 하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 '절대적' 존재 하나 있는 건 여러 모로 참 편했는데 마치 애초에 그런 건 없었던 것처럼 마음이 사라지고 나니 그냥 그 자리가 텅 비어 버리는 느낌. 김두수님의 나비, 짙은의 백야, 안치환의 새, 양희은의 내나이마흔살에는, 김현식아저씨의 내사랑내곁에, 또 다른 여러 노래들을 들으며 고민ㅠ하다가... 'goodbye to romance'로 바꿨다. 역시 세월과 향수의 자장은, 사라진 마음과 별개로 참 강력. 한편 정작 사는 건 엉망이면서 이렇게나 사소한 삶의 악세사리들에 의미부여를 하는 천성이 참 지겹기도 하다.
기분인지 뭔지 여느 금요일 밤보다 한층 헐거워진 타임라인을 보면서... 여전히 액정에 눈을 맞추고 있는 신세가 새삼 좀 그렇다 싶고. 생각해 보니 pc통신 시절 어쨌거나 게시판이든 대화방이든 공동의 거점으로 사람이 모여들어 깨알같은 얘기를 나누던 생각이 났다. 인터넷카페는 별로 안 가서 잘 모르겠지만... 이후 대세가 된 싸이월드는 그래도 관심길을 따라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수고가 필요한 시스템이었고, 마침내 sns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사람 혹은 정보를 불러모아 가상의 공간으로나마 직접 이동하는 수고조차 거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불과 십수년 만에 급변한 네트워크 상의 소통(?) 패턴 역시 살아가는 모양새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싶어서 문득 또 쓸쓸. 물론 이런 변화는 결국 사람과 기술의 상호작용이 만든 것이겠지만, 때로는 견지하고픈 방식을 내 의사와 무관하게 잃어버리게 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난 '나는 원래'라는 수식어를 많이 쓰면서 말을 하는 편인데... 얼마 전 정말 무심코 그 말을 뱉은 뒤로 자꾸 생각이 난다. 세상에 '나는 원래'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걸, 그 상황에서라면 '나 전에는'이라고 했어야 했다. 어렸을 때는 절대 달라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자신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정말 별스런 계기 없이도 자연스레 무장해제되는 경험이 반복된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을 자꾸만 돌아봐야 하는 이유일 테고, 겸손하게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한 듯. 난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음... 지금 기분이겠지만, 뭔가...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겠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나는 내년에 중고차를 사야할 것인가, 구매 결정 전에 그에게 진지한 자문을 구해야겠다. 니가 좀 막아달라고. 미친 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