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2. 9. 30. 21:06

 

 

관심과 관계의 좌표를 혼동하며 보냈던 한 해의 결과?! 뭔가 분열적인 마음으로 추석 연휴를 보내는 중. 대가족이 모이는 것도 아니고 따로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지만, 서른 이후의 추석은 늘 부모님 댁에 오빠네 가족이랑 모여 1박2일 의무방어를 하는데... 명절때 챙겨오는 생필품들이 적지 않으므로 나로서는 의무방어라 단정짓기에 좀 민망하다만. 암튼 점심 때에 맞춰오라는 엄마의 당부를 존중하여 어제부터 딱 1박2일을 채우고 다시 집으로 왔다. 명절이라고 별 대화없는 가족들이 갑자기 친밀해질 일이야 없지만... 노트북에서는 아이디+비번 저장이 안 되는 네이버 메인화면이 몹시 못마땅했던 아빠의 애로사항을 네이버툴바로 해결해드리고, 훌륭한 시누이답게 며느리와 대등한 노동강도로 전 부치기 미션을 수행하고, 다가올 대선 관련한 대화가 부모님과 오가는 건 상호 일체 삼가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심한 추석을 보내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정으로 향하는 새언니네 차를 얻어타고 집구석 안착. 팔로잉만 보면 개그콘서트 신입 개그맨이요, 팔로워는 오로지 착한 시누이 한 명인 새언니가 요즘 부쩍 트윗 보는 재미에 빠져 나의 멘션을 열독하는 관계로... 뭔가, 청승주접스런 혼잣말을 하기가 무척 난감해져버렸다. 페북은 페북대로 제 발 저린 도둑이 되어 입이 안 떨어지고, 마침내 트윗까지 약간의 요철 요소가 생겨버린 아쉬운 상황. 정말이지, 몇 년 전까지의 알라딘 서재만한 블로그가 없었는데... 새삼 아쉽고 아쉽다. 그렇다고 몇 년을 방치하다가 다시 돌아갈까 하니 영 마음이 동하지 않고. 십수 년 만에 다시 아날로그 일기장을 펼치자니 고질이 되어버린 서체장애를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고. 독백이든 방백이든 발설의 힘으로 살아가는 독거노인에게는 무지 별로인 상황이다. 새언니가 트윗 프로필에서 여기까지 따라 들어올 일은 없겠지만 링크 지우는 걸로 어설프나마 벽작업 완료ㅠ

 

전날 잠을 못 잔 것도 아닌데, 어제는 저녁부터 잠이 몰려왔다. 물론 새언니와 합의 본 바, 엄마네 집에는 특히 엄마 방에는 어디선가 수면가스가 살포되고 있지만... 어제는 정말 유난하여 여덟 시도 되기 전에 씻지도 않고 그냥 잠이 들어버렸다. 중간에 몇 번 깨기는 했지만 거의 열두 시간은 내리 잔 듯. 와중에 메세지에 잠깐씩 깼는데, 혼몽한 중에도 이게 무슨 일이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잠들고, 아침에야 덜컥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진 부고. 가깝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학원 때 나름 두 학기나 수업을 들었었고, 2010년에는 인권위 연구용역으로 자주 뵙기도 했던 교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메세지였다. 이제 겨우 오십대 초중반에 한참 연구 분야도 주목을 받고있는데, 연구방향에 대한 나의 선호와 별개로 나름 진심과 성의를 다하셨던 교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허탈했다.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이의 죽음 못지 않게, 어쩌면 다 가진 듯 했던 누군가의 이른 죽음 소식을 명절에 마주하자니 다시 사는 게 뭘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중. 부고를 전한 동기에게 들은 바로는 연구용역 이후로 뵙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안 좋으셨다는데, 평균수명 백세를 얘기하는 세상에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이렇게 허망하게 삶이 끝나기도 하는구나 싶은 새삼스러움에 마음이 이상하다. 모레 조문을 가기는 할 텐데, 뭐랄까... 나로서는 비명에 들은 소식이라선지, 실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아무려나, 좋은 곳으로 편안히 가셨기를.

 

결국엔 그냥 집에 눌러앉고 말았지만, 실은 가까이에 있는 천막에 갈 생각으로 집에서 챙겨 온 음식들을 정리하고 새로 밥도 하고 그랬다. 명절에 더욱 외로울 천막을 걱정해 많은 이들이 찾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밤이 되면 다시 외롭지는 않을까 내일까지 연휴인데 아침은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그래도 용기를 내보자 하고 일단 밥부터 안쳐 놓고 전을 가지런히 담고 송편을 데우고 나물도 옮기고 이런 날일수록 느끼한 음식을 많이 먹으니 김치도 담고 가져갈 과일과 마침 집에 있는 칡술도 챙기고.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서대문에 살 때 가까운 천막에는 마음 먹고 처음 갔을 때부터 왕성한 친화력을 발휘해 사람을 챙기는 이가 있었고, 마침 동갑이었고 또 가까이 산다고 하니 농성조가 될 때마다 나 올라왔으니 오라며 연락을 해댔었다. 사실 그 친구의 챙김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일상처럼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를 가고 천막에를 가고 하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마음에 있는 것과 실제 움직이는 것 사이의 거리는 때로 진정성의 문제만은 아니기도 하니까. 암튼, 그렇게 챙기다가 정말 문득, 이건 오버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건 내 현장처럼 투쟁하는 노동자들 사이에 뻘쭘하게 끼게 될 상황을 생각하니 순간 머리가 어질해지더라. 그리고 깨달았다. 관심과 관계의 좌표, 나는 정말 혼동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자리에서 느껴왔던 불편함의 실체도 실은 그게 아니었을까. 물론 농성장은 그 누구의 방문도 환영하는 곳일지 모르지만, 실은 나는 '그 누구도'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관심과 몸을 따로 두고 살면서, 그림자처럼 당연한 외로움을 그 속에서 달래려는 기대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욕심이다. 마침 시월을 앞두고 깨달아 다행이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부려 놓았던 음식들을 다시 냉장고로 제자리로 집어 넣었다. 내 몫의 외로움은 내 힘으로 감당할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연대할 것. 하여, 다시 '사랑하라, 희망없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무엇보다 '혼자서' 잘 사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지 싶다.

 

 

'회색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월 8일  (0) 2012.10.08
10월 2일  (0) 2012.10.02
9월 29일  (0) 2012.09.29
9월 24일  (0) 2012.09.24
9월 22일  (0) 2012.09.22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