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거실에 있는데 뭔가 떨어져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옅은 공포와 진한 짜증 속에 소리가 들려온 부엌과 작은 방 쪽을 유심히 살폈으나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밖에서 난 소리인가 싶어 현관 밖도 살피고, 혹시나 싶어 옥외계단 바깥까지 살펴봤으나 이상무. 창호 없이 난간만 있는 바닷가의 복도식 아파트여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 종종 밖에서 뭔가 스러지는 소리도 들리곤 하는데, 어제는 바람도 별로 없었다. 이리저리 살펴도 별 일 아닌 것 같아 잠깐의 미어캣 모드는 해제. 자정 넘어 자려고 씻고 방의 불을 켰는데 창문 쪽 천장의 몰딩이 침대로 추락해 있었다. 이사했을 때부터 여러 번 덧방한 도배지가 여기저기 떠 있고 그사이 자력 팽창해 찢어진 곳도 있었고 덩달아 오래된 몰딩도 살짝 들뜨거나 틈이 벌어지거나 한 상태이기는 했다. 그러려니 하고 몇 년 살다 보니 별 생각 없었고, 이사 결정하고 집 보러 온 분이 중개사에게 몰딩 이야기를 하길래 그제서야 눈길이 갔었다. 위태로울 정도라곤 생각 안 했는데, 저렇게 본격적으로 떨어진 걸 보니 문득 무척 심란해졌다. 침대에 있을 때 떨어지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주인한테 연락하는 것도 별로고 자는 동안 나머지 몰딩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나무 틈새에서 벌레들이 기어나오는 건 아닐까 불길한 생각도 들고. 통영 적응에 실패하고 떠나려는 마당에, 여기는 아니었다는 집의 격려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주접이겠지. 그러나 쓸데 없는 의미 부여가 잦은 인간에게, 살면서 처음 경험한 몰딩의 추락은 꽤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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