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4. 1. 1. 20:02

 


오랜만에 지인과 연말연시를 함께 보냈다. 덕분에 한 번은 가봐야지 했던 카페 배양장 방문, 딱히 비슷하진 않지만 예전에 갔었던 속초 칠성조선소가 떠올랐고 나도 이제 보조석 인질이 있다면 풍화일주로쯤은 갈 수 있는 운전자임을 확인했다. 오래 전 스페인에서 배운 거라며 부엌을 차지한 지인 덕에 2023년 마지막 식사는 빠에야, 그리고 한참 이어지던 수다 중 새해를 맞은 순간 올해의 첫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아점으로 떡국을 끓여 먹고 두 번째 북포루 도전, 차로 가니 조금 다른 경로가 되겠지만 나름 산행이었던 첫 번째 북포루행이 떠올라 정상에서 먹을 생각으로 샤인머스켓을 챙겨갔다. 통영산 지인의 지도편달로 알게 된 길은 다행히 산책 수준이었고 미세먼지인지 구름인지로 시야가 흐렸지만 탁 트인 풍광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을 것 같아 샤인머스켓을 넉넉히 담았는데 마침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있어 나누고 먼저 내려가는 그들과 두 번째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해 지기 전 떠날 지인과 이른 저녁을 먹으려 집 근처 텐동집에 갔지만 브레이크 타임. 지인은 새로 생긴 보도교와 정비 작업이 마무리된 강구안을 보지 못한 터라, 이전에 맛있게 먹었던 강구안 인근 통통칼국수에 갔다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역시 브레이크 타임인 듯했으나 사장님이 재료 준비를 많이 해놨다며 흔쾌히 입장을 허락해주셔서 식사를 하고 나오며 기분 좋게 세 번째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지인과 헤어지고 귀가했다가 잠시 나갈 일이 생겨 샤인머스켓 한 송이를 챙겨 경비노동자 아저씨께 드렸다. 단지 입구에 경비실 하나가 있는 아파트여서 동마다 경비실이 있던 서울에서보다는 소원하지만 내게는 나름 가깝고 고마운 이웃이어서 이래저래 작은 먹거리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잦은 편인데, 날이 갈수록 웃음이 환해지는 느낌이라 부담이 없어진 덕에 네 번째 “새해 복” 인사. 그러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마침 외출하려 현관을 나서는 옆 집 분들을 마주쳐 오늘의 마지막 “새해 복” 인사를 나눴다. 

문어체인 듯 확신의 구어체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하루에 다섯 번이나 직접 나눈 1월 1일이 언제였나 싶다. 지인의 방문이 아니었다면 세 번의 인사는 없었을 것이고, 어떠면 뒤의 두 번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연말연시에 국한된 형식적 인사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직접 마주하며 인사 나눌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각별하고 흐뭇한 느낌이다. 우연히 이 글을 읽은 당신에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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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