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출발일이 다가오며 동거 중인 식물들의 거취 문제 해결이 시급해졌다. 통영 이주 후 첫봄에 전에 없이 식물에 마음이 가서 대략 열 가지쯤을 집으로 들였었다. 이런저런 허브류와 반음지식물류 그리고 베란다텃밭용 씨앗류 등이었는데, 생명을 보살피는 게 부담스러운 동거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대개가 요절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사다가 죽이는 일이 반복되며 역시 난 식물이랑 아닌가 보다 싶어 더욱 데면데면해졌는데, 그래도 살아남은 아이들은 우리집에서 세 번째 봄을 맞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기적으로 물만 주면 알아서 살아가며 자라기까지 하는 식물들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스투키와 테이블야자는 작은 화분이 비좁아 보여 대충 분갈이를 했는데도 끄떡 없었고, 아이비는 넝쿨 없는 실내에서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수십 배 자랐다. 우리집 유일의 성장캐들이라 대견하기도 하고 반려라는 게 이런 건가 싶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대체로 손이 안 가는 아이들이지만 8주나 수분 공급이 중단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온라인으로 자동급수기를 알아봤지만 애매했고, 당근마켓 나눔은 그동안 든 정이 있어 내키지 않았고, 폐쇄적인 일상 덕에 편하게 맡길 만한 이웃도 없어 고민이 깊었다.
얼마 전 여행 준비 잘하고 있냐며 연락 온 G와 통화하다 사정을 말했더니 식물 쉰들러를 자청해주었고, 어제 만나 전달했다. 새 일터에 적응하느라 주말이면 뻗기 바쁜 중에 거제까지 와줘서 감동이었고, 예전 유럽에 6개월간 머물렀던 G의 이야기와 나의 계획을 나누며 즐거웠다. 그러다 일정은 누가 알고 있냐고 물었는데 잠시 멍-. 열심히 표까지 만들어 정리했지만 누군가와 공유할 생각은 안 했는데, 듣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오글거려서 말은 안 했지만 G가 맡아준 게 식물만은 아닌 듯, 일정표는 최종 버전을 출발하며 전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