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사랑이 다다르는 궁극의 경지는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진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작가는 사진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사진이 되었다. 카메라를 든 손끝으로 빚어낸 사진은 그가 사진의 목표라고 말한 생명의 공생을 향해 열려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진을 통해 진정 세상과 생명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작가다.
카메라는 휴대폰 만큼이나 일상적인 생필품이 된 지 오래다. 사진이 행사나 이벤트을 위한 특별한 기록의 의미를 넘어선 지도 이미 오래고, 그래서 이제 카메라 기능이 없는 휴대폰을 찾는 일도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작가가 책에서 기록한 대로라면, 생겨난 지 불과 200년도 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컴팩트한 모양새로 발전하고 보급된 지는 몇십 년도 지나지 않았다. 카메라의 발전과 보급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이는 단지 카메라라는 기계의 이력이라기보다는 순간을 영원으로 간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기록에 대한 열망의 힘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내려온 사진은, 그렇게 흔해진 만큼 수많은 아마츄어와 더불어 고도의 프로페셔널을 명확히 구분한다.
한때 매스컴에서는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프로지상주의를 퍼뜨렸었다. 어떤 영역에서건 그 일에서의 프로는 존재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한 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 그렇게 얻은 프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인식을 보편화시키기 위해 둘러치는 높은 벽이었다. 프로는 아마츄어와 다르며, 멋모르는 대중과는 당연히 다르다. 프로의 세계는 일반인들의 선망과 스스로 쌓아온 견고한 성채 속에서 더욱 비밀스럽게 빛난다.
이 책의 작가 김홍희 역시 프로다. 하지만 그에게서 보이는 프로페셔널리즘은, 우리가 익히 접해온 그것과는 한참 다르다. 그는 지나온 사진 인생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많은 것들을 대중과 나누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보인다. 나같은 문외한은 물론 읽어도 잘 알 수 없는 기술적인 부분들도 많았지만, 삶을 걸어온 고독한 작업 속에서 얻어낸 소중한 노하우들까지도 세세히 공개하고 있다. 프로의 자신감이자 정보를 독점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이 정체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것도 같은 문학과 철학을 다시 공부하고, 이를 통해 사진을 통한 세상읽기와 문학과 철학을 통한 세상읽기를 통합해낸다. 또한 그는 열려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장인의 잣대로 나누지 않고, 프로인 자신의 사진과 아마츄어인 독자의 사진에 우열을 나누지도 않는다. 자신이 사진을 통해 깨우친 많은 것들을 사진에 마음 둔 독자들의 자양으로 나누어주기를 서슴지 않는다. 얄미울(?)만큼 사진도 글도 사고도 막힘없이 열려있는 그의 성과는, 자신의 작업과 스스로에 대한 욕심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홍희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으로 선택했지만 '사진노트'라고 붙은 작은 제목 때문에 나는 이 책을 한동안 밀쳐뒀었다. 여러 분야를 두루 공부하고 글쓰기에도 꽤 취미가 있는 듯한 작가의 이력을 통해 그를 좋아하게는 됐지만, 사진 전반에 관한 나의 관심은 일천하고 전문가의 사진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나의 소양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물론 이해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면서) 이 책은 사진노트라기 보다 사진을 진정 사랑하는 자의 인생노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과 무관할 듯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사진을 바라보게 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또다시 사진을 바라보게 하는 그는 분명 '나는 사진이다'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카메라와 사진에만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사진은 이제 너무나 일상적이기도 또 그만큼 비일상적이기도 하지만, 사진의 범람 속에서 우리가 별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책이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진을 대하는 우리 눈의 관점까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존재하는 사진의 가치와 목표에 이르기까지 이만큼 진솔하고 가슴 뜨겁게 고백한 책을 만나는 일이 그다지 쉽지는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05-02-16 17:40,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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