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진을 잘 모른다. 사진은 사실 아무나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아닌 것 같다. 아마츄어라도 사진을 한다는 것은 꽤 육중한 수동카메라 일체를 구비해야 하는 것이고 가끔은 침묵과 암흑의 암실에 틀어박혀 예술가연하는 고독한 작업의 경험을 동반하는 것이 아닌가. 그저 가끔 인생 대소사에 사진 찍을 일이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필름을 맡기고 사진을 찾고 하는 과정의 번잡스러움 때문에도 별로 가까운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 40여년간 오롯이 한 길을 걸어왔다는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것도 근년의 일이고 기껏해야 침대맡에 자리한 열화당 사진 문고 여남은 권이 내가 가진 사진에 대한 관심의 전부다.
언젠가부터 너무 예뻐지고 조금은 과해진 책들에 나는 좀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무겁다는 상식적인 이유와 더불어 병적으로 양장본책을 싫어하는 내게 사진이 담긴 두터운 책, 더구나 표지에 빤질빤질 비닐 코팅까지 되어있는 책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되어 이런저런 검색 끝에 '훌륭한 분'이라는 초등학생식 결론(?)을 내린 작가와 혼자 조용히 응원하며 책 한 권 나오는 걸 반가워하는 또 한 사람의 작가가 함께 만든 이 책은, 사진과 글의 만남이라는 편집이니 당연히 다소 거하리라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환대의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사실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고, 사진도 너무 많고, 그래서 비슷한 느낌의 책도 많고 실지로 책이 비슷한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그 많은 책과 사진들을 가려낼 감식안이 없는 그러저러한 독자인 나로서는 그저 다행히 내게 꽂히는 작품들에 감사해하고 마음에 새기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책을 대할 때면 감히 독자들에 의해 변별이 되어야할텐데.. 하는 어줍잖은 마음을 갖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진은 바라보기 위한 것이지만, 최민식 작가의 사진은 하염없이 바라보기에 참으로 송구한 구석이 있다. 별로 웃는 낯은 없지만 언제나 인물을 향하는 포커스를 통해, 그리고 작가의 눈에 잡힌 피사체의 인물들을 통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와의 눈마주침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애써 고통스럽고 지난한 이들의 삶에 렌즈를 갖다댄 그의 고집스러움은, 내가 모르는 아주 어려운 시절부터 마치 그런 사람들은 이제 없다는 듯 2만불 시대를 외치는 양극화된 지금까지, 그만의 방식으로 낮은 자들을 끌어안고 함께 하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진정성이 그 도저함만으로 나같은 독자에게까지 와닿는다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사진에 가득한 휴머니즘의 향기가 바로 작업의 진정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흑백사진에 풍성한 톤을 더해준 것은 작가 조은의 짧은 문장들이다. 그녀는 글을 참 인간적으로 쓴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이라는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와 성찰이 없이는 결코 풍길 수 없는 어떤 향취라고 나는 항상 생각하는데, 그것은 유려함이나 뛰어남과는 또 다른 차원이라고 믿고 있다. 그녀의 글에서는 언제나 짧은 나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자신이 살아온 날 만큼 셔터를 눌러온 대가의 사진에 무언가 부연(?)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것 같다. 사진과 글이 만나 책의 얼개가 짜여진 다음에야 두 명의 작가가 만났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사진과 잘 만난 그녀의 글에서 사심없는 글쟁이의 면모가 느껴졌다.
쉽게 읽히고 깊은 생각을 끌어내주는 책이다. 고답적이고 진부한 제목이 조금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달리 더 어울리는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반들반들한 액자에 넣어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 사진보다 마음에 담아두고 책장을 열어 가끔 펼쳐보고 싶은 사진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이 책은 지니고 있다. 우리가 건너온 황폐한 시간들과 그 시간을 견뎌냈으나 여전히 힘겨운 사람들을 향한 시선이 사진을 넘어 현실로 가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나 역시.
2005-02-11 18:12,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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