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03. 1. 25. 15:00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어떤.. 동질감.

사진작가 윤광준의 '소리의 황홀'에서 언급된 그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화장실 휴지 대신 신문지를 사용해야하는 궁핍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지극한 애착, 사춘기 시절이었다면 정말 멋있다고 느꼈을까. 한마디로 광적이다. 지면이나 웹상에서 스치듯 그의 잡글을 읽은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책으로 접하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단편적인 그에 대한 정보로 내가 가진 선입견은 대체로 맞아들어가는 느낌이다.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의 반쯤은 음악에 그리고 나머지는 그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어쩌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을 만큼 두 가지는 그의 삶을 채워가는 하나로 혼융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쯤 되는 그의 청년기는 청춘과 방황, 낭만 같은 현재적 의미에서 소구력을 잃어가는 가치들이 꽤나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 어울리는 불우하고 결핍되고 외곬인 인간 김갑수의 모습이 있다. 지난한 삶에서 그를 구원해준 것 역시 음악과 사랑, 아주 사적인 이야기들이 책장 가득 넘쳐난다.

차례로 나열되는 수많은 연주가들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들은 그의 전문성보다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들어온 그의 과거를 생각하게 한다. 행간에 스며있는 기형도 시의 그늘은 그의 글에 신산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가 언급한 '베티 블루'를 이십대 초반 나도 봤었다. 행복한 삶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강렬하게 속에서 일어나는 자기 파괴의 욕구를 어찌하지 못해 미쳐 죽어버리고 마는 여자 베티. 이십대 초반이라고 해서 세상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때로 환한 불빛 뒤에 감춰진 세상의 모습인 양 되살아오곤 한다. 영화만큼 미화하지 않는다면, 김갑수의 페르소나는 나이 먹어 다소간의 안정을 찾은 베티 정도가 되지 않을까. 볼 수는 있되 매혹에는 금기가 따르는, 흔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분명 볼 수 있는 그런 존재.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동경은 그래서 더욱 애틋한 건지 모르겠다.



텔레만을듣는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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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갑수 (웅진닷컴,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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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