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의미, 나무랄 것 없는 적당함.
나는 김영하가 좋다. 그의 글쓰기와 박학다식과 유창한 달변과 아이러니한 유머와, 심지어 큰 키와 염색한 머리까지. 일정한 거리를 가진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 안에서 나는 그가 참 좋다. 작업하는 그를 본 일은 없지만 하나의 문장을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일상을 희생하는 이른바 작가적 삶의 구현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영하는 고전적인 작가상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내보이는 글들은 하나같이 적당한 심도와 밀도를 유지한다. 글을 읽다보면 그만의 필터링을 거친 일상의 모습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의미를 담아 뒷머리를 잡아채는 듯한 짜릿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오랜만에 나온 그의 책은 산문집이다. 주황과 파랑의 대비로 장식된 단순한 책 표지는 조금 의외였지만, 속에 담긴 그의 재기와 영민함은 여전하다. 아이콘이라 이름 붙여진 첫 장에서 그가 주목하는 대상들은 엉뚱하지만 유쾌한 상상력으로 그럴싸한 의미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을 뿐 어렴풋한 느낌으로 스쳐지나간 어떤 생각에 대한 적확한 지적이며 환기일 때가 많다. 또 이 책에는 전작 소설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개인사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있어, 대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길래 저렇게 사고할 수 있는가 궁금했던 나의 호기심도 조금은 채울 수 있었다. 물론 혼자 내린 결론은, 평범과 비범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유연함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인가보다, 였지만.
지난 가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피프 광장에서 영화제 부스를 기웃거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꼬리 잡아 농담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글 속의 냉소가 떠오르는, 여유로운 거리감을 풍겨내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방송을 진행하고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고 느끼는 유쾌함과 그의 방송을 들으며 느끼는 그것이 내게는 다르지 않다. 어쩌면 나는 김영하라는 코드를 통해 변환되고 생산되는 갖은 의미들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령이나 본분에 대한 충실함보다, 그를 통해 새롭게 사고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욕심내는 내게 그의 글은 유쾌한 충전제다. 하지만, 너무 잠잠하다 싶은 그의 신작 소식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김영하가 좋다. 그의 글쓰기와 박학다식과 유창한 달변과 아이러니한 유머와, 심지어 큰 키와 염색한 머리까지. 일정한 거리를 가진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 안에서 나는 그가 참 좋다. 작업하는 그를 본 일은 없지만 하나의 문장을 위해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하나의 작품을 위해 일상을 희생하는 이른바 작가적 삶의 구현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김영하는 고전적인 작가상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내보이는 글들은 하나같이 적당한 심도와 밀도를 유지한다. 글을 읽다보면 그만의 필터링을 거친 일상의 모습들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의미를 담아 뒷머리를 잡아채는 듯한 짜릿한 느낌을 받게 된다.
오랜만에 나온 그의 책은 산문집이다. 주황과 파랑의 대비로 장식된 단순한 책 표지는 조금 의외였지만, 속에 담긴 그의 재기와 영민함은 여전하다. 아이콘이라 이름 붙여진 첫 장에서 그가 주목하는 대상들은 엉뚱하지만 유쾌한 상상력으로 그럴싸한 의미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의미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을 뿐 어렴풋한 느낌으로 스쳐지나간 어떤 생각에 대한 적확한 지적이며 환기일 때가 많다. 또 이 책에는 전작 소설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개인사적인 면모가 많이 드러나있어, 대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길래 저렇게 사고할 수 있는가 궁금했던 나의 호기심도 조금은 채울 수 있었다. 물론 혼자 내린 결론은, 평범과 비범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유연함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인가보다, 였지만.
지난 가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남포동 피프 광장에서 영화제 부스를 기웃거리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꼬리 잡아 농담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글 속의 냉소가 떠오르는, 여유로운 거리감을 풍겨내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방송을 진행하고 영화판을 기웃거리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고 느끼는 유쾌함과 그의 방송을 들으며 느끼는 그것이 내게는 다르지 않다. 어쩌면 나는 김영하라는 코드를 통해 변환되고 생산되는 갖은 의미들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령이나 본분에 대한 충실함보다, 그를 통해 새롭게 사고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욕심내는 내게 그의 글은 유쾌한 충전제다. 하지만, 너무 잠잠하다 싶은 그의 신작 소식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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