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와 노동의 관점이 부각된 고급 레스토랑의 다양한 면모가 새롭게 와닿는 영화였다. 개인의 사정, 노동자간 위계와 갈등, 인종차별, 미디어와 sns의 그늘, 위생과 안전 등 아이스 브레이킹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졌고 몰입감이 엄청났다.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고 들어서 그 부분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그러다가도 흥미로운 드라마에 빠져서 카메라워킹에 주목하는 걸 까먹고는 했다. 한 번에 촬영할 것을 계획하고 시도하고 만들어낸 것 자체가 놀라웠다. 픽션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다큐이거나 최소한 페이크처럼 느껴졌다.
길지 않은 95분의 러닝타임에 밀도 있게 삽입된 에피소드들이 조화로웠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짧은 씬들에는 임팩트가 있었다. 비중이 적은 인물들에게도 몇 마디의 대사나 상황을 통해 각자의 서사를 부여하는 구성도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다. 프랑스 출신 주방 보조의 난항, 베이킹을 돕는 조수 청년의 아픔, 베이킹 마스터의 인간적인 면모, 진상 손님과 웨이트리스의 감정노동, 유쾌한 손님들과 웨이터의 케미, 농땡이에 마약 거래까지 하는 노동자와 그의 설거지 파트너 노동자의 극도의 스트레스 같은 부분들은 잠시 보여지면서도 캐릭터에 생생함을 부여하고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당국의 까다로운 위생 검사, 공사다망한 어려움에 놓인 오너 셰프의 사정, 그를 돕고 주방을 함께 지휘하며 많은 것을 감당하는 셰프의 고충, 그리고 무엇보다 레스토랑 경영에 문외한인 매니저와 과거 오너 셰프의 동료였던 스타 셰프와 평론가의 관계와 역할 같은 부분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잘 짜여진 상황을 통해 한눈에 보여져 매력적이었다. 연중 가장 바쁜 성탄 시즌의 레스토랑이 배경이어서 시작부터 바로 절정으로 치닫는 느낌이기도 했는데, 높은 텐션을 유지하면서도 과하거나 억지스럽지 않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의 유기성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스타 셰프들이 미디어를 통해 솜씨와 카리스마를 뽐내고 그의 레스토랑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어떤 계기를 통해 추락하기도 하는 현실은 동시대적 현상인 것 같다. 셰프가 주인공이지만 한 사람의 존재감만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는 레스토랑의 모습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 점도,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일을 해내는 노동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편견없이 그려낸 점도 좋았다. 단골 손님의 알러지 정보와 관련한 사고와 그를 계기로 폭발하는 구성원들 그리고 물처럼 술을 마시며 위태하게 주방을 지휘하던 오너 셰프의 마지막 모습까지, 제목도 '키친 스릴러'라는 수식어도 딱 들어맞는 놀라운 영화였다.
8/16 cgv서면 임권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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