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5. 1. 31. 03:13

 

1945년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재일조선인 등 주변인들의 가난과 이들에 대한 차별을 목격하고, 이후 사회 생활에서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경험한 시게노부 후사코. 대학에 진학한 뒤, 당시 베트남전 등 국제정세에 크게 영향 받은 학생운동을 통해 일본 적군파로서 활동했다.

 

1970년대 초, 일본에서의 혁명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당시의 국제주의 노선에 따라 레바논 배이루트로 거점을 옮겨 일본 적군파 리더의 한 사람으로 아랍 해방을 위한 무장투쟁과 다양한 활동을 하던 중 1973년 딸 메이를 출산한다. 오랫동안 국제 지명수배자로 활동하며 살다가 2000년 일본 입국 후 체포되었으며, 27년간 무국적으로 살아온 딸 메이의 국적 취득을 위한 탄원으로 자전적인 이 글을 펴냈다고 한다.

 

오십여 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석 달여의 짧은 기간 동안 반추하며 써내려간 비망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또한 당시의 정세와 적군파 혹은 세계혁명에 복무하는 이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치열한 전사이자 평범한 인간이었던 한 여성의 내면을 다 드러내기에는 구멍이 많고 헐렁한 글들이었다. 게다가 교정 작업을 거치지 않은 듯 적잖은 오타와 오기, 비문 덕분에 물론 십여 년 전 출간된 책이기는 하지만 실망스러웠다.

 

허나 어떤 형태이든 어떤 방식이든 '운동'에 나서는 인간의 초심은 결국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바람이라는 확인, 시대와 세대와 조건의 상이함을 상쇄하는 보편의 지향과 그에 따르는 개별자로서의 크든 작든 번민과 갈등은 결국 그의 몫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더불어 사랑 또는 애정, 남녀간의 가장 내밀한 그러면서도 인류로 향해 무한정 확장되는 그 감정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 

 

어쩌면 조금 불안한 사랑의 결과였을 생명을 세상과 연결하기로 한 사과나무 아래에서의 결정은, 먼저 간 동지와 혁명투쟁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무거운 것이었지만 그를 통해 필자에게는 새로운 감응의 방식과 세상이 펼쳐졌다. 모두에 공감할 수 없었지만 한순간도 경험하지 못한 치열한 생애를 살아낸 필자와 그의 시대 그리고 세대가 좀 더 궁금해졌다.

 

 

시게노부 후사코

지원북클럽, 2001.12.22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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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