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님의 평전을 읽고 감동을 주체하지 못해 그 언저리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문익환 목사님의 조카, 그러니까 문동환 목사님과 캐서린 문의 딸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8년간 그들이 만들고 생활했던 공동체 '새벽의 집'에 대한 기록이다. 귀농이니 공동체니 하는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일상이며 인생인 그들의 귀농과 공동체를, 브라운관을 통해 혹은 활자를 통해 전해지는 것만으로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그렇게 소개되는 사례들은 현재적으로 성공적인(?) 진행형이어선지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겪었을 난관과 시련보다는, 그런 것들을 극복한 이후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더욱 부각이 되기 마련이고, 나처럼 문외한인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감행할 수는 없지만 부러운 여유로움과 일종의 낭만으로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새벽의 집'에서 유년기를 보낸 저자의 성장 경험과 함께 했던 사람들을 찾아 얻어낸 기록들로 생생히 되살아난 이 책에는,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들이 더불어 함께하기 위해 이겨내야만 했던 좌절과 시련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삶의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일상을 공유하며 생활한다는 것은, 강고한 신념만으로 가능한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이 피상적인 언어를 넘어 각자의 삶으로 구현될 때에는 미처 생각할 수도 없었던 많은 문제들이 불거져나오기 마련이다.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유년의 경험을 가질 수 있겠지만,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희생과 헌신을 감내해야했을 어른들은 공동체적인 가치를 위협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서 적지 않은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가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공동체에 대한 거창한 그 무엇 대신 마치 성장소설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가득 채워져있다. 소녀의 일기장을 펼쳐놓은 듯, 어린 날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 함께 했던 천진한 놀이들이 세세하게 묘사되고 읽다보면 절로 흐믓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또 어두운 시대에 저항하며 고난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라는 독특한 환경이 배경이 된 그녀의 일상 이야기 역시 단편일지언정 현대사의 뒷 이야기를 훔쳐보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결국에는 각자 제갈길로 흩어졌지만 '새벽의 집' 공동체의 이야기는, 공동체의 한계보다는 가능성과 희망 쪽에 더 마음이 기울게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공동체와 협동조합'이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갖은 공동체 이야기들을 섭렵하던 친구가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온 일이 있다. 나는 워낙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이라 진지하게 '공동체'라는 것을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 농활이다 공활이다 하면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 달 정도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일이 그나마도 공동체라면 내가 가진 공동체 경험의 전부다. 그리고 그 기간은 목표가 있는 시한부였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잘 화합하며 지낼 수 있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온전히 전유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없는 생활은 솔직히 상상만 해도 갑갑하고 끔찍하다. 물론 공동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들이 24시간 살을 맞대고 개인적인 일상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무려나 내게 공동체라는 것은 이기적인 내 존재의 한계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공동체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것과 물리적으로도 공동체적인 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어떤 차이와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2005-08-07 02:46,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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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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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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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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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미 (보리,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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