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5. 22:26


역시, 내가 좋아하는 마음산책. 며칠 동안 알라딘 메인화면에 떠있는 저 착해보이는 파랑을 보며, 어쩐지 사줘야할 것만 같아 주문을 했다. 사실 저자의 그림은 김영하와 함께 한 작업에서만 접해 보았고, 그나마도 난 만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그저 괜찮네~ 정도의 감상으로만 기억하고 있던 터였는데. 표지에 나온 아이 사진과 '옥수수-빵파랑'(책을 읽고보니 '옥수수빵-파랑'이 맞겠지만, 제목을 접했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이라는 짐작조차 안되는 제목의 조합이 내게 연상시킨 느낌은, 뭔가 아빠와 아이의 관계를 팔아먹는(?, ㅎㅎ) 천진한 듯 난해한 책이 아닐까 하는 것이어서 사실 약간의 갈등도 없지 않았었다. 물론 읽고난 지금의 느낌은, so good!
 

'my favorite things,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제목만으로 짐작할 수 없었던 책의 내용은 표지에 자그마하게 써있는 저 두 마디로 해결된다. 사실 이런 것들은 내가 무지 좋아하는 분위기다. 박민규가 쓴 추천의 말 제목도 마음에 와닿는다. '다 싫어 다 싫어 다 싫어 이건 좋아!', 나도 그런 편이다.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무척 분명하다. 문제는 그 기준과 이유는 그다지 분명하지 않은 편이라는 것이지만, 암튼. 저자는 쉰다섯 가지의 좋아하는 것들을 쭉 열거하며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았다. 작가의 경쟁력과 변별력은 주종목인 만화에 있겠지만, 늘어지지 않는 간결하고도 가벼운 문체. 유쾌한 글솜씨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글 쓰는 사람들을 간혹 부러워하고는 했었다. 쉽고 가볍고 그러면서도 자기 표현은 다 해결되는.
 

책장을 넘기며 그의 글에 공감하고 만화에 킥킥대면서(만화를 보고 킥킥댄다는 것은 내게 꽤 중요하다, 나는 정말로 아연하리만큼 만화에 대한 몰이해를 보이는 타입이다.) 나도 모르게 머리 속으로 나의 페이보릿 씽스를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었다. 아저씨, 동유럽, 그 중에서도 프라하, 오베르쉬르우아즈, 혼자있거나 혼자살기, 아이다호, 리버피닉스, 길버트그레이프, 쟈니뎁, 서태지, 커피, 커피우유, 담배, 우리조카, 쿠바, 회색, 내가 만든 상자들, 내가 꾸민 수첩 혹은 공책들, 케테 콜비츠의 판화 몇 가지, 체게바라, 김두수, 이원재, 김현식의 노래, 산울림, 김창완아저씨의 나직한 목소리, 성공회대학교와 선생님들, 공연 전의 암전, 예전 대학로, 예술의 전당 서예관 옥상, 말 잘 들을 때의 아이들, 그리고 뭉뚱그려 꽤 많은 노래와 책과 연극 등등등
 

'행복해지고 싶다면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라는 책표지의 문장이 마치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사실은 우리 모두 이미 충분히 알고 있던 거였는데. 사소하지만 마음을 밝혀주는 '좋아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는 삶의 괴로움을 잊을 수도 있을 만큼 잠시나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재미있게 읽으면서 내심 만화만 되면 나도 쓰겠네~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의미 있는 건 이우일 작가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들을 통해서,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현실의 뒷편으로 혹은 마음의 저편으로 묻어버리고 잊혀져버린 것을을 또는 너무나 늘 누리고 있어 미처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들로 인한 사소한 행복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렇다. 좋아하는 건 그저 생각만 해도 또 눈이 닿기만 해도, 너무 좋은 것이다. 그 소중함을 까먹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2005-08-08 02:01, 알라딘



옥수수빵파랑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이우일 (마음산책, 2005년)
상세보기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from 'to cats'  (0) 2011.05.15
조금은 피곤한 여행.  (0) 2011.05.15
마이너리티 카리스마에 박수를  (0) 2011.05.15
'새벽의 집' 공동체, 아름다운 기록  (0) 2011.05.15
방랑,벽이 아닌 삶  (0) 2011.05.15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