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자 곧 지지 않은 동백과 이르게 핀 벚꽃이 눈에 띄었다. 강의 답사 수업에 가느라 오랜만에 구도심을 가로질러 산책했는데 토요일 오후여선지 곳곳에 활기가 돌았다. 청마문학관에서는 통영에 심히 뜨거운 강사님의 긴 이야기를 들으며 간혹 끄덕거리고 간혹 웃었다. 집까지 걸어오고 싶었지만 지난주에 이어 <불후의 명곡> 김창완 편을 봐야 했으므로 중앙시장까지만 걷고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크라잉넛의 캡틴록님께서 산울림 노래에는 사계와 인생이 있다고 새삼스러운 말씀을 하셨고, 김창완 아저씨는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백만년 만에 <불후의 명곡>을 2회 연속 보면서 반복되는 예능 클리셰나 이야기를 납작하게 만드는 재주의 한 엠씨에게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이 역시 나의 오만이다. “안녕”에 붙인 게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민초희 언니’ 이야기가 비밀을 들킨 듯 반가웠고 그 옛날 <꿈과 음악 사이에>와 아저씨가 만들어 방송에서 들려주셨던 “초희”가 떠올랐다. 돌아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말로 할 수 없는 야릇하고 깊은 감정 같은 건, 나에게만 특별하거나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아무려나 벅찬 마음으로 방송을 보고 통영국제음악제 실시간 스트리밍을 틀어놓고 인스타를 열어봤다. 며칠 전, 좋아하는 선생님이 안식년으로 캐나다에 가셨다는 소식을 접했고 마침 그 며칠 전 뜬금없이 선생님이 통영에 강의하러나 놀러오셔서 우연히 마주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망상의 대가인가 싶어 괜히 더 아쉬워졌었다. 이래저래 좋은 날을 보낸 터라 기분이 좋았고 선생님의 새 소식을 보고 싶었는데 반가운 ‘방백’의 음반 표지사진을 만났고 댓글을 보고 순간 뒤통수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백현진님이 “안녕...”이라고 쓴다면 나는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는 관계이지만, 유앤미블루와 가끔 어어부와 방백의 음악들 그리고 여러 영화음악과 [삼진그룹영어토익반]에서 환영처럼 등장했던 첫 순간과 재등장해 대사까지 했던 그를 나는 좀 좋아했고 많이 반가워하는 정도는 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에선 킹스싱어스가 앵콜로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믿을 수 없는 부고를 접하고 너무나 얼떨떨하고 이상하다. 조금 전 공연은 끝났고, 백현진님이 “안녕...”이라고만 쓴다면 나는 조용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야겠지 싶다.
방준석님의 음악들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