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거창하네, 지난해 처음으로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에 갔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 공연을 보러 처음 간 건 2월에 있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 임동민 형제의 듀오 리사이틀이었는데, 프로그램에 쇼팽의 작품이 여럿이어서 며칠 전부터 애써 관련 책도 한 권 읽고 음악도 미리 찾아 듣고 했었다. 긴장과 성의로 준비를 한 덕분인지 연주회는 새로운 감각과 흥미를 일깨우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통영국제음악제 개폐막식 공연을 선뜻 예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올해는 다소 침잠한 마음일 때 예매 오픈 문자를 받았고, 며칠 망설이다 들어가봤더니 매진인 경우도 많았다. 통영국제음악제 티켓값은 별로 비싼 편이 아니지만 가난한 클래식 문외한인 관계로 주로 B석을 예매하는데, 지난해 폐막 공연을 5층에서 보고 긴 커튼콜이 끝난 뒤 약간 상기된 마음으로 퇴장하는 사람들 틈에서 정관용 교수를 목격했다. 물론 나의 B석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지만, 저런 사람도 B석에서 보는구나 하는 약간의 반가움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다른 공연을 S석일 1층 중간쯤에서 본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은 1층보다는 2층이 총체적 조망이나 시야의 해방감에서 더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름 고심해서 세 개의 공연을 예매했다가 후에 추가 오픈 문자를 받고 또 두 개의 공연을 예매했었는데 결국은 저녁 공연 세 개를 모두 취소하고 올해는 일요일 낮 공연 두 개만 보기로 했다. 집에서 공연장까지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여서 항상 걸어갔다가 오는데, 전에 저녁 7시에 시작되는 공연을 보고 오는 길의 어둠과 드문 인적에 괜스레 불안하고 스산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 9시 이후의 거리를 겁내거나 두려워하는 일은 서울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내려와 살다 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실은 이래저래 마음의 힘이 많이 떨어진 터라 굳이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하여 올해 나의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은 단 두 번, 그중 하나가 오늘의 [킹스 싱어즈 II - 하모니를 위하여 - 통영], 킹스 싱어즈는 워낙 유명하니 낯설지 않고 프로그램에 조지아 노래들이 있어서 궁금했다.
공연 전날 오후에 멤버 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확진되어 프로그램 변경이 불가피하고, 예약 취소를 원할 경우 수수료 없이 환불해준다는 문자를 받았다. 치명률이 많이 낮아지고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걸렸지만, 먼 이국에 공연하러 왔다가 확진되어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을 누군가를 생각하니 좀 안쓰러웠다. 저녁에 유튜브에서 실시간으로 생중계해주는 킹스 싱어즈의 첫 번째 공연을 봤는데, 원래 멤버가 여섯 명인지도 몰랐고 다섯 명의 공연도 충분히 좋아 보이기는 했다.
오늘 나의 자리는 5층의 첫 번째 줄, 작년 폐막 공연 때 앉았던 자리였는데 어디에 시선을 집중해야 할까 싶을 만큼 악기와 연주자들로 공간이 가득찼던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역시 달랐고 아카펠라팀이라 연주자 없이 커다란 무대 중앙에 다섯 사람이 모여 선 게 휑하기는 했다. 파트로는 카운터테너와 테너, 베이스가 각각 한 사람, 바리톤이 두 사람이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공연을 시작하며 미리 준비한 한국어로 어눌하게 인사를 전했다. 비영어권 국가의 관객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겠지만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좋은 관례라고 느껴졌고 객석과 무대가 나누는 웃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후에는 영어로 간단히 곡에 대한 소개를 하며 무대를 이어갔는데, 프로그램 안내지 덕분에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역시나 영어는 늙어도 공부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아카펠라 무대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높고 낮은, 얇고 굵은, 가녀리고 묵직한 다섯 목소리들의 어울림과 절묘하게 만나고 흩어지고 서로를 받쳐주는 리듬감이 꽤 놀라웠다. 대부분 모르는 노래여서 순간의 황홀과 완전한 망각이 반복되는 건 아쉬웠지만, 기대했던 조지아 노래들에다가 프로그램에 나온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에스토니아의 노래들까지 들을 수 있었던 건 반가웠다. 타악기가 등장한 한 곡 빼고는 온전히 목소리들로만 이루어진 공연임에도 지루하지는 않았는데, 곡 선정과 순서에도 신경을 썼겠지만 중간중간의 가벼운 멘트와 약속된 움직임들로 만들어내는 경쾌함 덕분이었던 것 같다. 2부까지 마치고 커튼콜과 앵콜이 이어졌고 마지막에 다시 나와 각자의 아이패드를 챙기는 일사분란한 동작(하루이틀 공연하는 게 아닐 테니 대부분은 약속된, 수없이 반복된 세레머니겠지만 가장 큰 웃음 포인트였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인사로 유쾌하게 공연이 마무리되어 돌아오는 길의 기분도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