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갑작스러운 분주함의 정점은 오늘, 중고차를 사러 다녀온 부산행이다. 이십 년 묵은 장롱면허자로서 몇 년 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는 코란도에게 사고를 당한 후 남은 생을 장롱면허자로 살아갈 것이 더욱 자명해졌는데, 7월 1일(나의 사랑하는 백석 시인이 세상에 온 날이자, 마지막 일터를 그만둔 지 딱 2년이 되는 날이다.)을 디데이로 정한 연초의 결심이 완연한 미션 임파서블로 화함과 동시에 뭔가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수 생활 2년 내내 유유자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은 커져가고 걷거나 버스를 타거나로 한정된 통영에서의 나의 세계가 딱 그만큼으로 오그라든 느낌이기도 했다. 오그라든 세계에서 웅크린 일상이 나 역시 기껍지는 않았으므로,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운전에 생각이 미쳤고 좀처럼 도전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자극이 필요하다는 이상한 오기도 동반됐다.
운전도 차도 아는 바 없고 돈도 없으므로 당연히 중고경차를 생각했고 몇 년 전 중고경차를 구입해 몰고 다니는 부산 지인에게 상담을 청해 함께 중고차 보러 갈 날을 잡았다. 그게 한 달쯤 전이었고, 그 사이 중고차앱 몇 개를 생각날 때마다 살펴보며 모르는 중에도 보험이력 없고 연식 너무 오래지 않고 주인 많이 바뀌지 않았으며 가급적 저렴한 차를 중심으로 살펴보며(별로 없었다ㅠ) 대강의 시세를 익혔다. 어제 최종적으로 앱에 올라와 있는 몇 대의 차를 찜해서 지인에게 공유하고 터미널에서 가까운 사상구청 주변 중고차 단지로 향했는데, 몇 가지 조건에 집중하느라 그 차가 밴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음을 전화 문의로 깨달았다. 잘 응대해주셔서 근처에 온 김에 다른 차를 볼 수 있는지 여쭙고 단지로 갔는데, 그분은 통화할 때보다 더욱 친절하고 편안한 눈높이 설명으로 나와 지인을 사로잡았고 원하는 조건에 맞는 오늘 등록됐다는 차를 보여주셨다. 내친 김에 지인이 운전하고 그분이 동승해 시승을 잠시 해보고, 그래도 첫 방문에 결정하기엔 섣부른 것 같아 망설이는 눈치를 채셨는지 편하게 다른 곳도 둘러보고 오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서비스 노동자의 (내 입장에서는 이유 없는) 불친절은 좋아하지 않지만 팔할은 감정노동일 과한 친절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분은 사근사근한 태도가 몸에 배인 듯한 느낌이었고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손님에게 수준과 필요에 맞는 설명을 해주시는 센스도 감동적이었다. 차에 대해 잘 모른다고는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운전자였던 지인 역시 이분의 설명과 태도에 신뢰를 느꼈다고 했는데, 사실 난 그 정도가 아니라 외롭고 서러운 사람에게 사상역에 중고차 보러 가라고 권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려나, 오늘 둘러보고 홈서비스 신청까지 하기로 했기 때문에 지인의 차를 타고 사하중고차 매매단지로 향했고 찜해둔 차와 더불어 현장에 있는 경차들을 몇 대 보았다. 들른 매매단지는 두 군데였지만 예닐곱 대의 차를 보고 나니 여러 조건들의 결합으로 형성된 시세에 대해 좀은 이해가 되는 느낌이었고, 이외의 찜했던 차들을 굳이 보러 갈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됐다. 결국 처음에 방문했던 곳에서 오늘 등록됐다는 차를 사기로 결정하고, 그분께 전화를 드렸다.
처음에 볼 때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을 느끼셨는지 앱에 등록된 가격보다 조금 싸게 해주시겠다고 했었는데, 그 가격 자체도 내가 결정한 예산을 초과한 것이기는 했다. 흥정 같은 거 못하는 편이라 깎아달라고 할 엄두는 못 냈지만 가격이 부담은 되어서 그 가격으로 홈서비스까지 해주시면 안 되는지 좀 불쌍하게 여쭤봤더니 그렇게 해주셨다. 날씨가 너무 더웠고 야외에서 성의껏 설명해주신 게 고마워서 사들고 간 커피 덕분도 조금은 있을 것 같다. 암튼 생각보다 깔끔하고 명쾌하게, 보험이력 없고 주인 한 번 바뀌었다는 중고경차를 편안하고 흔쾌한 마음으로 구입했다. 사무실에서 계약하고 난생처음 가입하는 자동차보험료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지만 오늘은 어차피 돈 쓰는 날, 운 좋게 만난 친절한 담당자님 덕분에 거래가 만족스러웠다. 차는 다음 주 월요일에 도착할 예정이고,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문 도로연수를 신청했다. 운전하기로 결심하고 불안해서 운전공포증도 검색해보고 별 상상을 다했었지만... 비행기도 아니고 우주선도 아니고, 별의별 사람 다 하는 건데 생각하며 나도 한 번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