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매일 바쁜 이번 주, 오늘은 석 달 넘게 열네 번으로 진행된 '통영을 빛낸 문화예술인을 만나다' 마지막 시간이었다. 지난 주 화요일 박경리, 서우승 작가에 대한 도서관 강의에 이어 오늘 오후 야소골 서우승 시비와 박경리 기념관, 묘소를 답사하고 간단한 수료식으로 마무리됐다.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강의를 발견했을 때 반색하며 신청했고, 다루는 모든 인물에 큰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통영이 좋아 시민이 된 자로서 한 번은 듣고 가보고 가급적 관련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관련 책은 절반쯤만 읽은 것 같은데, 인지도와 위상이 곧 매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은 중반쯤부터는 강의날이 다가올 때마다 갈까말까 내적 갈등이 커져갔는데, 어쨌든 마지막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한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오랜만에 간헐적이지만 주기적으로 인내심을 발휘한 시간들이었다.
산양스포츠파크 근처라는 야소골 서우승 시비와 박경리 기념관은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그럴 수는 없었고, 몇 달 전 집 근처 케이블카파크랜드 쪽에서 박경리 기념관까지 임도가 개통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혼자 걸어가기에는 막막해 버스를 탔다. 지도앱으로도 버스정류장 전광판에서도 실시간 버스 도착 알림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이 통영의 현실이므로(도대체 왜?), 지도앱으로 대략 검색하고 여유롭게 나갔더니 한 시간 일찍 목적지에 도착했다. 날은 덥고 산양스포츠파크는 휴무라 애매해서, 두 정거장 전에 지나온 꿈이랑 도서관에 가봤다. 예전에 여행하며 들렀을 때는 산양도서관이었던, 선생님의 책도 한 권 있어서 반가웠던 곳이었는데 작년엔가 리모델링해 어린이미각도서관인가로 바뀌었다는 소식만 들었었다. 길게 머물 수 없어 대충 둘러봤는데 시원한 바다 같은 바닥이 마음에 들었고,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꾸며진 아기자기한 내부도 귀여웠다.
서우승의 "물소리" 시비 앞에서 야소골 마을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떤 분의 차를 얻어타고 박경리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기념관 앞에서 작가의 묘소와 기념관이 조성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자로 처음 기념관과 묘소를 찾았을 때 바로 인접한 양지펜션의 존재가 궁금했었는데,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통영을 방문했을 때 묵었던 곳이었고 농원과 펜션을 운영하시던 정창훈 변호사라는 분이 2005년 작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통영으로 장지가 정해지자 자신이 훗날 묻히려던 양지바른 땅을 작가의 묘소로 기부했다고 한다. 이후 장소 선정에 난항을 겪은 박경리 기념관은 그가 호텔 부지로 계획 중이던 지금의 땅을 시에 내주어 세워질 수 있었고, 2012년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묘는 박경리 작가의 묘소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통영에서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처음 알게 된 자로서 감동적이기도 하고 대단한 일이다 싶었는데, 기념관이나 펜션 어디에도 그런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건 아쉽게 느껴졌다. 열네 번의 강의를 들으며 열혈 강사님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의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가 가능할 수 있었던 고 정창훈 님의 결정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만큼은 공감이 됐다.
후반으로 갈수록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보다 모든 사연에 '나'가 너무 많고 감탄도 한탄도 과한 데다 청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스스로에 도취되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감정노동의 괴로움이 커져갔다. 스무 명쯤의 수강 인원 중 절반 이상 강사와 혹은 서로 기존의 인연이나 친분이 있는 분위기였는데, 그렇지 않은 듯한 몇몇은 초반 이후 스승의날 주간을 기점으로 사라졌고 마지막까지 남은 수강자들의 강의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에 나는 때로 아연해졌다. 강의 때마다 이물감과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반색하며 신청할 때는 예상할 수 없었던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오늘로 끝났다. 시원시원 홀가분, 그래도 덕분에 이런 시간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어떤 이야기들 그리고 마주치면 인사 나눴던 분들이 있었고 따뜻한 눈빛이나 표정 덕분에 잠시나마 마음이 순해지는 순간이 있었다는 건 고맙게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