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2. 4. 14. 17:46



1956년 6월, 홀로 유럽 유학을 떠난 윤이상이 아내 이수자에게 보낸 편지들 중 89편을 추려 엮은 책이다. 부산사범학교에서 각각 음악과 국어 교사로 재직하던 두 사람은 1950년 서울에서 결혼해 딸 정과 아들 우경을 낳았다. 윤이상은 1955년 "피아노 삼중주"와 "현악사중주 1번"으로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해 받은 상금 등으로 다음 해 프랑스 유학을 떠났고,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 부산으로 내려가 교직 생활을 하며 남편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책에는 1961년 9월 아내가 유럽에 올 때까지 5년 4개월간 보낸 편지들이 연 단위의 장으로 나뉘어 시간순으로 실려 있다.

 

윤이상이 가족과 지인 들의 배웅 속에 여의도 비행장을 출발해 도쿄와 홍콩, 앙카라와 이스탄불을 거쳐 파리에 도착한 1956년 6월은 한국전쟁 정전으로부터 만 3년이 안 된 시점이었다. 전쟁과 고아, '거러지'의 나라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윤이상은 빠듯한 형편으로 생활하는 아내가 부쳐주는 돈으로, 역시 빠듯하게 생활하며 어학과 현대음악 공부에 열중한다. 새로운 세계의 경험과 소회, 공부에 대한 포부와 음악에 대한 꿈, 가족과 함께하는 미래, 두 아이 양육에 대한 의견,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채워진 편지는 윤이상에게, 가족과의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이 고된 유학 생활을 버티게 하는 큰 힘이었던 것 같다.

 

편지에는 유학 생활의 소소하고 구체적인 이야기와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 대한 안부, 장래에 대한 계획과 바람, 현대음악계에서 성장하는 과정 등 개인사가 주로 담겨 있지만,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의 관찰과 소회를 통해 당시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면모를 엿볼 수 있고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변화와 시간성 등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불과 몇 년 전 미소의 대리전을 치렀던 한국의 낮은 위상과 그에 대한 반전의 노력을 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음악적 성공으로 한국의 다른 모습을 알리고자 하는 의지, 당시 유럽 사회와 현대음악계 내부의 일면 등이 그랬고, 파리에서 백림으로의 이전과 관련해 분단 상황과 정치적 불안이나 변동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에서는 '동백림 사건'으로 고난을 겪고 살아생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그의 운명이 떠올라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윤이상의 파리 생활은 세계와 현대음악에 대한 개안의 시간이었지만 아내에게조차 그대로 털어놓을 수 없을 만큼 고생스러웠다. 유학 초기의 편지들에는 앙리앙스 프랑세즈에서 어학을, 프랑스 국립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면서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며 쇼팽 기념비 옆에서 상념에 잠기고 자신이 이룰 음악 세계에 대해 꿈꾸는 낭만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교수에게 가져갈 수업료가 모자라 걱정하다 우연히 아내의 사진 액자에서 천 프랑을 발견하고 기뻐하거나 길에 쓰러진 동남아시아 학생이 남일 같지 않다고 에둘러 적는 등 후반으로 갈수록 환율에 민감해지고 돈 걱정이 짙어진다. 와중에도 윤이상은 한국을 욕하는 현지 기사를 보며 분개하며 반박문을 계획하고, 3.1절에 열린 공관의 기념식에서 강력한 고사에도 파리의 한인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며, 용무 겸 처음 여행이었던 화란(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는 이준 열사의 묘지를 방문해 진혼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윤이상에게 유학은 자신이 하는 음악이 거짓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당시 한국에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막막함과 일본 음악계를 하늘처럼 알며 잘난 체하는 이들이 장악한 음악계에 서양음악의 전통을 제대로 이식하겠다는 중대한 책임 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애비의 옹색함으로 설움을 안겨줬던 딸에 대한 아픈 기억과 함께 가족의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순위는 가족이었다. 편지에는 늘 가눌 길 없는 그리움이 뚝뚝 흐르고, 성북동 시절의 정겨웠던 기억에 대한 회상이 수차례 등장한다. 아내와 떨어져 있는 상태로 3년을 넘길 수는 없다는 결심을 수차례 밝히며, 아내와 아이들을 파리로 불러들이려는 이야기도 재차 언급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윤이상은 파리 생활 1년을 채우고, 학비가 무료에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드는 독일의 백림으로 유학지를 옮긴다.

 

1957년 7월 윤이상은 파리에서 출발한 기차를 타고 쾰른까지, 그곳에서 베토벤의 고향 본을 들르고 다시 기차로 하노버까지, 그리고 비행기로 동독 지구를 넘어 서베를린에 닿는다. 베를린음악대학 학장에게 작품을 선보인 후 공부를 시작한 윤이상은 독일 유학 1년 정도가 지나며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긴요한 장학금을 받으며 조금 더 숨통이 트인 상태에서 공부와 작곡을 병행하면서 1958년 8월 베를린 국회의사당에서 "현악사중주 1번"이 초연되고, 9월에는 전위적인 국제현대음악제가 열리는 다름슈타트에 크라니히슈타인 국제 현대작곡가 하기연구소의 장학금을 받아 참석한다. 청년 백남준을 처음 만나고, 존 케이지의 신작 연주에 문화적 충격을 받으며 현대음악의 최전선을 경험한 윤이상은, 다음 해에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 무대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초연하고 무대에 세 번이나 불려나가 인사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다름슈타트에서의 성공과 이례적인 찬사 이후 '한국에서 온 이상 윤'은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호의적인 신문평과 기사들이 각종 지면에 실리면서 작품이 학문적 가치를 인정 받아 출판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의 작품을 원하는 무대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음악적 행보 역시 확장되고 여러 무대에서 거듭 인정받으며 윤이상은 그간의 성취를 발판으로 독일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가족들과 함께할 것을 결심한다. 애초 3년을 다짐했던 유학 생활은 이미 그 시한을 넘겼지만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음악계에 두각을 나타낸 지 몇 년 안 된 음악가의 이름은 잊혀질 것이었다. 여러 고려 끝에 함부르크를 최적지로 결정한 윤이상은 아내에게도 동의를 받아, 아내와 몇 년 후 아이들의 입국까지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한다. 아내 이수자는 5.16 쿠데타로 인해 예정했던 5월을 넘겨 1961년 9월 20일에 독일에 입국했다고 한다.

 

선별 과정에서 빠진 편지들이 많겠지만 대략 일주일에 한 번쯤 쓴, 아내에게 보내는 개인적인 편지이다 보니 사소한 생활상의 일들이나 감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 등이 그대로 느껴져 새로웠다. 마흔에 가족들과 떨어져 시작한 '값비싼' 유학 생활이니 만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당대 현지 음악에의 탐색 등 전공 분야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아내와 가족들, 지인들, 한국 사회에 대한 윤이상의 마음과 삶에 대한 태도 역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시대의 거인' 역시 한 사람의 생활인인 건 당연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 주변을 꽤 세세히 챙기며 특히 죽마고우이자 월북 작곡가인 정길 아버지 최상한과 그의 아내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 살림과 아이들 양육을 도우며 함께 산 정자의 결혼에 대해 관심하며 책임을 다하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산청 출생에 대한 언급과 한국의 입상 기념회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모르는 통영 문화계 인사들의 증언에 대해 마뜩지 않아 하는 부분 역시 기억에 남고, 짧은 기록이지만 금세 파악할 수 있는 분위기 같아서 좀 웃기기도 했다.

 

압권은 단연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도저한 사랑에 대한 구체적이고 새로운 표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편지를 읽고 있자니 실은 "듣기 좋은 꽃노래도..." 싶은 마음이 일었고 약간은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5년간 매주 한 통가량의 편지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느낌과 이틀만에 놀랍게 반복되는 고백의 편지 89통을 몰아 읽는 차이는 엄청난 것이겠지만 말이다. 단 한 사람의 수신자를 위해 쓰인 글이고, 수신당사자의 결정과 의지로 출판되었고, 대중에 공개해도 되겠다고 판단되는 부분들이 묶였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해 읽기 시작한 책이므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만 말이다. 표지도 제목이 풍기는 의고적이면서 센스 있는 느낌도 분명 마음에 들었는데, 체감상 두어 쪽마다 등장하는 사랑의 찬가가 내게는 부담스럽다 못해 좀 아연할 지경이었다.

 

물론 건강도 미래도 별로 밝지 않아 보였던 노총각을 사랑으로 보듬고 늦깎이 유학까지 지원하는 아내를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문제와 별개로 윤이상은 마음속에 한 사랑의 화신을 품은 인물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했다. 너무 반복되니까 읽으며 나도 모르는 탐구가 시작되었는데 중반쯤에 이르러 "당신은 나의 모든 향수와 애착과 공상의 중심. 모든 나의 그리운 상념은 당신으로부터 일어나며 당신의 얼굴속에서 전개되며 당신의 그림자와 동시에 사라지오. 당신이 그런 존재이냐 아니냐는 전연 별 문제이고 나는 그것이 나의 인간성을 집결시키는 요소이며 남편으로서의 도리이며 아버지로서의 길이오. / 나는 당신을 생각할 때 저 먼 바다의 등대를 바라보는 것과 같소. 자나깨나 내 눈에 비치는 이 우뚝 솟은 등대의 불빛이 둘, 셋. 이것이 나의 고향이요, 나의 조국이요, 나의 예술이요, 나의 철학이오."(125p)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는 사랑을 사랑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물인가 싶으면서, 그나마 약간 납득하기로 체념했던 것 같다.

 

책장에 묵혀두던 책을 읽게 된 것은 지난 주 강의와 토요일의 답사 덕분이다. 어렸을 때 이수자 여사가 쓴 두 권짜리 책을 읽었는데 워낙 예전이어서 내용을 잊었고, 이후 그에 대한 책을 읽은 건 처음이다. 씨디를 사서 들어보기도 했고 작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작품 연주를 듣기도 했지만 음악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를 못하는 중에, 반공과 분단 시대의 희생양이 된 측면도 있다 보니 내게 윤이상은 존재의 그늘과 무게가 짙은 인물이었다. 책 한 권으로 누군가를 얼마나 알 수 있겠냐마는, 이 책으로 만난 윤이상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지독한 사랑꾼쯤이 될 것 같다. 이전에 여행하며 또 내려와 살면서 윤이상기념관을 대여섯 번은 둘러봤는데, 물론 그의 본령은 음악이지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도 더 잘 엿볼 수 있다면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은 읽으며, 오늘날의 기준을 잣대로 들이대는 건 부당한 것이라고 세뇌하듯 생각하면서도 가부장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저항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 잔소리 진짜 많네 싶기도 했다. 순도 높은 사랑과 의심할 바 없는 운명으로 엮인 남녀 혹은 부부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나 관점이 결여된 편이라선지, 아무리 사랑한들 이렇게나 전방위적인 압박이라면 거부감이 들지 않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고 세상 처음 보는 무수한 표현들이 수두룩한 연서에 질리는 감도 없지 않았다. 절대 내 타입은 아니지만(죄송합니다) 시대의 정서를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직접 표현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말이다(놀라운 나머지 몇 구절은 아래에 기록해둔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살지 않았던 시대임에도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테이프 같은 매개물에 마음이 갔고, 이제는 꿈도 꿀 수 없을 '느린 세계'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지나게 될 때면 주의 깊게 보곤 했던 윤이상기념관 외부의 사진 중 일부에 대한 맥락적 이해가 더해진 것도 나름 수확이다.

 

"나는 마치 순진한 중학생이 그의 절대의 애인을 사모해서 날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사랑의 일기를 쓰는 것 같소. 어쩌다가 우리는 알맹이와 알맹이가 만나서 나는 이렇게 당신을, 당신은 그렇게 나를 생각하고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하는 아름다운 운명이 되었소."(30p)
" 내가 마흔의 나이로 자나깨나 당신만 생각하고 있으니 마치 중학생이 그의 눈에 그리는 절실한 연정 같구려."(51p)
"... 그리고 지금 만 1년이 지났구려. 오늘은 당신을 위해서 집에서 당신을 생각하는 날로 정하고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소."(79p)
"여보! 나의 애인, 내가 당신의 사랑에 목말라 이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때에는 당신의 품에 돌아갈 것이오. 나의 마누라 내가 당신의 평생의 반려자 된 운명을 늘 감사히 생각하며 우주가 열 번, 백 번 바뀔 때까지 그 뒤 몇 백 번을 바뀌어도 당신의 남편 되기를 원하는 당신의 낭군이 뜨거운 뽀뽀와 축복을 보내오."(122p)
"나의 사랑아! 나의 영원의 애인아, 나의 생명의 목표여! 당신의 신체와 영혼 속에 깃들인 성스러움을 나는 믿으며, 나의 즐거움이 또한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리고 어린것들에게도......"(148P)
"... 때때로 당신을 허공에 띄워 생각해 보고 불러 보고 하는 것이 나의 산보할 때의 유일한 낙이오."(165P)
"나는 처음 반 조각의 인간이던 나를 당신이 발견해 주고 사랑해 준 데 대한 당신의 그 대담한 처녀의 순정에 나는 일생 잊을 수 없는 당신에의 사랑을 나의 생리화 시켰으며 나는 경우가 도달하는 대로 당신을 행복하게 할 것은 늘 생각하여 마지않소."(257-258p)

 


윤이상
2019.11.5.초판1쇄, 남해의봄날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침내 런던]  (0) 2022.04.24
[채링크로스 84번지]  (0) 2022.04.22
[지구 끝의 온실]  (0) 2022.04.13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0) 2022.04.07
[너무 시끄러운 고독]  (0) 2022.03.20
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