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fm4u에서 방송 중인 고 정은임 아나운서 20주기 특집방송을 듣고 있다, 부제가 "여름날의 재회". 얼마 전 기사를 보고 알게 되어 듣고 싶어서 챙겼는데, mbc의 영화음악 방송 dj가 한예리인지 1부 시작부터 그의 내레이션이 흐르고 때로 정은임의 목소리와 오버랩되어 기대했던 마음이 초장부터 한풀 꺾였다. 아직은 성공한 미래를 알 수 없었던 여러 영화인들의 웃음 섞인 회고담들이 그냥 그랬는데, 세월이 흐른다는 게 그런 것일 테고 고인이 된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 늘 무거울 필요는 없겠지만 덕분에 또 한풀. 와중에 이름만 익숙했던 '홍동식' pd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고, 정성일과 손석희의 기억담을 처음 들었다. 지금은 AI 기술로 구현한 정은임의 목소리로 2부 방송이 흐르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인사를 전하는 오프닝의 목소리는 정밀한 기술로 흐른 세월 만큼의 나이도 입힌 듯했는데, 얼마 전 [원더랜드]를 보면서도 느꼈던 양가감정이 온몸을 통과하고 있다. 과학 문외한 주제에 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생인들의 기술과 욕구로 고인을 소환해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 자체가 나는 뭔가 선을 넘는 일 같기만 하다. 한참 전 고인이 된 뮤지션의 홀로그램 공연이니 뭐니 하는 소식을 듣고도 소름이 끼쳤었는데, 살아있는 자들의 욕심일 뿐 아니라 무례이고 오만이라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다. 특집방송 덕분에 [아이다호]니 리버 피닉스를 언급하는 정성일과 정은임의 목소리를 오랜만에 듣게 되어 마음이 반짝였고, 당연히 엄청난 고심과 성의를 모아 구성했을 지금의 2부 방송이 거론하는 영화와 들려주는 노래들에 마음이 일렁이지만... 다시 만날 수 없는 존재, 다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굳이 가상으로 되살려 타인의 기억과 욕망으로 채우는 현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기억도 추모도 재회도 고맙고 반가운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방식이어서, 마냥 빠져들지도 못하고 차마 끄지도 못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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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3부를 찾아 들었고, 마지막 정은임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팟빵에 가입한 계기도 처음 구독한 것도 정영음이었고 가끔 다시 찾아듣고는 했는데, 아버지와 민연홍님 덕분인 줄 몰랐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