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기2021. 1. 13. 23:45

 

오늘은 [미스터 존스]를 보기로 마음먹은 날, 며칠 전 앱을 보니 4시 상영에 예매자가 1명 있어서 괜히 궁금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같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또 늦잠을 잤고(올해 들어 열흘은 성공적이었는데, 그제에 이어 또다ㅠ) 뭘하든 예열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데다 뭔가 챙겨먹고 걸어가기에는 마음이 바쁜 느낌이 들었다. 햇살 좋은 시간을 놓치기 아쉬워 12시부터 2시까지는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승열의 세계음악기행>을 들으며 아침겸점심겸저녁을 먹고 대충 집 정리를 했다. '임헌일의 사운드 스케이프' 코너에서 웃음소리를 들려줬는데 둘이 웃는 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정말로 웃어본 지가 꽤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5시쯤 산책 겸 영화 보러 나가면서 문득 즐겁게 걷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떠올랐다. 지난 달 안산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 의지와 별개로 한동안 나를 감싸고 있었던 부정적인 기운을 떨쳐내고 싶다는 바람과 동시에 직관적으로 떠올라 처음 들었었다. 최근 회였고 김숙이 연예대상을 받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어쨌든 덩달아 유쾌해진 기분이 되어 좋았다. 뭔가 마음에 들면 시작부터 끝까지 알고 싶은 전작주의 본능 때문에 이후에 1회랑 2회를 찾아 들었는데, 라디오에 팟캐스트에 듣기만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지는 것 같아 관뒀다가 오늘 떠오른 거다. 영화관까지는 느긋하게 걸으면 2시간, 별 것 아닌 걸로도 많이 웃는 두 사람 덕분에 걷는 길이 즐거웠다. 300회 가까이 업로드되고 있으니 앞으로 영화관 가는 길에는 <비밀보장>을 듣기로!

해저터널을 지나 윤이상기념관을 지나 오랜만에 안쪽길로 걸었는데, 윤이상기념관에서 서피랑으로 이어지는 쪽의 벽들이 "안단테 윤이상 음악여행길"이라는 테마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오른쪽 벽에는 '가장 윤이상다운 악기 첼로로 윤이상의 삶을 그리다'라는 글과 함께 파란색 초상화가 있었는데, 음... 솔직히 처음에는 그래서 이 분은 어느 첼리스트인가? 싶었다가 자세히 보니 윤이상 선생이었네. 윤이상기념관 2층에 생전에 쓰던 첼로가 전시되어 있는 걸 봤었는데, 예전에 들었던 cd에서 느꼈던 화성과 불협화음의 조합 같은 곡들 말고 그냥 첼로 연주곡이 있다면 좀 덜 어렵게 느끼며 차근차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도 있고 해서 벽화길을 따라가볼까 하는 찰라 통영산 지인님께 전화가 걸려왔고, 통화하느라 벽화길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오늘은 안쪽길을 택했으므로 오랜만에 항남1번가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이전 가게의 브랜드가 남아있었던 명성레코드 간판이 바뀌었고 '나 5월에 커피 한 잔 킵했었는데 주인아저씨는 기억하실까?' 생각만 하며 지나쳤다. 난 혼자서 극장이든 식당이든 카페든 잘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긴축 생활 중인 백수이므로 통영의 식당과 카페 방문은 지인과 함께일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데... 9월에 부산지인이랑 마셨던 커피가 너무나 맛있었던 삼문당을 건너편 길에서 보니 불 켜진 모습이 참 예뻐서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진으로 패스. 

초행일 때는 북신시장부터 꽤 낯선 길이었던 영화관은 두 번째가 되니 금세 익숙해졌고, <비밀보장> 걷는 길이 가볍고 즐거웠다. 오늘도 혼자서 영화를 잘 보았고, 25분 기다려 15분 만에 도착한 버스 타고 집 앞에 도착해 1만 보에서 500보쯤 모자란 걸음수는 계단 오르기로 채웠다. 비록 늦잠으로 시작한 하루지만... 책 읽고, 조금 먹고, 지인과 통화하고, 많이 걷고, 영화 보고, 말끔히 씻는 것까지 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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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