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만 해도, 이렇게나 지난한 싸움이 되리라고는 차마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모 형제를 묻은 땅에서 봉분도 수습하지 못한 채 쫓겨나고 새로이 농사 지을 논을 일군다고 수로에 자식 빠져 죽는 줄도 모르고 일하며 땅을 지켜온 사람들, 그들의 터전이 이렇게도 짓밟힐 수 있을 거라고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무지렁이처럼 나는 돌멩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며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깊게 패인 주름에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다. 그저 땅만 일구며 살기도 어려워 농사꾼들 다 떠나는 시골에서, 그것만이라도 하며 살다가 죽게 해달라고 칠순 팔순의 어르신들이 2년이 넘도록 날마다 촛불을 들고 때때로 새벽밥 지어먹고 데모길을 나서며 그도 모자라 마을이 무너질까 잠 못 이루는 땅이 같은 하늘 아래 있다.
이 책은 문정현 신부님이 단장으로 있는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들이 2005년 봄부터 가을까지 주민분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다. 이미 낡은(?) 이슈가 되었다고 느낄 만큼 유명해진 평택이지만, 인터뷰가 진행될 때만 해도 외롭게 싸우던 주민들은 지킴이들의 접근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일부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오랫동안 당해만 왔던 사람들 특유의 피해의식과 외부 개입에 대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한이 너무 깊어 한 번 풀어놓으면 심란함을 수습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가슴에 묻고 죽자고 다짐했던 아픈 이야기들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백하고 만다. 피땀 흘려 일군 땅을 떠날 수 없는 절박한 마음, 소박한 바람에 송구함을 감출 수 없다.
무려 세 번째 강제 이주라는 기가 막힌 현실과 마주친 마을 최고 연장자 조선례 할머니는 그저 일찍 죽지 못한 게 억울할 뿐이라 하신다. 삼대째 팽성을 지키며 살고 있는 김석경 할아버지는 떠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구대추리땅을 지도로 불러낼 만큼 가슴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왔다. 그렇게 가슴에 묻은 땅의 한이 아직도 가득한데, 떠나와 터 잡은 땅을 지키겠다는 싸움에 앞장 선 자식이 평택구치소에 수감된 김지태 이장님이다. 머슴살이 십 년이면 장가를 못 든다는 말에 8년 만에 정리하고 대추리에서부터 새 삶을 꾸린 이민강 할아버지는 농사일로는 자식 키우며 살기가 불감당이라 새벽 청소부를 하며 흥얼거리던 노랫자락으로 이제 유명인사가 되었다.
쑥스러워서, 속상해서, 더 할 말이 없어서, 못미더워서... 갖가지 이유로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 인터뷰에 응한 수십 명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평택은, 어쩌면 원래 그런 데 였다. 당한 놈이 또 당하고 쫓겨난 놈이 또 쫓겨난다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던 사람들이 인생을 묻고 피눈물을 뿌려가며 일군 땅에서 이제 좀 살만 하다 싶어 집도 새로 짓고 했더니만 또 어디선가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주민분들은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남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켜내고자 하고 있었다. 고속 성장의 사회, 모든 게 급변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는 탓에 그분들이 불과 수십 년 전에 겪었던 일들이 까마득하게도 느껴졌지만... 따지고보면 내 부모와 같은 세대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평택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없다고 느끼기에는, 그분들의 삶이 그저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억울하고 눈물 겹다.
비행장을 만든다고 일제시대에, 미군기지 짓는다고 미군정기에, 세간살이조차 챙기지 못하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쫓겨난 그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움막 지어 겨울 나고 뻘을 매워 논을 만들며 일궈온 그야말로 마을 공동체를, 이제는 미군기지 한 곳에 모으겠다고 송두리째 내어놓으라고 한다. 일제 총독부와 미군정과 다를 바 없는 야만을 자행하는 자국의 정부가 들이미는 카드는 소위 '행정대집행'이라는 제도의 폭력일 뿐, 오십 여 년 전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멀쩡히 사람이 살고 농사 짓는 마을을 군사보호시설로 지정해 철조망을 두르고 진입로를 봉쇄해 지상의 섬을 만드는가 하면, 하늘에는 무시로 헬기가 날고 들녘에는 군인 경찰이 깔렸다.
그저 땅을 지키겠다는 신념, 고향에서 죽겠다는 바람 말고는 여느 촌로들과 다를 것 없던 순박한 주민들, 그래도 먹고 살게끔 해준 박통에 대한 향수와 빨갱이에 대한 자연스레 훈련된 적개심을 가지고 있던 책 속의 그들은, 그러나 이제 달라진 것 같다. 2006년 5월의 대추초등학교 침탈과 9월의 빈집 철거 등을 온몸으로 경험하며, 그들은 원했건 원치 않았건 누구보다도 정권의 본질을 꿰뚫게 되었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저항의 의지를 저녁마다 촛불로 밝히고 있다. 그렇게 일상이 되어버린 촛불집회는 어느덧 800회가 머지 않았고 '질긴 놈이 이긴다'는 그들의 구호가 현실이 될 날 역시 머지 않았음 싶다.
사실 나는 평택에 대해 혼자서 원죄라 생각하는 게 있다. 2003년엔가 잔뜩 움츠려 세상에 의기소침해 있던 때 어디선가 평택역에서 평화 한마당이라는 집회를 크게 한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그리고 지인을 통해 같이 가자는 연락을 받았던 것 같고, 하지만 속으로 '또 뭐야 평택은 원래 그런 데 아냐' 하고 뇌리에서 지워버렸었다. 이래저래 들리는 소식들에 마음 상하고 상처 받는 일이 겁나기도 했고, 그러다보면 어렵사리 찾은 일상의 평온이 또다시 깨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외면한다고 세상 저 편의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나 하나의 힘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만약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무언가 함께 하려 했다면, 그렇게 한 사람이 두 사람으로, 세 사람으로... 물론 난 별로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결국 세상이 바뀐다면 그런 식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리 가슴 아파하고 돕고 싶어도 결국 당사자가 아닌 고통에 대해, 얼마 전에 읽었던 대담의 한 구절이 어느 정도는 답을 주는 느낌이었다. 목격자는 방관자가 아닌 증언자여야 한다는, 물론 그 글에서는 저항의 역사에서 시인이나 철학자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었지만. 시련과 고통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삶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살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데... 최소한 증언자라도 되어야하지 않을까.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조금은 시대의 아픔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2006-10-08 01:53,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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