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부산영화여행 대신 추석 본가 방문에 맞춰 수도권과 서울에 다녀오며 영화를 몇 편 봤다. 9월 17일 오후 수원행 버스를 타고 올라가 9월 22일 통영행 버스에 몸을 싣기까지 5박 6일 동안 세 군데서 자면서 의왕에서 서울로, 일산으로, 다시 의왕으로 또 다시 서울로 이동하는 바쁜 며칠이었다. 와중에 일요일에 [열망]과 [토베 얀손], 화요일에 [코다]와 [그대 너머에]와 [옐라]를 보았는데, 한 편 빼고는 다 좋았고 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 기획전이 추석 연휴 이후에 본격적으로 상영된다는 게 무척 아쉽다. 하지만 10월엔 부산국제영화제에 며칠 갈 거여서 아쉬움은 그대로 남겨두기로 했다.
금요일에는 늘 바쁘지만 연휴 앞두고 저녁 일정이 없었던 지인과 동네맛집에서 저녁을 먹고 지난 번에는 떠올렸으나 시간이 늦어 불가능했던 노래방에 갔다. 작년 11월 이사 직전 우리집에서 책모임을 하고 서울 떠나는 기념으로(?) 갔던 이후 처음이었는데, 역시 1년에 한 번 정도로는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걸 실감했지만 의외로 김목경 아저씨의 노래들이 있어서 신기했다. 비록 반주는 매우 구렸지만 "남은 건 하나뿐"이 있었고 "하룻밤"은 무려 mr 반주(그래도 구렸지만)여서 경이로웠으며, 두 노래를 꿋꿋이 부르며 가수의 남다름을 실감했는데 나중에 노래방 가도 또 부르고야 말 것만 같다.
토요일에는 책 모임에 간만에 직접 참여해 이 달의 책이었던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책보다 준비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 나누기를 즐기는 지인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모임을 마치고는 얼마 전 이사한 일산 지인과 만나 니은서점에 함께 들렀다. 다른 지역으로 여행 가면 동네책방을 부러 들르곤 했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별로 가본 적이 없었는데,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궁금했었다. 약속 잡으며 얘기했을 때 마침 지인도 예전에 북토크에 간 적이 있다기에 더 반가웠고, 책방에 갔을 때 마침 손님이 우리뿐이고 북텐더분은 별로 신경 안 쓰시되 친절하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서가 곳곳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동네책방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지만 내 책을 사기에는 짐스러워 지인에게 책 한 권을 고르라고 권해서 선물했는데, 계산할 때 오픈 3주년 기념이라며 예쁜 파우치와 엽서세트를 주셔서 기뻤고 그건 내 몫이 되었다. 책방을 나와 지인의 집으로 가는 길이 재밌었는데,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버스를 잘못 탄 덕에 환승을 위해 내린 낯선 길을 걷고 다시 버스를 타고 서울과 일산 경계에 내려 천변을 걸었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고 신도시의 휘황함과 식물들로 우거진 천변 산책로의 호젓함 속을 걸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정겨웠다.
다음 날 아침 지인과 함께 집 주변을 산책하고 기한이 임박한 배라 기프티콘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10시에 문 여는 근처 쇼핑몰에 들렀다. 서울 살 때 집 근처라 자주 갔던 영등포 타임스퀘어랑 영화 보러 가끔 갔던 여의도 ifc몰이 떠올랐는데,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런 거 1도 없는 통영시민이 되고 보니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이삿짐 정리하며 가지려냐고 물었던 cd와 dvd, 책 등을 살펴보았고, 이사하며 남겨둔 물건들 중 나 역시 간직하고 있는 것들이 있어 괜히 반가웠다. 의미없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 찜해뒀던 김현식 아저씨 기획 음반과 [커미트먼트] 말고도 버릴 거면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딱히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다행히 또 다른 지인을 떠올리며 그에게 먼저 물어보기로. 나중에 지인이 김현식 아저씨 cd와 [커미트먼트] dvd를 갖고 통영에 오면, 함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이 준비한 모밀국수를 아침 겸 점심으로 맛있게 배불리 먹고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받으며 다시 서울로 이동했다.
추석 연휴 직후 조기 종료된다는 무민 전시회를 성수동에서 보았다. 예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의 전시가 좋았어서 많이 기대했는데, '원화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과 달리 주요한 컨셉은 무민 연작소설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공간마다 각 소설에 대한 설명과 관련된 작품, 조형물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고, 작가와 원화를 중심으로 한 공간이나 4면으로 영상이 흐르는 공간도 있었다. 그냥 귀여운 캐릭터로만 많이 알려진 무민의 탄생과 성장(?) 배경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애썼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대체로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었던 것은 마지막 기프트샵이었는데, 전시 라이센스 굿즈보다 기존에 여기저기서 판매 중인 무민 관련 물품들을 망라해놓은 것 같은 구성이었다. 덕분에 사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돈도 굳고 짐도 늘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예쁘고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딱 하나는 사고 싶었던 터라 아쉽기는 했다.
마침 개봉 중인 [토베 얀손]을 꼭 보고 싶었고, cgv용산에서는 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의 [열망]이 그 앞 시간 상영으로 잡혀 있어 시간을 맞추느라 전시를 아주 여유롭게 즐기지는 못했다. 아무튼 전시장을 나와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했지만 타야 할 버스가 떠나는 걸 보았고 한참을 기다려 다음 버스와 지하철을 탔고, [열망]의 처음 2~3분을 놓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아... 정말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만회할 수 없는 일은 있으니 뭐. 원래 예매한 자리로 가기에는 민폐여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어 있는 사이드 자리에 앉아 마치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는 듯 영화에 집중했는데, 그랬다. 정말로 금세 빠져들며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고, 흠뻑 빠졌다가 나왔다. 다음 영화 [토베 얀손]까지 보고 다시 의왕으로.
다음 날은 평소 아침 안 먹는 지인이 챙겨준 아침 겸 점심을 예의상 혼자 먹고 목욕재계한 뒤 서울 본가로 향했다. 자처한 일이지만 잠자리가 바뀌니 잠을 잘 못 자서 내내 피곤했고, 본가에 머문 2박 3일 동안은 약 50시간의 극한 인내와 경미하지 않은 금단 현상 및 그로부터 파생된 각종 심란함들로 인해 더욱 피곤하였다. 명절 연휴는 전날 오후에 본가에 가서 소소하게 음식 준비를 돕고 하루 잔 다음 가족들과 아침 식사를 한 뒤 친정집에 가는 새언니네 가족과 함께 나오는 게 십수 년 반복된 루틴이었다. 하지만 지인들 집에서 며칠 놀다가 간 주제에 꼴랑 하루만에 내려오면 엄마가 너무 서운해할 게 뻔해서 2박 3일을 잡았는데, 통영 사는 동안은 각오해야 할 일이지만 심히 고역이기는 했다. 내내 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추석날엔 아침 먹고 나가서 영화 세 편 보고 해가 져서야 들어갔는데도 그랬다.
서울 떠나기 전까지 한두 달에 한 번은 만나다가 이번에는 어버이날 이후 처음이었는데, 생물학적 나이란 게 있으니 당연하지만 부모님을 보며 이전과 달리 '노인'이시구나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속 애틋함을 살갑게 표현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오글거리고, 어릴 적부터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한 생각이 부모님과는 달랐기 때문에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 가능하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느끼는 애잔함 같은 게 없지는 않지만 우리집의 경우 아직도 자식보다는 부모가 여러 모로 당당한(?) 편이고, 세상살이에 대한 관점이나 태도 역시 판이하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야 나름의 다정한 관계가 유지되는 게 사실이다. 나만 원하는 대로 편하게 살겠다고 훌쩍 내려온 나쁜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만... 수요일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느낀 안온함과 해방감, 그러나 동시에 엄습한 부채감 같은 것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반복될 것인가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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