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다. 오라는 사람은 없지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며칠이다. 사는 동안, 열리는 동안 늘 그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재작년에는 토요코인호텔 유료 멤버십에 가입하고 해운대에 묵으며 영화를 보러 다녔다. 멤버십은 6개월 전부터 예약이 가능해서, 작년에도 영화제 일정이 나온 뒤 예약을 했는데 코로나19 자가격리 시설로 지정됐다며 취소를 당부하는 연락을 받았었다. 마침 장거리 이사를 앞두고 마음이 분주하기도 했고 코로나19로 인한 변수도 있을 것 같아 한 해 건너뛰기로 했다. 올해도 미리 예약을 했었는데 역시나 자가격리 시설로 지정됐다는 연락에 취소했다.
올해는 메가박스장산이 상영관에 없고, 재작년보다 2년 더 늙었으니 해운대에서 센텀시티나 영화의전당까지 한시간여를 걸으며 영화를 보는 게 부담이 될 것도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부산의 동네책방도 둘러보고 싶지만 막상 영화제에 가면 영화 보는 일 말고 다른 걸 할 여유가 별로 없다. 올해는 영화제가 시작되는 주에 지인이 놀러오기로 해서, 후반부의 4박 5일 동안으로 정했는데 마지막 날은 폐막일이라 영화제 대신 cgv서면에서 나 혼자 뒤풀이 삼아 영화 두 편을 보고 돌아오기로 했다. 걷는 여유로움을 포기하는 대신 영화 사이의 한두 시간 텀에 잠시 쉴 수 있도록 센텀시티역 쪽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라고 자연스럽게 쓰기에는 나로서는 꽤 고민한 결정이었다. 센텀시티 인근에는 싼 숙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 여성 백수로서, 이제는 가성비보다 쾌적함을 선택하는 자기애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248,200원이라는 거액을 숙박비로 치렀으며 후회는 없다.
남도 지인이 놀러와서 3박 4일을 함께하고 돌아가는 길, 나를 통영터미널에 내주는 것으로 부산행이 시작됐다. 날이 궂었고 따뜻한 음식이 좋을 것 같아 유명하다는 칼국수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지인은 직장 동료와 지인들을 위해 꿀빵을 사야했고 강구안에 널린 수많은 가게 중 줄을 길게 선 유명한 곳을 택했다. 한글날이 낀 연휴의 대체공휴일이어서 월요일이지만 관광객들이 많았고 10월 11일 오전의 통영 중앙시장 인근은 내가 미처 모르던 세계였다. 덕분에 꿀빵을 사는 데에만 30분이 훌쩍 넘게 걸렸고 터미널에서 나는 부산행 버스를 4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 터미널에 닿게 될 상황에서 지인은 통영도 시골이므로 버스에 먼저 가서 말한 다음 매표소에 들르면 된다고 마치 삶의 지혜를 알려주듯 말했지만, 나로서는 꿀빵 사는 줄을 서는 것만큼이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불규칙하게 오는 시내버스도 40분 넘게 기다린 적은 없어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부산행 액땜이라고 억지로 생각했다.
덕분에 숙소에 들러 체크인을 하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첫 번째 영화를 보러 가겠다는 깔끔한 계획은 불가능해졌다. 4박 5일 짐가방을 메고 영화관까지 걸어가기도 입장하기도 난감하고 민망했는데, 다행히 같은 영화를 보기로 한 부산 지인이 센텀시티역에서 픽업을 해주었다. 해서 주차장에서 아직 온기가 남은 꿀빵을 부산 지인에게 선보이고, 다소 가뿐한 몸과 마음으로 첫 번째 영화를 보러갈 수 있었다. 끝난 후에는 지인과 근처 버거킹에 가서 저녁을 먹고 각자 7시 영화를 보러 헤어졌다. 지인의 선택은 너무 긴 러닝타임 때문에 내가 포기했던 [파비안], 나는 온라인 GV가 끝나고 나와 지인의 차로 편하게 숙소까지 갈 수 있었다.
숙소는 좁았지만 쾌적했고 부산 도심에서의 하루 6만 원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지만, 이번 예약은 홈페이지 이벤트로 할인된 가격이니 내년에도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암튼 나흘간 숙소를 오가며 아래와 같이 영화를 보았다. 이전보다 행사나 홍보물은 확연히 줄었고 <씨네21> 데일리마저 사라진 건 아쉬웠지만, 너무 많은 종이들이 버려지는 것도 사실이니 좋지 않은 방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 수익도 반토막일 테니 영화제 사무국에는 미안하지만, 1년 반 넘게 그에 익숙해진 탓인지 거리두기 좌석제도 편안하고 좋았다.
실은 어떻더라도 나는 좋았을 것이다. 할 일이 영화 보는 것뿐인 며칠을 보내는 건 천국이나 마찬가지니까. 숙소에서 영화관까지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시간이 많이 남으면 숙소로 돌아가 잠깐 쉬고, 두어 번은 시간을 맞춘 부산 지인과 만나 수다를 떨고 사이 식사를 하며 나흘이 금세 지나갔다. 9월 말 메일함의 뉴스레터를 별 생각없이 클릭해 읽다가 "'그분'께 드리는 추천작'이라는 글을 보았고, 잠깐이었지만 따뜻했던 기억이 떠올라 망설이다가 사탕을 챙겼는데 어찌 됐든 다시 들고오지는 않을 수 있었다. 어른들에게도 버찌씨는 필요하고, 부산국제영화제를 고맙게 여기는 작은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 폐막일에는 각종 수상작들이 상영되기에, 나는 선생님이 보셨다는 [다함께 여름!]과 보고 싶었던 [바바라]로 cgv서면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몰랐는데 두 작품 모두 마지막에 '자막 부산국제영화제 제공'이라고 떠서 아주 적절한 피날레라는 느낌이었다.
2019년까지는 이렇게 알차게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고 돌아가면, 곧장 바쁜 일상에 빠져들어야 했고 그래서 더욱 꿈결처럼 느껴졌었다. 실은 이번 영화제를 기다리면서, 하는 일 없이 한심하게 사는 건 의도치 않게 내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별 것 아니게 만드는 행위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열심히 살면서 짬 내서 영화 보고 책 읽던 때랑 매일 유유자적 놀면서 영화 보고 책 읽는 건 그 반짝임과 밀도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의 문제다. 며칠 너무 행복했던 터라, 좋아하는 것들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는 생활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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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모임에서 써야 하는 글이 있어 한창 들뜬 마음에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를 주절거렸는데, 주제에서 벗어난 것이 되었다. 부산에서 연락을 받은 터라 다녀와서 부랴부랴 다른 글을 썼고, 돌아본 기억들이 정겨워서 남겨둔다.
뤼미에르극장, 씨네코아, 코아아트홀, 하이퍼텍나다, 로드쇼, 스크린, 키노, 으뜸과버금, 영화마을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 20세기 말 20대를 보낸 내게는 하나의 선상에 존재하는 그립고 정겨운 이름들이다. 이 중 홀로 건재한 부산국제영화제는 규모와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여전히 마음의 고향 같은 느낌.
교지를 만들던 대학 시절, 취재를 빙자해 처음 찾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신세계였다. 이후 가을이 되면 영화 동호회 친구들과 <씨네21> 별책부록으로 나온 프로그램 책자를 들고 모여 수강 신청하듯 영화 시간표를 짜고 부산으로 달려가곤 했다. “영화인이냐?”, 엄마의 비아냥과 잔소리를 뒤로 하고 며칠씩 부산국제영화제로 떠나는 일은 20대 후반 몇 년간 이어진 가을 의례였다. 하지만 청춘과 축제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듯이, 나이를 먹고 일에 매여 지내며 자연스레 멀어졌다.
영화제가 아니면 갈 일 없던 부산을 다시 찾은 건 2011년 ‘희망버스’ 때문이었다. 마냥 즐겁고 설레는 영화제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지만, 몇 달 새 몇 번을 오가며 부산이 다시 친숙해졌다. 덕분에 욕심껏 짬을 내 오랜만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수 있었다. 'Piff'에서 'Biff'로 영문 표기가 바뀌고, 남포동과 수영만에서 센텀시티와 해운대로 주무대가 옮겨지고, 거대한 영화의 전당이 새로 문을 연 영화제는 낯설고 어색했다.
이전에 느꼈던 소박함과 정겨움은 추억에 기인한 것이겠지만, 휘황한 백화점을 통과해야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주인공인 적도 없지만 느닷없이 대상화된 듯한 착잡함 속에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오르며 불퉁해진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 그 모든 불만이 사라지고, 어쩌면 평생 가볼 일 없는 낯선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2011년 이후 가을은 다시 부산국제영화제의 계절이 되었다. 사회단체에서 일했기에 어떻게든 휴가 일정을 맞춰 며칠이라도 짬을 낼 수 있었고, 보이콧에 동참하거나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례행사처럼 여기며 일상의 해방구 삼아 충전의 시간을 보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암흑 속에 영사되는 영화는 다를 것 없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 몇 편의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걸으며 며칠을 보내는 건 꿈같은 일이다.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나라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이국의 풍광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객석까지 전해지는 떨림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인들을 접하는 것도 행복한 추억. 영화제에서 만난 영화 중에는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고, GV의 어떤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정겨운 기억으로 박제되고는 했다.
2013년에 봤던 [세바스티안]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성소수자 주인공이 페루의 고향 마을을 방문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다. GV에서 친형제인 감독과 제작자가 영화의 소재가 된 자전적인 경험과 작업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순서를 마친 후에는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직접 사인한 브로셔를 나눠 주었다. 별 것 아닌 종이 한 장에 담긴 그들의 마음과 수더분하면서도 진심 어린 태도에 마음이 일렁였고, 지금껏 책상 앞에 붙어 있는 브로셔는 매년 영화제가 다가오면 한 번 더 시선을 끌면서 반짝이던 순간을 환기한다.
가난한 단체 활동가이다 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오가고는 했는데, 언젠가는 기차에서 읽으려고 챙겨간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목차에서 ‘부산국제영화제’라는 단편소설을 발견하고 마음이 반색했던 기억도 새롭다. 하는 일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숨 돌릴 구멍은 부산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았던 2019년에는 오랜만에 자비에 돌란의 새 영화 [마티아스와 막심]을 만났다. 두 주인공의 예민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였는데 겪어보지 못한 상황임에도 깊이 이입이 됐고, 주체할 수 없는 흔들림을 상징하는 어떤 장면들은 이따금 선연히 떠오르면서 이후 몇 계절 동안 심란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고마운 영화가 됐다.
언제나 첫 번째는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영화 보는 걸 좋아했고 어느 시기에는 하는 일과 별개로 마음을 폭 파묻으며 살았다. 어렸을 적 비디오 가게에 가면 셀 수 없이 많은 네모 상자 안에 숨겨진 무수한 이야기들이 경이롭게 느껴지고는 했는데, 지난해 코로나19와 이사 준비로 한 해 건너뛴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리는 마음도 비슷했다. 9월 말, 온라인 예매를 앞두고 프로그램 pdf 파일을 다운 받아 시간표를 살펴보며 나도 모르게 슬며시 차오르는 황홀한 기대감이 반가웠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내가 아무런 연고 없는 통영에서 살게 된 것도 시작은 영화였다. 저 멀리 남쪽 도시에 불과했던 통영이 십 년 전쯤 재미있게 본 [하하하]를 통해 궁금해졌고, 여러 차례의 여행으로 이어졌다. 서울을 떠나고 싶어 곳곳을 기웃거리던 마음에 백석 시인의 이야기며 영화 [판소리 복서] 등에서 접한 조각들이 덧붙여지면서 막연히 꿈꾸던 통영행은 현실이 되었다. 현실이 된 꿈은 그저 현실이고, 서울이며 부산에서 상영되는 궁금한 영화들을 고파하는 일상이지만 2년 만에 다시 부산국제영화제에 갈 짐을 꾸리는 마음은 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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