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힘입어 오늘은 다르게 그리고 좀 더 나아갔다. 돌아오는 길은 다른 세상에서 건너오는 기분이었다. "하루가 또 하루를 살게 한다"는 박상영의 명언이 떠올랐고, 지금의 나는 하루가 또 하루를 걷게 하는 셈이다. 어제보다 일찍 나갔더니 통영해상관광공원에 닿았을 때 해가 지기 전이었고, '유동 골뱅이'를 돌아가면 어디가 나올지 궁금했다. 지도앱을 확인하니 사량도여객선터미널이 14분 거리,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보았다. 어제오늘은 이어폰과 휴대폰만 지니고 가볍게 산책에 나섰는데, 터미널 앞에 있는 배를 보니 훌쩍 떠나고 싶어졌지만 자세히 살펴 보니 마지막 배는 3시 30분이었다.
사량도여객선터미널을 지나서도 해안도로는 이어져 있었지만,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왔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걷는 셈이어서 이따금 석양을 보기 위해 멈춰 서거나 뒤를 돌아야 했다. 서울에서 자주 보던 비둘기나 참새에 더해, 여기에서는 까마귀나 왜가리(아닐지도 모른다, 백로라기엔 마냥 하얗지가 않아서 추정)를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김춘수유품기념관 앞 바다에서 물고기를 물고 있는 왜가리를 보고 신기했고, 도남관광지에서는 요트정박지에 망부석처럼 서 있는 한 마리를 보며 생각했다, '너, 나니?' 내가 본 왜가리(라 치고)는 주로 혼자 있어서, 발견하면 어쩐지 시선을 오래 두게 된다. 오늘도 두 왜가리를 보았고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걔네들처럼 고고한 외양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햇살독서 시간에 드디어 [티보가의 사람들] 5권 말미에 수록된 알베르 카뮈의 발문 "영원한 현대인, 마르탱 뒤 가르"를 읽었다. 며칠 전 앙투안느의 죽음과 "장 폴"이라는 단어로 마무리되는 "에필로그"로 본문을 다 읽고, 역자의 해설까지 읽었는데 그다음으로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늘 엄청 좋아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5권의 앞표지 뒷장에는 다 읽은 날짜와 사인이 없었다. [티보가의 사람들]을 다시 읽으며 푹 빠져드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지만, 긴 호흡의 책 읽기를 잘 못하기도 하고 새해가 되어서도 계속 이 책만 붙들고 있다는 이상한 조급함에 오히려 집중이 안 될 때도 있었다. 난 자크를 오래 좋아했는데, 뒤로 갈수록 특히 "에필로그"에서는 (자크가 죽어서만이 아니라) 앙투안느의 생각과 행동과 성찰 들에 무척 공감이 되고 자신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성숙하고도 우아한 인간이라는 생각까지하며 그를 보냈다. 그러나 해설에 이어 카뮈의 발문 도입부를 읽으며 마치 난독증에 걸린 것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아예 덮어뒀다가, [티보가의 사람들] 별권까지 잘 읽기 위해 오늘 펼친 것이다. 물론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대비하고 당대 프랑스 소설의 흐름을 짚어가는 도입부는 여전히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이전과 달리 활자와 문장이 조금씩 머리에 전달됐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와 본격적으로 [티보가의 사람들]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정말 재미있다고까지 느끼며 독서를 복기하면서 읽었다. 물론 번역을 거친 텍스트이지만, 역시 작가는 달라서 내가 느낀 문장이 되지 못한 느낌들을 그를 통해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하여, 발문에 이어 별권을 읽기 시작했고 그 뒤에는 예전에 분명 읽었으나 1도 기억이 나지 않는 [모뻬루 마을 사람들]을 다시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 보니까 읽기도 마찬가지네, 하루가 또 하루를 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