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늘 그렇지만 언제나 어딘가는 긴급, 위기 상황이다보니 은근 자주 놀러 다니는 편이면서도 여행을 결정하기까지는 며칠쯤 갈등과 고민 코스프레를 통과의례 삼게 된다. 밀양이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내심의 목소리를 접어두고ㅠ 경주-부산-남해-구례, 에서 하루씩 머무는 메뚜기 가을 여행 출발.
'소쩍새 우는 밤 보문산 기숡에 아름다운 사람 만나 기뻐서~' 하는 이성원의 노래를 하염없이 리플레이하며 청승에 빠져있던 어느 날, 보문산에 가야겠다 생각하고. 근데 경주에 보문호랑 보문단지 있는 건 알겠으나 보문산은? 대전에는 있던데ㅠ 암튼 지난 여름 "다큐3일"을 보며 가끔 마주치면 언젠가~ 하고 잊어버리곤 했던, 11월이면 복선화 공사로 운행이 중단된다는 동해남부선. 게다가 태화강역에 내려 울산 현대차 명촌철탑을 향한 카메라에 감읍하여 올 가을에는 꼭 저 동해남부선을 타야겠다 생각하고.
해서 이번 여행의 일정이 대략 잡혔다. 예전처럼 물 샐 틈 앖는 계획을 짤 마음도 정신도 없는 덕분에, 또 일하는 단체에 분기별로 일주일씩 휴가가 있는 덕분에, 봄 가을로 며칠 짜리 여행은 마음만 있으면 문제없다 싶은 여유로움까지 더해졌고 마침 남쪽에 사는 지인들도 만나고 동행할 겸 부산에서 남해, 구례까지 4박 5일의 짧지 않은 여행.
지난 봄 강릉을 여행하며 호기롭게 선택했던 도미토리의 실패를 거울 삼아, 이번엔 게스트하우스의 1-2인실 예약. 이번 여행의 숙소들이 마음에 들면 나중에는 2-3일 정도 한 곳에만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아무려나 오늘 경주, 동대구역에서 환승을 한 후부터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내리자 곧 빗방울. 다행히 맞을 만한 수준에 낯선 길을 걷는 운치까지 더해져 괜찮았고, 숙소를 찾아 30분 여를 걷는 동안 여기가 경주다~ 증명하듯 시야에 들어오는 고분과 릉 들 그리고 낮은 지붕의 정겨운 골목.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공기와 광경을 흡입하는 게 아닐까 싶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나와 예전 교과서에서 봤던 황남리 고분군이니 하는 노서•노동고분군을 주마간산 지나 경주시내 구경을 나섰다. 시청이 어딘가로 이전하고, 말하자면 구시가인 모양인데 도시 전체를 관광유적화하려는 욕심에 정리되지 않은 도로에 세운 자잘한 적잖은 조형물과 안내판 들이 꽤나 조야해보여 아쉬웠던. 날도 스산하고 여행 앞두고 월,화 무리한 탓에 컨디션도 그닥이라 점심 겸 저녁을 먹고는 시내버스 탑승. 원랜 포석정에 가볼까 싶었는데 자리에 앉으니 밀려오는 노곤함에 정말 오랜만에 종점여행 결정, 내가 탄 500번 시내버스의 종점은 무려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로 추정되는 봉계. 경주 시내를 벗어나 이런저런 릉들을 지나 무슨무슨 농공단지와 농촌마을을 지나자, 좀 의아스럽게 모여있는 식당들로 즐비한 그곳에 한우불고기특구라는 입간판이 떡하니. 시내로 나갈 버스를 기다리느라 종점에 앉아있자니 조금 후엔 울산시내버스가 도착, 행선지에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걸 보고 잠시 혹했으나 이미 어둠이 내리고 찬 기운이 온 몸에 퍼진 터라 다시 509번을 타고 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야경을 볼 수 있는 어딘가로 나서기엔 온 몸의 기운이 쫙 빠져 버스에서 제대로 내린 게 가상한 컨디션, 이제 시작이니 조절해야지 싶어 비상식량으로 초콜릿과 과자까지 사들고.
오늘의 숙소는 안팎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호모노마드 게스트하우스, 외국인들도 적잖이 찾아오는 곳인 듯. 내가 예약한 작은 방은, 이제껏 내가 경험한 방 중 가장 작은 공간이 아닌가 싶다. 퀸사이즈 침대 너비에 50cm 남짓한 길이가 더 있는 정도, 일상에선 꿈도 못 꿀 검박한 공간도 나름 여행의 맛인 듯. 한 가지 큰 아쉬움은 화장실과 욕실이 모두 실외에 있다는 것, 게다가 씻으러 갔다가 바스켓에 담아둔 칫솔이 변기로 직진한 통에ㅠ 음.. 역시 난 게스트하우스랑 안 맞는다는 자위성 확인을 한 번 더. 나이도 있고 사회성은 없으니.. 이후의 여행에선 이런 점을 무겁게 반영해야 할 듯.
암튼. 이렇게 여행이 시작됐고 오늘은 컨디션 조절차 일찍 자고 내일 오후 2시까지 경주의 시간을 또 즐겁게 흘려봐야겠다. 실은 매우 좋아하는 불국사는 나중을 기약, 환상 속의 보문산 기슭 역시 나중을 기약. 하여 매우 수학여행스럽지만 숙소와 경주역에서 가까운 천마총, 첨성대, 안압지 정도면 딱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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