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알리바이2013. 6. 2. 02:00




자정이 되기 전 퇴근한 주인장과의 게스트하우스 놀이를 마치고 객들은 본격 "짝" 놀이를 새벽까지ㅠ 조식 메뉴를 짜파구리로 미리 정한 듯 식탁 위엔 다소곳이 두 종류의 라면들이ㅋ
숙소가 있는 강문해변에서 경포해변 방향으로 걸어오다보니 적당히 흐린 하늘 적당히 부는 바람에 여전한 바다까지 참 좋다. 




98년쯤이 마지막이었던 듯 한데, 올 때마다 들렀던 윌카페는 우후죽순 들어서 해변상가를 채운 가게들 보란 듯이 '25년 전통'을 내세우고 있고... 기억 속 경포해변 조용한 구석의 통나무집 카페는 어느덧 커피도시 강릉의 작은 터줏대감이 된 듯. 찾아가볼까 싶었던 테라로사가 이웃해 있는데 너무 쉽게 발견해 패스. 인적 드문 바다를 보며 해변 그네의자에 앉아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있으니 옛날 생각난다. 여유롭게 오늘 여행 시작-





아침엔 적당히 흐려 걷기 좋더니 오후가 되니 덥다. 강문해변과 경포해변, 경포호 주변을 걸으며 오전시간 유유자적. 15년 만이니 당연하다 싶지만... 트윈폴리오니 서유석의 "아름다운사람" 같은 옛 노래를 울리던 포장마차들은 흔적도 없고 잘 짜맞춘 데크길이 여기가 관광지요~ 하듯 이어지더라.






뭐 그도 나쁘진 않고, 당시에도 좀은 시대착오다 싶었던 풍경과 노래의 기억이 남아있는 걸로 만족. 암만 깔끔무쌍 인공미를 발휘해도 사람 사는 건 별반 차이가 없어선지, 지나치다 발견한 낙서 하나에 살짝 뜨끔하고 반갑고 즐거운 마음이ㅋ

그렇게까진 필요없는데 400년이나 됐다는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매월당김시습'선생'기념관- 죽은 후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 칭해달라는 글을 남긴 떠돌이저항시인의 "이생규장전"을 교과서 밖에서 짧은 애니로 처음 만나며... 최씨처녀의 용기와 이생의 사랑과 둘의 '절의'가, 무엇보다 그 시절에 사랑과 낭만과 공상을 버무린 이야기들을 남기고 자유롭게 살다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존재가 새삼 멋지다 싶더라. 평일마냥 조용하고 사람도 없어 전세내다시피 널부러져 쉴 수 있었던 것도 보람찬 추억으로 남을 듯.







그러고는 강릉의 개념부잣집 선교장- 고작 며칠 전 알고서 '열화당' 내의 작은도서관에 괜히 꽂혀서 왔는데... 안타깝게도 작도는 직원이 그만 둬 당분간 개방 안 하며 별 거 없단 성의없는 답변을 들었다ㅠ만, 허세 얹은 기대가 나름이었던 터라 매우 아쉽. 그래도 이름이 민망할 만치 아담한 민속자료'전시관'의 간략 사연(영동지방 최초의 사립학교 '동진학원'였다가 여운형 선생 영어교사 재직시 일제 탄압에 폐교ㅠ;;) 괜히 반갑고, 어딜 둘러봐도 주인집의 일가친척친구지인 등 통칭 사람 좋아하는 개방적 풍모가 느껴지는 집 구경도, 적당한 나무그늘에 선선한 바람 부는 둘레길도 괜찮았다. 게다가 입구에 떡하니 원두막 흡연구역, 진정 개념부잣집이라며~* 







자, 그럼 나눌 이 없는 나의 '열화'는 이쯤 시전하고;;; 또 발걸음을^^

어차피 면허도 장롱이지만 여행할 때는 내 차가 있음 좋겠네 싶기도 하다. 선교장을 나와 걷다보니 이정표에 뜨는 오죽헌, 나름 조상인데 함 가볼까 했으나 입간판 보는 순간 풉. 



동했던 맘이 사라져 바로 옆 공방골목으로. 주말인데도 한산하고 문 닫은 데가 많았지만 몇 안 되는 가게들이나마 아기자기하고 무지 예뻐서 왔다갔다 한참 구경을 했다. 끊은 지 좀 됐지만 여고시절 대유행한 하드보드지 필통은 물론, 이후에도 한 상자질 했는데... 나름 편집증도 있고, 지금이라도 길을 바꿔 이런 거 함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는.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일 없을 거라 자신했던 일들을 별 계기도 없이 자연스레 하고 있는 날 마주치곤 하는데, 오늘 아주 만발하여 저녁은 이른바 맛집에서 짬뽕을 먹었다. 시간이 맞으면 영화 한 편 볼까 했던 신영극장에서, "내가 고백을 하면"을 보고 싶다는 되도 않는 기대를 했던 터라 벽에 붙은 두 주인공 사인이 괜히 반갑고. 유명세와 인기에도 허름한 분위기에 무리 않는 영업시간을 고수하는 식당도 반갑고. 암튼 친절한 주인 덕에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는 드디어 궁금했던 '바그다드카페'로. 





이 영화에 특별히 열광하진 않았지만 그런 데가 있단 걸 알게 된 후에 한참 영화 챙겨보던 시절의 기억과, 수없이 많은 영화 중 한 편에 꽂혀 소도시에 섬 같은 카페를 내고 지키는 주인장에 대한 이상한 동질감이 느껴져 꼭 가보고 싶었고. 있는 동안 유일한 손님이어서 괜히 미안했지만, 그래도 화장실마저 참 맘에 들더라. 없어진 지 한참인 예전 좋아했던 카페들이 줄줄이 떠오르고, 여긴 언제 다시 와도 그대로라면 좋겠다 싶은. 물론 나중에 내가 할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떠올리면서ㅋㅋ


정류장까지 한참을 걷고 또 기다려 탄 버스는 기사아저씨마저 참으로 친절하셔서 먹이로 챙겨온 에너지바를 하나 드리고, 걸어오는 길에는 무지 예쁜 슈퍼 강아지랑 내일 또 만나기로 약속. 



오늘도 주인장과 새로운 멤버들은 게스트하우스놀이 중이지만, 일찌감치 이어폰 꽂고서 하루를 복기하니 꽤 괜찮은 기분이다. 심히 촌스럽게도 강릉행 버스에서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께"가 듣고싶어 오랜만에 '창고'를 들었는데, 잊고 지냈던 이범용 목소리에 눈물 날 뻔 한 뒤 강릉 bgm은 이범용과 김창기. 지금은 "꿈의 대화", 꿈나라엔 외로움이 없다는 호소력 터지는 절규를 함 믿어볼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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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