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노트2012. 10. 8. 01:06

 

 

다시 월요일이다. 추석과 개천절을 통과하며 긴 연휴를 보내고 금요일엔 강화도로 단합대회를 다녀온 탓인지, 기간으로는 출근 삼 주째가 되지만 정작 단체활동의 일상은 이제 시작되는 느낌. 지난 주엔 대학원 교수님 문상차 오랜만에 서울에 온 지인이 사흘이나 함께 있었고, 그 덕에 옛 동료활동가도 집에 와서 놀고... 암튼 이사 온 후 이 집이 가장 분주했던 며칠이었다. 이제 지인은 다시 전주로 가고, 몸만은 한가하게 종일 집에서 일요일을 보냈고... 연말까지 연휴 없는 일상이 펼쳐질 예정, 지난해 가을부터 만 일 년의 리듬이 살짝 불안정했던 탓인지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뭐, 지내다보면 또 익숙해지겠지만. 단합대회에서 처음으로 mbti란 걸 했다. 두 번 해봤던 애니어그램 결과에 어느 정도 동의가 되었던 터라 조금 궁금하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나름의 권위가 무색하지 않게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결과가 나오더라. 문제는, 나의 성격유형이 이러하니 이렇게 노력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네버, 나는 역시 이러하군! 으로 자연스레 정리가 되더라는 것. 사실 이런저런 검사니 프로그램이니 교육이니... 뭐 의미가 없지야 않겠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하나. 그저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다는 거 알고 그런 면 때문에 유독 자극을 받을 때 스스로 진정하는 기술이나 조금씩 쌓아가면 그게 어디냐 싶다. 어차피 다들 생겨 먹은 대로 사는 거지 뭐.

 

페북으로 날아 온 오랜 친구의 메시지 덕에 알았다, 아저씨가 무척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계시다는 것. 시작페이지를 모조리 뉴스 없는 줌으로 해놓다 보니 포탈 공해에 시달릴 일이 없어 몰랐는데, 오늘은 트윗에서도 이따금 눈에 띄는 걸 보니 노랑이들이 꽤나 시끄럽게 떠든 모양이다. 사실 아저씨를 생각하면, 이제는 예전같은 느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속이 상하기는 한다. 90년대 초반, 충돌2나 낙산소극장, 곤이랑소극장 같은 데서 열렸던 작지만 꽉 찬 공연들. 기타 한 대로도 목소리만으로도 얼마든지 그 진정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셨었는데... 물론 스케일과 특수효과에 경도된 것도 이미 한참 전의 일이지만, 사실 좀 궁금하다. 젊은 시절의 고생에 맺힌 한만으로 그렇게 병적인 스케일 지향이 생길 수 있는지. 어느 날 와이어를 타고 객석 공중을 날을 때 자신을 향하던 수많은 행복한 눈동자들을 잊을 수 없다던 말은 충분히 진심이라고 생각되지만... 서해안 기름유출 자원봉사나 타임스퀘어 광고 따위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사회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 수 있고 작은 변화라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예전의 처지를 생각하면 정말 경이롭고 존재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사건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집착하고 올인하는 건 좀은 병적인 메시아컴플렉스 수준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얼마전 tv에 나온 들국화, 전인권 아저씨를 보면서 92년 즈음의 충돌2가 생각났었다. 다가갈 수 없는 전설처럼 이야기하며 그의 노래를 부르던 그 작은 공연장에 어느 날,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전인권 아저씨. 그리고 아저씨와 함께 한 무대. "제발"이었던가? 이십 년이나 흐른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사실 정말 반짝이는 생의 순간은 그렇게 운명적이고 우연하게 다가와 인생의 좌표로 남는 게 아닐까. 그저 객석에서 지켜보는 내게도 그렇게나 감동이었는데... 아저씨는 어쩌다 쑈끝은없는거야의 세계로 그렇게나 깊이 침잠해버렸을까. 내 눈에는 레이저나 와이어 없이는 연출되지 않는 빅스케일의 아저씨 공연이나 독도 타임스퀘어 광고나 사실 전혀 다른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문화적인, 사회적인 의미가 무엇이건 그저 물신에 잠식된 끝없는 질주와 뭐가 다를까. 아무려나, 내가 아저씨에 대해 이렇게나 까칠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좀은 슬프고... 하지만, 여전히 이십 년 전의 그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바람만은 접어지지 않는다. 바닥까지 내려가셨을 때 많이많이 아프시고, 훌훌 다 털고 일어나시길. 언젠가, 몇 년 전 클럽타에서처럼. 그렇게 반가운 눈인사 한 번 나눌 일은 있을 거라 믿으며.

 

아, 암튼... 오늘부터 뭔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겨우 오십대 중반인 대학원 교수님의 갑작스런 부고를 듣고, 처음엔 내내 믿기지 않고 기분이 이상하더니 연휴를 보내면서는 살짝 부럽기도 하고 그랬는데... 어쨌거나 끝나기 전까지는 살아야 할 인생이니 너무 지겨워 말고.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 생각하면서 좀은 양심적으로 살아야겠다 싶기도 하고. 누군가 집에 함께 있다가 가서 물리적인 허전함이 알게 모르게 남은 것 같기도 하고. 괜히 마음이 복잡스럽다. 생각해보니 뭔가 열심히 읽고 쓰고 하는 일을 너무 오래 쉬어서 잡생각이 더 많아진 것도 같고. 암튼, 만 일 년 동안 늘어진 몸과 마음을 좀 추스리기는 해야할 듯. 흠, 저녁에 "피에타" 보려고 예매해놨는데, 부적절한 시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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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