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을 들은 때부터 마음으로 꼽아두고 다른 일정이 없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이틀 모두 딱 겹치는 바람에...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괜히 미안했으나, 꿋꿋하게! 근데 예상보다 길어진 공연은 좋았지만 골든타임에 빠져나온 게 마음에 걸려 총총걸음으로 돌아온 후원주점의 복작스러움 덕에... 몰입했던 공연의 여운이 휘발된 것 같아 복기하다보니 뭔가 몽환적인 느낌도 들고 많이 아쉽기도 하다.
신명도 흥도 무척 없는 편이라 학교 다닐 때 전주만 나와도 애들이 떼로 일어나 문선을 해대곤 했던 "바위처럼"이랑 "처음처럼"이 난 참 부담스러웠고ㅠ 한때 서너명 이상 노래방엘 가면 지정곡인 양 마지막곡이었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도 뭔가 계산된 감동을 들이대는 느낌에 심드렁했었고ㅠ 한참 전 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선가 열렸던 꽃다지 공연을 본 적은 있지만 사실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늙으막에 팬질을 하고 있는 건, 지난 가을 새누리당사 앞 농성을 하던 쌍차 투쟁문화제에서 꽃다지를 조우한 덕분. 지난 세기에 나온 정윤경 음반의 노래들, 특히 "조성만"을 참 좋아해서 mp3플레이어에도 휴대폰에도 늘 담아 자주 들었는데...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사람은 어디서 무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던 건 '그대 너무 서러워마요. 어차피 인생이 그런 걸. 떠나간 사람 지나간 일일랑 그저 세월에 묻혀가는 걸' 하는 가사처럼, 굳이 궁금해하고 찾아보지 않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따금 정윤경 독집 수록곡을 부르는 꽃다지의 무대를 만나면서도 그저 안타깝게 묻힌 좋은 노래라 다시 부르는 거겠거니 하고 말았던 듯.
한참 뒤 "내가 왜?"를 들으며, 조합원의 글에 곡을 붙인 노래인가 했다가 정윤경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서... 이 양반이 어디에선가 여전히 노래를 만들고 있구나 싶어 반가우면서도 신기한 기분이 들었었다. 생각날 때마다 유튜브 영상으로만 들은 탓에 꽤 오랫동안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꽃다지를 새롭게 각인하게 됐던 것 같고. 그러다 지난 가을의 투쟁문화제에서 노래도 하게 되었다는 정윤경을 코 앞에서 목도하는 나름 놀라운 경험, 뭐든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타인의 삶의 자장에 걸쳐지는 게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암튼 내게는 꽤나 반갑고 신기한 일이었다.
이후 뒤늦게 유정고밴드며 꽃다지 4집을 찾아들으며, 정윤경이 만들고 부른 다수의 노래에 뒷북열광;; 세계의 모순을 구조적으로 인식하고 과학적으로 고민하는 것과 심히 거리가 먼 나는, 대체로 내 속의 불균형과 혼란이 확장되어 부조리한 세계와 만날 때 결은 좀 다를지언정 나를 넘어서는 것들에 대해 고민 비슷한 걸 하게 되는 인간인데....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내게 그만큼 공명과 공감을 불러일으켜준 노래들은 없었던 것 같다. 내 기분에 취해 구구절절 길어졌는데... 말하자면 이건, 22년차 꽃다지에 이제서야 무임승차해 응원을 보내는 이유에 대한 아무도 안 궁금해 할 고백 같은 거.
암튼. 공연에서 나는 얼마 전 담 넘어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으로 오랜만에 떠올렸던 소풍가는날의 "이런 생각"이랑 결국 못 듣나 싶어 조바심이 났던 "당부"가 참 좋았다.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마음에 깊이 담고, 무엇보다 음악인이고 싶다는 꽃다지에게 투쟁사업장 동지가 꽃다발을 전하는 모습에도 살짝 울컥. 성심껏 준비해 올린 공연을 보고 딴 소리만 늘어놓으니 좀 민망하지만... 좋은 시절 다 지나고 더 이상 자람의 토양이 아닌 운동판에서, 어쩌면 외줄타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세월을 견뎌왔을 꽃다지에게 참 고맙다. 그런 꽃다지를 다시 만나게 해 준 '기가 막힌' 정윤경의 음악에는 뭐 말 할 것도 없고.
글 보실지 모르겠지만, 공연 끝나고 후원주점에 급히 돌아가느라 전하지 못한 인사는 이렇게 대신하는 걸로.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