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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19 막판에뜨는사나이
  2. 2011.06.19 내생애가장아름다운일주일
  3. 2011.06.19 찰리와초콜릿공장
  4. 2011.06.19 별별이야기
  5. 2011.06.19 웰컴투동막골
  6. 2011.06.19 인어공주
  7. 2007.08.10 영원한 여름
빛의걸음걸이2011. 6. 19. 05:15







연극을 봤다. '막판에 뜨는 사나이'. 제목이 좀 구려서(?) 아주 땡기는 건 아니었지만, 친한 언니가 기획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박광정 아저씨의 연출이어서 보고왔다. 거의 2년 만에 보는 연극. 인터미션 포함 꽉 채운 3시간의 긴 작품이었는데, 초반에는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아주 재미있게 보고 왔다. 역시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박광정 아저씨의 연출과 대체적으로 고른 배우들의 연기 덕에 후반부에는 그야말로 몰입. 17년 전 은행강도와 의로운 시민이었던 두 주인공이 '그때 그 사건'이라는 프로그램을 계기로 만남을 갖게 되는데, 그 과정을 통해 매스컴의 영웅만들기와 보여지는 선과 악의 허구를 꽤나 냉소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였다. 내용 자체가 관심을 확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었지만, 실제 상황과 프로그램의 연출 상황이 한 무대에서 대비되면서 각 캐릭터가 갖고 있는 입장이 매우 선명히 부각되고 배우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들이 꽤나 우리 인생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종종 많이 공감이 됐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강렬했던 건 '내가 연극을 본다'는 것 자체. 연극을 보면서 자꾸만 추억이 보이고 꿈이 보이고... 해서 조금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 난감마저도 진정 행복했다. 마지막 공연이라 커튼콜때 박광정 아저씨도 무대 인사를 하셨는데 추레한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각종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정말이지 브라운관의 그의 이미지는, 나로서는 억울하기(?) 그지 없다. 너무나 마르고 피폐해 보이는 그를 보자니, 마치 내가 연극을 외면하고 있어 그랬던 것 같은 어이없는 착각이 일 정도. 그러면서 또, '마술가게'와 '저 별이 위험하다'와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와 '비언소'와... 그런 무대를 바라보던 시절이 떠올라 괜한 상념에 젖기도. 우리 영화도 참 좋기는 하지만, 여전히 무대를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 참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다. 아무려나, 작품 자체가 재미있고 좋기도 했지만 그냥 연극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행복한 마음이 되어 '가지 않은 길'을 되뇌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는... 광화문 곳곳에 붙어있어 화들짝 놀랐던 김현식 아저씨의 포스터도 한 장 뜯어 고이 모셔왔다. 벌써 15년 전. 본격적으로 찬 바람이 불면, 김현식 아저씨의 기일이 돌아온다. 내 인생 첫 번째 죽음의 기억. 나는 생전의 그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했었지만, 그의 죽음은 여고시절의 내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어떤 위안을 안겨준 독특한 경험이었다. 다시는 볼 수 없지만, 다시는 변하지도 않는 고인의 존재.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겨울 어렵사리 찾아간 에덴동산에서 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났다고 믿고 있다. 온 거리에 '내 사랑 내 곁에'가 차고 넘치게 울려퍼지던 시절에는, 아무런 의미없이 사람들의 귓전으로 흐르는 그의 노래가 안타까웠고 누구나 함부로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나는 정말 싫었다. 한 동안 '김현식'이라는 이름을 단 함량 미달의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싫었고, 언젠가부터는 그런 상업 기획조차 아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는 조용히 잊혀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를 위해 무대를 오르는 사람들. 어쩌면 살아 숨쉬며 노래하면서도 망자 만큼이나 그 존재가 잊혀져가고 있는 그들, 신촌블루스 정경화 최이철 김동환... 이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 고맙다. 하필 엄마의 환갑 생신날이어서 직접 가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주제 넘게도 아직 기억되고 추모되고 있음이 감사하다.

 







2005-10-17 01:43,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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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본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실 별 기대는 없었고. '러브액츄얼리' feel이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끌렸던 게 다였지만, 정작 나는 '러브액츄얼리'를 보려고 벼르다 놓쳐버렸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조그만 상영관은 사람들로 꽉 찼고, 극장에 자리를 잡고서야 슬슬 안정이 되어서 영화에 집중 시작. 감독이 민규동이었구나, 것두 몰랐다. 민규동 감독을 잘 아냐 하면, 절대 아니고. 예전에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그야말로 반했던 시절이 있어, 타이틀롤을 본 순간부터 갑자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뭐라고 꼭 찝어 말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차이들이지만, 정말로 반갑고 고마운 코드들이 있다. 
 

영화는... 아~주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야 살펴본 전단지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빨간 테두리를 두르고 '이 영환 정말 새롭고 행복해요!' 라고 말하듯이 온갖 톡톡 튀는 달콤한 사랑의 표어들을 늘어놓으며 발랄을 부리고 있었지만, 영화는 내게 분명 그 이상의 느낌이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초반엔 적어도 오분에 한 번은 웃음을 터뜨리게 해주는 대사의 감칠맛에 빠져있으면서도 파편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군에 대해 파악하느라 바빴는데, 요일별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이틀쯤 지나자 지인으로부터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대략 여섯 가닥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진행이 되는데, 전혀 난삽하지 않고 거의 억지스럽지 않았으며 에피소드는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우연으로 교직되어 있었다.
 

예전에 언젠가 회자됐었던 '케빈베이컨의 육단계'였나 하는 것, 어떤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여섯 다리쯤 거치면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식으로든 연결이 되어있더라는 뭐 그런 거였던 것 같은데. 사실 살면서도 몇 다리 걸쳐 아는 사람들이 서로 아는 사람이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 좁다는 실감을 하는데... 굳이 그 단계설(?)을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영화는 너무나 그럴 듯하게 등장인물들간의 인연과 우연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대략 두 세명의 중심관계와 그로부터 뻗어나간 가지들을 사건과 결합시키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 내지 감정의 반향이, 이전에 있었던 어떤 장면에의 연상으로 이어져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놀라운 솜씨. 반전이나 스릴이 주요소는 전혀 아니지만 정말이지 촌스럽지 않게 암시와 복선을 잔뜩 뿌려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형식의 건조함에 매몰되지도 않았고, 영화의 구조에 배우나 사건이 희생되는 느낌도 없었으며, 심지어 중간에 두어 번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감동마저 있어주셨다. 아, 이런. 
 

영화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흡사 '해피엔딩의 사랑'이었고 정말 갖가지 세대와 유형을 아우르는 사랑이 등장했으며, 에피소드의 반 이상은 코미디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충분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보는 동안 더 진하게 마음에 다가온 느낌은 세상살이의 지난함과 쓸쓸함 그리고 인간됨의 어려움과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 뭐 그런 것들이었다. 문득 보고난 후의 마음이 대책없었던 '세기말'의 감상이 떠오르기도 했고, 누군가들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케잌 조각 자르듯 딱 잘라 그 단면을 보여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 장식 뒤에 정직하게 들어차 있는 아무 무늬없는 빵조각의 담담함 같은 것. 달콤한 크림을 손가락으로 혓바닥으로 발라먹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하게 되는 처치곤란의 별 맛없는 빵덩이 같은, 때론 케잌 고정대에 긁혀 상처 난 밑바닥을 보이기도 하는, 그런 어린 시절의 케잌 말이다. 
 

낮에 놀다가 영화 홈페이지에도 들어가봤는데, 뭐랄까. 때로 마케팅은 내용과 본질(?)을 참을 수 없도록 가볍게 만드는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차피 모든 것이 상품인 세상에서, 특히나 아무런 생산성도 유용성도 없다고 치부되는 감정이라는 걸 매끈한 상품으로 포장하는 방법은, 이왕이면 말초적인 가능하면 돈 되는 방향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뭐 이 영화 자체도 한참 뜨는 황정민, 정경호, 윤진서를 비롯해서 나름 안정권에 있는 엄정화, 임창정, 김수로 등까지.(물론 관록있는 중견 주현, 천호진, 오미희와 연기파 서영희, 전혜진 그리고 심지어 슬픈 애어른들인 아역들까지도 훌륭했다.) 스타시스템이라고까지 몰아붙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상업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영화도 아닌 바에야, 피할 수는 없는 거겠지. 물론 영화라는 것 자체가 가장 소구력 있는 문화컨텐츠라는 걸 생각하면, 그저 나의 정화(?)에 따라 영화와 관련된 그 모든 것의 기대 수준이 맞춰지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바람이겠지만. 음.. 약간은 아쉬웠다.
 

근데, 정말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맞나. 대체로 긍정적이고 행복한 결말을 암시하며 끝이 나기는 했지만... 대략 절반 쯤은, 캐릭터 하나하나가 버텨내야 하는 남은 삶들이 나는 진심으로 걱정되고 씁쓸했는데. 물론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보다 더 많은 감정들이 오고가는 일상의 실체를 하나하나 분석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니 어쩌면 사람람들에게는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려는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은 혼자된 마음이 느끼는 일상의 신산함과 사는 일의 버거움 같은 것들이, 황홀하게 빛나는 순간의 벅참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질기게 마음바닥에 달라붙어 센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보면서 잠깐 그런 생각도 들기는 했다.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당당한 수식어가 붙은 이야기를 보면서도, 지배적으로 마음에 떠오르는 지지부진한 생각들이 혹시 나의 원형질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얼마 전 타롯카드 아저씨가 충고(?)했던, '마음을 바꿔먹어야죠, 노력을 해야죠'라는 말이 귓전에 들리는 듯한. 아무려나, 영화는 좋았고. 내 감상을 위주로 조금 덧붙이자면 '내 생애 가장 '슬프도록' 아름다운 일주일'쯤 되겠다.





2005-10-10 00:34,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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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11. 6. 19. 05:04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봤다. 팀버튼과 쟈니뎁 그리고 대니엘프만. 하나같이 메인스트림에 있으면서도 고마운 마이너리티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삼총사. 아이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스크린으로 만나는 쟈니뎁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보고 왔다. 오늘 만난 쟈니뎁은 웡카 초콜릿 공장 사장 찰리. 우스꽝스러운 단발머리와 진한 화장으로 가린 창백한 얼굴, 비둘기 한 마리 쯤 들어앉았을 법한 높은 마법사 모자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만화 캐릭터와 같은 모습. 현실에서 이미 40여 년을 살아버린 그의 눈가에는 진한 주름이 그린 듯 파여 있었고, 버스터 키튼과 같은 과장된 제스쳐와 뒤뚱거리는 걸음이 '베니와 준'에서처럼 귀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인간 세상 언저리를 맴돌던 에드워드의 고독이 여전히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가족이라는 멍에와 힘겨운 세상 살이에 버거워하는 길버트의 창백한 안색이 읽혔다. 북풍과 함께 나타난 방랑자 로의 뇌살적인 아름다움은 솔직히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초콜릿과 이만큼 잘 어울리는 어른이 또 있을까 싶은... 쟈니뎁은 정말 보물같은 배우다.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의 원작이라고는 하지만, 팀버튼의 필터링을 거친 영화는 마치 '가위손'의 15년 후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동화적인 분위기가 가미된 팀버튼의 배경은 늘 비슷비슷한 느낌이지만, 고만고만한 주택가들의 끝에 자리잡은 초콜릿 공장은 에드워드가 살았던 고풍스런 성을 연상시켰고 세상살이의 공력이 붙은 에드워드의 성장판인 듯한 찰리의 모습은... 소통에의 염원과 선악을 한 마음에 담은 채 인간 세상을 염탐하는 듯한 그 모습은, 아무리 자라도 결코 완전한(?) 어른이 될 수 없는 천상 자폐의 영혼을 지닌 자의 애틋한 세월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위손', '사랑의 눈물', '베니와 준', '길버트 그레이프', '초콜릿'. 내가 진정으로 열광했던, 푸르른 창백함을 지닌 아름다운 배우 쟈니뎁을 만날 수 있었던 영화들이다. 물론 우리 식의 나이 어림이지만, 불혹을 맞은 그의 여전함이 놀라웠던 '초콜릿' 이후로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은 그도 예외가 아님을. 대략 '캐러비안의 해적'에서부터 느꼈던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영화 속의 그에게서 때때로 전해받는다. 그도 늙고, 나도 늙고. 그나마 새롭게 한 편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예전의 그가 나왔던 영화에 대한 추억과 그 영화에 열광하던 나에 대한 기억과 그리고 그 영화로 인해 행복했던 그 시간에 대한 반추가,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쟈니뎁 혹은 구스반산트의 영화를 새로 만날 때마다 늘 자연스레 떠오르는 리버피닉스. 만약에 그가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고작 스물 몇 해를 세상에서 보낸 자의 어른된 모습은 참으로 상상이 어렵다. 그러고보니 벌써 10월, 그가 저 세상으로 간 지 12년이 되었다. 음... 리버피닉스를 생각할 때마다 이명처럼 따라붙는 생생한 목소리, 한참 새벽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가녀리게 떨리는 애도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cattle call'이나 'fire and rain'을 들려줄 때마다 애정 어린 멘트를 잊지 않았던 그녀 또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허공에의 질주'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녀는, 저기 하늘 나라에서 리버피닉스와 만나기나 했을까. 궁금. 산 자는 살아있어 좋고, 그러니까 죽은 자는... 그 억만금의 안타까움만 빼면, 이제는 변치않아 좋다.




2005-10-04 01:1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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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11. 6. 19. 05:01






오랜만에 하이퍼텍 나다에 갔다. '별별이야기', 나다는 영화 상영 전후에 닫히고 열리는 벽의 커튼이랑 창 밖의 풍경이 참 푸근하다. 갈 때마다 바뀌는 좌석의 인명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 국가인권위에서 제작 지원을 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차별에 관한 여섯 편의 에피소드가 묶여진.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낮잠'과 무엇이건 구성원 대다수와의 다름으로 인해 생겨나는 소외의 비극과 극복에 관한 우화 '동물농장',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는 남녀간 성역할의 불균형을 무연하게 하지만 강렬한 엔딩으로 보여준 '그 여자네 집',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꽤나 그로테스크하고 풍자적으로 꼬집은 인상적인 작품 '육다골대녀', 외국인노동자의 슬픔을 서정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려낸 '자전거 여행', 조금은 도식적이었지만 입시경쟁에 찌든 처절한 학교 풍경을 신랄하게 보여준 '사람이 되어라'. 보고 나니 어찌나 헛헛한 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만화를 보기 전, 내가 부려놨던 그 많은 말들을 다시 주워담고 싶을 정도로... 참 세상살이는 어렵다.



2005-09-26 02:01,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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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걸음걸이2011. 6. 19. 04:58





오랜만에 영화 봤다. 예전에 연극으로 할 때 입소문만 듣고 넘겼다가 영화로 만드는구나, 했는데 벌써 칠백만 돌파 어쩌고 하더구만. 사실 마스코트처럼 전면에 내세워지는 강혜정은 별 호감이 안가는 편이라 그저 그랬는데, 다른 거 다 제쳐두고... 남북군이 마음을 합쳐 연합군을 물리친다(?)는 내용 하나만으로도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기는 했다. 짧은 연휴지만 아무 것도 안하고 보내기는 그렇고.. 마침 윤대녕님의 새 소설을 흔쾌한 마음으로 읽고 난 터라 영화도 한 편? 하던 차. 실은 개봉하자마자 '외출'을 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같이 보는 친구의 취향을 고려하다보니 '..동막골' 끝물에 나도 합류를 하게 됐다.
 

영화는.. 좋았다. 개봉 직후 영화 좀 본다하는 지인들로부터 그저 그렇더라~는 전언을 들었던 터라 별 기대가 없던 탓이었는지 모르겠고, 씨네마테크 드나들고 영화제까지 좇아다니며 영화를 봐대던 예전에 나로부터 너무 멀어져 (혹시 그런 게 있었다면) 영화를 보는 눈이 무뎌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수묵의 느낌이 나는 타이틀롤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동막골 풍경이 편안했다. 주로 무대에서 봐왔던 배우들이 늠름히 스크린을 채우고 있는 것도 꽤나 기분 좋은 일이었고, 무엇보다...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만치 순수한 동막골 부랑민들의 모습. 서로를 향해 겨눈 총부리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그 어떤 절체정멸의 순간인지도 미처 모른 채 태연히 멧돼지가 출몰하는 감자밭을 걱정하는 그들의 아연한 순수함. 이해관계와 권력(?)을 동시에 가진 자들을 오히려 포박하는 듯한, 그 순진한 집단의 힘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순간 어이없게도, '조용히 하고 선생님 말 좀 들어보라'며 잔뜩 격앙되어 소리치는 나의 모습과 자기들끼리 즐거워 어쩔 줄 모르며 자지러질 듯 떠들어대는 공부방 꼬맹이들이 공존하는 공부방 풍경이 떠올랐다. 세상이 다른 사람들, 그런 것인가? 
 

사실 좀 진부하고 도식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이렇게나 많은 터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어찌 있을 수 있겠냐마는... 강혜정이 분한 꽃순이는 '그섬에 가고 싶다'의 심혜진 캐릭터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고(설마 오마쥬?), 이상한 오리엔탈리즘(?)인지 모르지만 동막골 부락민들의 원초적인 에너지와 생명력 같은 것들이 느껴지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에밀쿠스트리차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떠들썩하고 혼란한 가운데에서도 정연히 흐르는 어떤 질서, 문명이 채 당도하지 않은 원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순수의 주술 같은 것들. 뭐, 아니라면 말고. 아무려나, 문득 에밀쿠스트리차의 영화들이 그리웠다.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이었지만, 한 편 예견했는지 모르나 칠백만 돌파와 조금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실은 무엇보다 부럽고(?) 박수쳐 주고 싶었던 건, 놀랍도록 다양한 재능의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시니컬해보였던 장진으로부터 나온 작품이 그토록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바름(?)을 향해 있다는 부분이었다. 쌩주제넘음이라 누가 욕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영화만한 파급력을 가진 문화컨텐츠가 어디 있으랴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이렇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반전 영화. 심지어 통일도 생각나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가 연일 스크린에 펼쳐지고 몇 백만이 본다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이다. 감동의 양상은 완전 다르겠지만, '외출'도 나에게 힘을 주기를.




2005-09-20 00:5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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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11. 6. 19. 03:59




참으로 적당한 영화였다. 내가 이미 늙어 그런지 살인미소 박해일 운운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비루하고 극악스런 현재로부터 훑어들어간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은 '두근두근하는' 엄마아빠의 모습은 마음을 꽤나 아련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돈과 욕이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세월의 풍파 속에 남은 것이라고는 모진 생활력 뿐인 엄마에게도 풋풋한 십대의 가슴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하기만 해 인생 말년, 잔뜩 쳐진 어깨에 근심어린 얼굴로 아내의 구박을 달고 사는 아버지도 그 순수와 선함이 하늘처럼 높고 맑게만 빛나던 청춘의 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거짓말같이 순정했던 시간들, 떠올리면 차라리 눈물이고 한숨이어서 오히려 더 멀리만 하고 싶은 그런 날들이 생활이 되어버리면 붙잡고 매달릴 것은 결국 현실일 뿐인 걸까. 사실 불과 서른 해를 살아온 내게 가장 와닿은 영화의 메시지는, 너무나 쉽게 기적같은 지난 시절이 되어버리는 추억의 공허함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부정적인 감정이입이겠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정말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싸늘히 변해버린 마음과 관계. 바닥까지 내려가 차고 올라온 전환점이었다고 애써 생각하지만, 심저에 남은 상처까지 어찌할 수 없음을 안다. '그래도 아름다웠어' 라고 말할 수 있었던 몇 번의 경험과는 이미 차원이 달라져버린.
 

암튼, '내 마음의 풍금'과 'I am Sam'의 이미지와 너무 겹쳐져 배우들의 연기에서 별 새로운 것은 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해맑음이 너무나 어울리는 전도연의 해사한 미소와 나이 대비 심히 넉넉한 박해일의 푸근한 웃음 그리고 배경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우도의 풍광 덕분에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영화가 들려준 이야기와, 내가 들은 이야기의 서글픈 간극 만큼이 아마 혼란스러운 지금의 내 모습이겠지.



2004-07-13 00:42,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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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
빛의걸음걸이2007. 8. 10. 02:00


수요일, 반나절쯤 퍼붓고 잦아들기를 반복하는 빗속에서 시내를 헤맸다. 연일 머금은 공기의 물기 탓인지 마음도 괜히 찰랑거려서, 나가서 하는 일과 별개로 심사는 내내 말랑하고 여릿했다. 해서 들고나간 책 '끌림'은, 폭 빠지기에는 조금 모자라고 그렇다고 외면하기는 어려운 당김이 있었다. 혼자라서 좋아, 혼자가 좋아, 혼자 걷는 길에서는 엄살이 심해져... 맞다, 맞다. 책장을 넘기며 잊고 살았던 서른 이전의 원형질을 조우하는 느낌, 괜히 마음이 산란해진다. 

한남동과 을지로, 광화문과 명동을 축축해진 몸과 마음으로 거닐면서 내심, 이렇게 간질간질한 것들이 영화에서 확 폭발해버렸으면 싶었다. 어딜까 어딜까 궁금해하며 찾아간 CQN명동은, 기대했던 새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렇게 되었구나, 와봤던 영화관도 기억 못할 만큼 늙어가고 있구나... 별 것도 아닌 망각의 확인이 괜히 좀 서운했다.

때로 불쾌하리만큼 찐득하고 찝찝한 계절이 여름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청춘의 신열을 발산하기에 가장 마땅한 때가 또 여름인가보다. '영원한 여름'이라니... 정말 안이한 제목이다 싶으면서도 굳이 보겠다고 달겨든 것도 웃기긴 하다. 그 덕인지 영화는 고맘 때의 싱그럽고 찬란한 마음으로부터 멀어진 시간, 딱 그만큼 내게 헐렁했다. 전단지에 떡하니 쓰인, 11회 piff 최고의 화제작이라는 과장은 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줄 알았다.



과잉행동 장애를 달고 사는 통제불가의 외로운 소년이 있다. 전학 온 여자애가 자리에 앉자마자 가위로 머리칼을 싹둑 잘라버린 벌로 책걸상과 함께 운동장에 덩그라니 내몰린 경험이, 안 그래도 외로운 아이의 가슴 깊은 곳에 공포와도 같은 원체험으로 더해졌다. 제발 나 좀 봐달라는 온몸의 절규는 오히려 모두의 거부를 불러 아이는 왕따를 면치 못하지만, 또래와의 어울림을 유일한 처방전으로 내민 의사 덕분에 다행히 단 하나의 친구를 얻게 된다.

가까이에 나무랄 데 없이 반듯하고 모범적인 한 소년이 있다. 같은 반의 왕따에게 별 관심 없지만, '수호천사'가 되어주라는 담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그 날부터 유일한 친구를 자처한다. 반 친구들 모두가 무시하고 외면하는 외로운 아이의 단짝이 되어, 함께 그림을 그리고 해변을 달리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두 소년은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년들의 우정과 사랑 사이에 애매하게 자리잡은 한 소녀가 있다. 매개자이면서 방해자인, 그러면서도 두 소년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마침내 포용하는. 그저 그 나이대의 소녀이면서 한편 외로움과 사랑에 피폐해가는 소년들의 대지 같기도 한 소녀. 알 듯 모를 듯한 무표정이 도발적인 소녀와의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탈을 통해 소년들은 '정말 좋은 친구'라는 말 속에 감추어왔던 서로의 존재감을 절절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그게 외로움인지도 몰랐지만 사무치게 외로웠던 소년과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선생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던 소년, 시간이 흐를수록 둘의 삶에서 서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깊어지고 마치 둘로 나뉜 한 사람인 양 그들은 늘 함께 있다. 외로웠던 소년은 단 하나의 친구가 지켜보지 않으면 특기인 농구가 잘 되지 않고, 여전히 모범생인 소년은 시험 전날의 공부가 급해도 정신 사납고 산만한 친구의 방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늘 두리번거린다. 잠시라도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한 긴장을 머금은 표정이 마침내 서로의 실재를 확인할 때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단 두 사람인 것처럼. 그야말로 단짝이다. 세상을 알만큼 커버렸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문득 돌아보니 없어져버린 말, 던져버린 기억도 없는데 사라져버린 말. 단짝,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따뜻하고 애틋한 울림을 가졌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저 성장통이었다고 지난 후에 담담히 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앓을 때는 얼마나 거대하고 압도적인가. 순진하게 우정이나 친구 따위를 되뇌이던 때를 지나며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하면, 마주 보고 우정이라는 말을 나누는 것이 수줍고 어색한 시간이 온다. 둘도 없는 친구와 만들어온 세상보다 각자의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어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친구, 영원한 우정 따위를 대신해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선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이며 겨우 잊었던 외로움의 공포다. 줄곧 한몸처럼 지내온 친구가 어느 날부터인가 걷잡을 수 없는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고통, 지극한 외로움을 채워주고 마침내는 사라지게 만들어준 친구와의 관계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묘한 긴장의 기류. 마음 속 깊은 곳에 비밀과 고뇌를 품은 청년들의 관계는 균형을 잃고 어긋나기 시작한다.

성장의 대가는 제법 가혹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아픈 후에는, 언제나 아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법. 그대로만 있으면 아무 바랄 것 없을 때의 평온함 같은 것은 이미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경의 혼란이다.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의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욕망은 사납고도 서럽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의 비밀을 고백하는 바닷가의 청년들, 그저 통과의례일 뿐이라고 묵묵히 바라보기에는 날카롭고 저미게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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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