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싸이보그니까 괜찮아'. 평일 낮이기는 하지만, 세 명이라도 괜찮아? 관람객은 나와 어린 커플 뿐이었다. 이얼이 나온 '짧은 여행의 끝'이라는 영화가 뤼미에르에서 개봉한 때는 재수 시절이었다. 연극 '마술가게'를 여러 번 보고 대학로 골목에서 이따금 목도하며 젊은 날의 김현식 아저씨를 보는 것 같아 무척 좋아했던 그가, 마침내 영화 주인공이 된 것이다. 나름 강력한 감시망을 뚫고 학원을 빠져나와 내달린 뤼미에르, '지중해'와 '은밀한 유혹'과 함께 상영되던 그 영화를 보기 위해 나는 수표대 직원의 설득을 강경하게 거부해야 했다. '지중해'는 이미 봤고 '은밀한 유혹'은 관심 없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검표대에서는 매표소에서 표를 잘못 팔았다느니 어쩌니 하며 인터폰까지 연결해 나를 돌려보내려 했다. 오기가 난 나는 어쨌든 표를 샀으니 영화를 보겠다고 선언을 하고 버틴 끝에, 스스로 입구 커튼을 치고 예고도 없이 바로 시작된 영화의 유일한 관객이 되었다. 과정만큼 영화도 씁쓸하고 난감해서, 나올 때는 솔직히 이걸 보겠다고 굳이 우긴 스스로가 좀 민망해 커튼을 내 손으로 닫았다. 이런 영활줄 알았나, 망할.
이후에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관객 중 하나가 되었던 경험은 씨네하우스에서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스카라극장에서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씨어터 2.0에서 '선택'을 볼 때였다. '시간은...'을 볼 때는, 지금 생각하면 뻔뻔하고 무모했다 싶지만 영화를 보다가 너무 담배가 땡겨서 피워버렸다. 2층에 객석과 영사실이 있어 부릴 수 있는 객기였고, 아마도 그 영화여서 가능한 조용한 난장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내 손에는 마시던 음료수통도 쥐어져있어 훌륭한 재떨이가 되어주었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러 낯선 스카라극장을 찾은 건 정말 암담했던 스물 아홉의 일상에서 튕겨나가고픈 몸부림이었다. 연극판에서 얼굴이 익은 신하균이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으로나마 그런 격려라도 담고 있기엔 그때 내 상태가 너무 비참하고 막막했다. 하지만 발 밑으로 쥐라도 기어다닐 것 같은, 그 옛날 단성사처럼 을씨년스럽고 휑한 극장이 오히려 영화와 무척 어울렸던 것 같다. 쉴새없이 깔깔대다가, 후반부로 치달으며 참을 수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불러낸 영화가 준 카타르시스는 엄청 났다. 영화가 끝나고, 산발적인 흐느낌의 주인공들이 작은 평원처럼 도열된 의자 사이에서 하나씩 몸을 일으켜 나가던 모습까지, 고마운 감동이었다. '선택'을 볼 때는 어렵사리 찾아간 작은 극장이 너무 음침하고 스산해서, 처음에 혼자 보다가 중간에 기척을 내고 들어온 누군가가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김중기와 고동업, 안석환을 이후에 인상 깊게 마주친 적이 없다. 그들의 연기와 존재를 좀 좋아했는데.
아무려나, 오늘은 셋이었다. 모르는 둘이었지만. 박찬욱의 영화에 나는 언제나 부분 공감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실은 꽤나 뻔하게 짐작 가능한 인과관계를 활용하는 그의 솜씨는, 솔직히 말하면 그의 정치적 지향과 존재감에 대한 기대로 인해서, 응원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어쩌면, 영민한 그가 자기 영화를 만들 밑천 삼아 무척이나 정도(?)를 지키며 만든 발돋움용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복수는 나의 것'을 보며 느꼈던 소름 끼치는 이물감과 심지어 불쾌함은 보통을 넘었고,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 역시 나름 서사라면 서사랄 수 있는 백스토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찬사를 받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가 연출한 '여섯 개의 시선'의 한 꼭지 역시, 난 그저 그랬다. 너무 앞서가는 건지 뒤쳐져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현재적이거나 최소한 별로 동시대적이지 않은 그의 상상 혹은 표현들이, 먹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좀 의심스럽기도 하다. 물론 스타시스템을 운용(?)할 수 있는 비공식 라이센스를 그는 이미 얻었고, 그 라이센스가 몇 작품쯤은 더 프리미엄으로 작용하겠지만.
내가 영화를 단순히 취미가 아닌 영화로 열심히 보기 시작한 건 94년부터였다. 대학 1학년때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보기 시작한 영화들, 한참 때는 비디오샵에 가면 정말이지 황홀한 비밀을 간직한 네모난 상자들이 보물선 속에 가라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마을 체인과 본격 영화잡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 백두대간을 필두로 씨네마테크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계보씩이나 그려가며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그 옛날 즐겨본 손석희가 진행했던 영화퀴즈 프로그램에서 주워들은 제목과 이름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이따금 EBS 씨네마천국을 녹화해가며 한나래니 한울에서 나온 영화책들을 뒤적여가며 참 즐거웠다. 구회영이었던 김홍준의 영화책을 눈이 빠지도록 탐독하고 이효인의 '영화여 침을 뱉어라'에 가슴이 뛰었으며 지난날 잠시 혹했던 하재봉의 구라에 눈을 흘기기도 했다. 물론 정은임을 벗 삼아 새벽 영화의 꿈 속으로 빠져들었고 정성일의 비장한 언설에 매료됐다. 그렇게 영화를 보던 시절 적었던 영화일기에는, 당시 신문의 하단을 장식했던 개봉작의 빛바랜 광고들이 붙어있고 알건 모르건 열심히 적었던 감독과 배우, 영화음악가의 이름 그리고 어설픈 감상이 빼곡하다.
좋았던 옛날,을 이야기하다보면 누구에게나 그 시절은 스스로에게만 특별하지만 사실 다들 엇비슷하게 시대의 조류 위에 놓여져 변해온 것일 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먼 시간은 조금 더 아련하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은 언제나 아름답게 기억될 뿐이다. 어차피 지금은 곧 과거가 되고, 돌아갈 수 없다는 일회성이 뿜어내는 향수는 그리움을 짙게 풍긴다.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라면 더욱 더. 무엇이든 갈수록 영악해지고 기민해지는, 내 좋아하던 무언가 남아있다해도 복잡하고 어지러운 미로를 통해서나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지금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그렇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래 뭐. 괜찮았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는 산업이었고 어차피 내 기억이 놓인 자리로 주목하는 것만이 애틋한 추억으로 살아날 뿐이니까. 피프철이 되면 씨네21을 사들고 부록으로 받은 시간표를 보며 수강신청보다 더 공을 들이던 때는 이제 너무 아득하다. 나다니 필름포럼, 스폰지, 씨네큐브 역시 가깝지 않기는 마찬가지. 정한수라도 떠놓고 빌어볼까? 부천에 씨네마테크 하나만 문 열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