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25일째가 됐다. 잠깐씩이었지만 장례식장에 세번째 와서야 열사투쟁 이어가는 동지들의 웃음을 봤다. 비록 좀은 헛헛하고 어쩌면 웃기라도 해야 힘겨운 싸움 버틸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조금은 마음이 놓이고 한편 이렇게 일상이 되었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처음 경험한 죽음은 고1때였다. 일면식도 없이 그저 그가 부른 노래들을 들으며 혼자 좋아하는 수준이었지만. 내가 '알던' 누군가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는 생동하는 존재로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이 너무 엄청나서 한동안 정말 힘들었다. 백일쯤 지나 열린 추모콘서트에서 울먹이며 부르는 노래들을 듣고 오열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실컷 울고 난 그날 밤, 꿈에 그가 나왔다. 그리고 이후엔 정말 신기하게도 망자가 된 그가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가슴 속에 담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두번째였지만 워낙 가까운 사이에 어려서부터 추억이 많은, 또 좀 이르고 갑작스런 이별이어서 정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한참을 술만 마시면 외할머니 생각에 울어댔는데, 언젠가부터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얘기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담담히 인정하게 되면서 언제든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산 사람은 결국 살아간다는 말은, 결과적으로 맞지만 한편 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슴 속에 담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까지, 마음을 다해 애도하고 추모하고 망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고서 떠나보내야 남은 이들은 제대로 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시간이 흐른 후에도 회한없이 기억할 수 있고 마음으로나마 정답게 떠올릴 수 있다.
빈소의 영정사진은 여전히 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아직은 떠나보낼 때도 가슴에 담을 때도 아니기 때문일 테다. 지금은 나중 언제고 떠올려도 후회 없도록,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싸워야 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훗날 미안함과 안타까움만으로 박정식 동지를 떠올리지 않도록 말이다. 잘 떠나보낸 망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낯가림 없이 어떤 얘기든 잘 들어주는 마음 속 친구가 되더라. 어렵고 무거운 투쟁이겠지만 그렇게 보낼 수 있도록, 나도.
얼마 전 김병욱 피디가 새로운 "하이킥" 시리즈를 준비한다는 기사를 봤다. 부천에 살 때, 같이 일하던 샘이 막 시작된 "지붕뚫고하이킥"에 대해 하도 상찬이기에 마음 먹고 함 봤다가... 청소를 하다 지쳐 잠시 방바닥에서 잠든 세경과, 그 모습을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지훈이 세경이 베고 자던 자기의 전공서적을 망설임없이 툭- 빼내는 장면에서 급,은혜를 받은 후로 혼자서 아주 열광을 하며 봤었다. 서대문으로 이사한 뒤 유선 연결까진 하고 싶지 않아 보름쯤 무티비로 지내면서 오직 하나 "지붕뚫고하이킥"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일상의 큰 빈 틈이었는데... 가족들이 놀러온 일요일 낮, 안테나선을 찾아꽂은 오빠의 간단 시술 후 재방송 중인 "지붕뚫고하이킥"을 만났을 때의 행복감이 여전히 선연한 수준에, 지금도 가끔 오빠네 가면 채널 검색해가며 한참 철지난 재방송이라도 걸릴까 리모컨을 만지작대는 지경.
참 좋아하고 열심히 봐댔던 건 물론, 마치 내가 자옥네 한옥집 보이지 않는 구석방에 세들어 살고 있기라도 한 듯 정말 희한한 감정이입도 가끔 했었던 터라 여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요즈음 자꾸만 떠오르는 장면은 자옥과 격의없이 지내는 줄리엔을 질투해 하릴없이 트집을 잡고 구박을 하다가 업무차 신세를 지게 되자 사과하고 화해를 청했던 순재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에 보였던 반응이다. 이성과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취중에 자신을 부축하는 줄리엔의 팔목에 채워진 자옥이 선물한 시계가 시야에 들어오면 치솟는 질투심에 불같이 화를 내고 옷자락에 시계가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 낯을 바꿔 웃음을 보였던가 뭐 그런 우스운 반복.
물론 다분히 과장된 리액션이고 적당히 선을 지켜가며 서로를 대하는 현실에서는 목격하기 어려운 일이다. 안전한 거리와 예의로 중화되고 정돈된 관계 이면의 신랄한 감정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들과 에피소드들이, 그래서 더 인상적으로 오래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즉각적으로 시선에 잡히는 대상에 따라 급격한 기복을 보이는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분 탓이겠지만, "질투는 나의 힘" 대신에 "좋아요가 싫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날. 줄리엔의 팔목시계도, 누군가의 "좋아요"도 결국 그저 현.혹.임을 알고 있다. 아무려나 오늘 저녁엔, 마음길을 따라간다.
리버피닉스, 구스반산트, 아이다호, 허공에의질주, 길버트그레이프, 정성일, 장밋빛인생, 아침을맞으러, 트루로맨스, 유아소쿨 등등.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이름과 이미지와 사운드 들을 한 뭉텅이의 기억으로 동시 호출하는 이십 년 전의 목소리, 심야의 전파를 공유하는 강렬한 공감대의 메신저였던 정은임.
그이가 들려주던 참 많은 영화와 사람들 이야기 중에... 한참 지난 후에도 유독 떠오르는 건, 세상 어느 구석에도 제 자리가 없어 하염없이 걷고 무시로 떠나고 누군가에 쫓기고 어디론가 향하는 뭐 그런 사연들이었다. 어차피 정처 없는 게 인생이라며 마냥 열광했던 주인공들은 필름 속에 여전히, 내 오랜 열광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도 여전히. 그나마 언제나 세상의 시간은 흐른다는 게 다행스럽다.
집 아닌 곳에서, 길 위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동지들에게 그리고 하늘 경계 어디쯤 머물러 있을 동지에게도... 오늘은 감히 아이다호의 인사를~ "have a nice day"
답답하고 미안한 게 많지만 하루이틀 싸움이 아니고. 일정 삼아 마음이 당기는 곳에 내려와 팔월을 맞는다. 해가 진 뒤엔 불빛 하나 없이 깊은 어둠, 돌도 물도 벌레도 풀도 원래의 모습 그대로인 자연에 소박하게 사람 쉴 방을 지어 두고 '뭇 삶의 쉼터'라는 이름을 붙인 곳이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반나절을 보내며 떠오르는 얼굴이 여럿, 막막하고 긴 싸움에 지친 이들이 언젠가 잠시라도 쉬어가며 상처 입은 몸과 마음을 추스릴 수 있음 좋겠다 싶다.
지켜보기에만도 애가 닳고 가슴 아픈 일들이 줄을 잇는 날들, 그래도 힘내서 한 달 또 살아보자고 좀은 건조하게 습관적으로 다짐. 일희일비하며 지레 지치느니 당분간은 무심하고 끈질기게 함께 하겠노라며... 지치고 힘겨운 모두에게 기운을!
'인사성이 밝다. 정리정돈을 잘 한다. 주의가 산만하다.' 어렸을 적 통지표에 빠지지 않는 평가들은 주로 이런 거였다. 적당한 칭찬 몇 가지와 담임으로서 일 년 지켜보며 지적하고픈 사항을 적었을 테니 난 그런 어린이였던 모양인데... 나이를 먹으며 더 심해진 낯가림으로 인사성은 점점 선택적으로 발휘되고, 정리정돈은 긴긴 다짐과 예열 과정을 거쳐 봉기하듯 해치워야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나마 주의 산만 하나가 꾸준한 덕분에 낮부터 이 꼬라지인 책상 앞에 앉았다 일어났다, 치우자 치우자 하다가 딴 생각하고 딴 짓거리하며 하루가 다 가버렸네. 나름 마무리 할 일도 있고 갈등 중이었지만 계획도 있었는데, 얘네들 먼저 정리 안 하면 암 것도 손을 못 댈 판이고. 근데 자꾸 늘어지기만 하니 마음만 더 답답. 뭔가를 쌓아두지 않는 가벼운 어르신으로 늙고 싶은데. 아직은 그저 바람인 게 너무 많다.
앵무새들처럼 쏟아내는 희망버스 매도 기사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믿을 지 모르겠지만... 순회폭력이니 버스시위대니 하며, 현상의 본질을 가리고 현장의 진실을 왜곡하는 기사들이 일제히 쏟아지고 있다.
충돌은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줄을 묶어 공장 철벽을 뜯어냈고 만장을 묶었던 대나무로 용역깡패들과 싸웠고 멀뚱하니 구경만 하다가 경고방송을 날리고 참가자들을 도발하는 경찰과도 맞섰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으로 소송에 걸려 대법 판결이 나고 또 다시 확정판결이 나면, 최소한 법을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한다. 잘못한 게 명백하면 일심 판결만 나도 찌그러진다. 빼앗아간 몫을 내놓으라고 법대로라도 하라고 십 년 동안 갖은 방법으로 요구했는데도 상대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법을 집행해야 할 국가마저 그저 손을 놓고 있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들을 향해 소화기를 직사하고 소화기통을 던지고 물호스를 뿌려댄, 심지어 맨몸의 노동자들에게 낫을 휘두른 용역깡패들. 아니, 그들을 이용해 노동자들을 죽이려든 현대차 자본, 정몽구가 모든 사태의 발단이다. 십 년 간 수도 없이 많은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착취하고, 권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세상을 등지게 한, 그러고도 매분기 수십조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현대차 자본, 정몽구가 모든 사태의 원인이다.
법을 말하려면 정몽구를 먼저 구속해야 한다. 폭력을 말하려면 현대차 자본의 야만을 먼저 처벌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간디가 아니다. 십 년 동안 당하고 함께 싸우던 동지가 죽어나가는데 물레나 돌리고 앉아있을 사람은 없다.
*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를 정확히 몰라 밝히지 못해 죄송합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일은, 어차피 상당 부분 내가 만든 허상과 현혹에 빚질 수밖에 없다는 걸. 어차피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의 기복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 기복은 상대방과 관련된 아주 작은 사건과 현상들로도 얼마든지 오르락 내리락. 그때의 기분에 따라 이런 사람도 되었다 저런 사람도 되었다... 뭐 그렇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흐르는 시간만큼 나와 함께 살다가, 때로 깨끗이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사라지는 것도 떠오르는 것도 무시로란 걸 알면서도 감히, 담담하고 무연한 평정심을 꿈꾸며 이제 끝, 정말 끝, 하며 만용을 부렸었나보다.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고보지 못하고 안달하고 복달하며 무언가 계기를 만들고픈 욕망에 치인 시간들이 이렇게 다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 관심도 아는 척도 가해가 될 수 있겠다 느꼈던 '라스트데이즈'의 깨달음을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그럼에도 자꾸만 고개 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으니, 머물고픈 만큼 머물고 떠나고플 때 떠나겠거니... 알아달라는 마음 아니니, 부디 시선의 감옥에 들지 마시라. 두고보고 바라보며, 담담하겠다는 욕심도 당분간 미뤄둘란다. 오늘은, 울산으로 간다.
그런 거 별로 모르고 살아왔던 듯 한데... 요즘 들어 새삼 관계의 지난함을 느낀다. 먹어가는 나이 탓인지, 먹어가는 나이 따라 좁아드는 마음 탓인지, 그럼에도 좀처럼 접히지 않는 기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쉽지 않다. 오롯이 혼자서도 자유롭고 안정감 있는 존재 같은 건, 그저 욕심인가. 오랜만에 스스로에 대한 실망을 인정하고나니, 거 참 외롭네...
7월 학전 공연 소식을 반가워하다가 조용히 포기하고 맘을 다독이던 차, 막 간절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고 싶어 신청했는데 운좋게 당첨된 ebs스페이스공감 김창기 공연, "13년 만의 외출"
맘에 걸려하면서도 하고 싶은 건 알뜰히 챙기며 살고 있으니 좀 뻔뻔한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껏 나를 키워주고 살아가는 데에 힘이 되는 것들, 그런 자리에서 다시 떠올리는 지난 기억들과 조우하는 반가운 얼굴들은 여전히 커다란 일상의 동력이다.
한시도 같지 않은 존재와 마음을 어떤 한결같음과 일관됨 혹은 일체감의 상태로 상정하고 자주 괴로워하는 내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 건네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는 그의 노래들. 자기가 알고 있는 최고의 저주를 퍼붓는 어린아이가 그려져 궁금했던 '모두 지옥에나 꺼지라고 해'를, 참 좋아하는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를 라이브로 처음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순조로운 정신과의사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들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와 고민이 제일 무거울 테고, 그걸 제삼자가 감히 비교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노래를 부르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니 새삼, 십수 년 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먼저 간 친구를 떠올리며 얼마나 괴로웠을까. 게다가 그 이름을 제목으로 삼고 노래를 내놓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이 갈등하고 고민했을까 싶기도 하더라.
잊고 지냈던 옛 노래들을 들으며, 정작 난 달라진 게 없으면서 잔뜩 짊어진 부채감으로 아주 이상한 저울질을 하고 있었구나 또 깨달았다. 동물원의 첫 음반이 나온 때로부터 25년, 참 오랫동안 그의 노래에 공감하고 위로 받으며 지냈으면서 좀 배은망덕했다는 생각도.
어차피 삶은 무수하게 이질적인 것들의 집합인데 그동안 정말 되도 않는 분법을 써가며 함부로 타인을 재단하고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든 무엇이 되고 싶든, 그건 생각과 말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니... 지금은 그저 좀 더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욕구와 나를 분별하고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그 안의 균형을 찾는 수밖에 없을 듯.
암튼 고대하며 기다리던 순간을 맞은 누군가의 두렵고 상기되어 설레이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도 참 행복한 일이다. 게다가 시절과 얼굴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성심 어린 노래들까지. 짧은 공연을 보니 학전 공연이 더 고파졌지만... 이번엔 여기까지. 그의 해사한 웃음에 겹쳐 떠올랐던, 힘겨운 표정의 얼굴들에도 가끔은 환하게 웃음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좌충우돌 솔직하게 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