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새로 부임한 국어선생님은, 자신의 전공은 평론이라고 했었다. 아무 생각없이 시건 소설이건 수필이건 밑줄 긋고 까발리기 바빴던 그 시절, 국어 시간과 문학 편력이 공존하는 교실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신참 선생님의 '나의 전공은 평론'이라는 얘기는 한갓 날나리였던 나의 주의를 꽤 끌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경쟁하던 친구에게 시도 안되고 소설도 안되니 평론이나 하면서 욕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더라고. 물론 평론의 시작은 그게 아닐 것이다. 선생님의 진심도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껏 읽어온 많지 않은 평론집들은 예전의 내게 각인된 '선생님의 평론'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들곤 했었다. 물론 어느 한 부분에서의 합치가 머리 속에서 확대되고 팽창하여 부적절하게 일반화된 느낌일 수도 있지만. 가끔씩 소설은 지루하기만 하고 시는 난해하기만 할 때 집어들던 것이 평론이었다. 그러한 한 때 우연히 만난 것이 남진우님의 평론집 '숲으로 된 성벽'이었던 것 같다. 그의 책에 손이 가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선정한 텍스트들이 나의 관심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반 독자의 다양한 관심에 대해 학자연하며 외면하지 않는 미덕을 그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그의 다른 평론집들보다 더 일반 독자의 취향과 시선에 충실한(?) 내용들로 채워져있다. 주로 서문이거나 지면에 발표한 단평들의 모음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본인이 밝힌대로 '인상적 소묘'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짧은 글 속에는 작가의 예리하고 명민한 분석의 시선이 살아 움직인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때로 아연할 만큼 순진하게 텍스트에 대한 흥분을 보인다는 점이다. 비판과 상찬의 황금률이 평론의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겠지만, 그런 기계적 조화를 도외시하는 몇몇 작가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의 표출은독자로 하여금 문학을 단지 업이 아닌 삶으로 삼고 있는 글쟁이의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이성적이고 정연하지만 머리보다 가슴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글들의 연원이 바로 그런 자세가 아닐까. 그의 글을 읽다보면 시인이고자 하는 그의 열망이 얼마나 뚜렷하고 극진한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얼마 전 김윤식 교수의 어느 인터뷰에서, 창작자가 되지 못한 자신은 결국 패자라는 식의 얘기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일개 독자의 눈에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 행간의 무언가를 특유의 감식안으로 살피고 풀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근원적인 창작 컴플렉스가, 실은 그들의 글에 대한 자존의 다른 이름일 거라는 단정과 함께. 기다리던 그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이 반갑다.
2001-09-16 14:34,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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