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노동자 시인 박노해. 수감 생활 7년을 지나는 시기, 옥중 수상집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나왔다. 자신이 꿈꾸었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뽑혀져 나간 공허한 현실 속에서 다시 사람으로부터, 무언가 무너지고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존재가 아닌, 언제나 주변에 있었던 바로 그 사람으로부터 새롭게 움트는 희망을 찾아내고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시인의 화두. 한 번은 다 바치고 가루처럼 부서졌을 그의 육신과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새롭게 정진하는 생활. 갈갈이 찢기고 상처입어 오히려 가벼워진 몸과 비워진 마음으로 시인 박노해가 눈을 들어 응시하는 희망의 세상은,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 바꾸고자 했던 모순투성이 세상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바뀜없는 터전 위에서 그는 이전에 자신이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떨쳐버리며 패배를 인정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끄집어낸다. 그의 내면에 깊이 깔려있는 사회 변혁과 진보에 대한 속깊은 열망과 '박/노/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상징하던 이상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간직한 채 말이다.
이 책을 읽은 주변의 사람들 중에는, 박노해 시인의 글귀들이 투쟁성을 잃고 사념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좌절이든 타협이든 도피든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자신을 찾은 것이든간에 적어도 나에게는 박노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이제까지 전해줬던 지난한 삶에 대한 치열한 진정성에의 몸부림과 황막한 사회 속에서 우뚝했던 존재감.. 그 울림만으로도, 그의 변화(라면 변화)를 쉽게 단정지을 수 없는 어떠한 믿음으로 분명히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 자신의 말마따나 '길 찾는' 사람은 언제나 진행형 시제이고, 우리는 누구나가 다 '길 찾는' 사람일 뿐이므로.. 이것이 인간의 겸허한 모습이고 길이며, 박노해 시인 역시 그 누구보다 지금 자신의 길을 열심히 찾고 있을 것이므로...
1999-08-27 02:09,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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