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폭력이나 무력과 짝지어 다니는 사람에 대한 편견은 군인이나 경찰 혹은 조폭처럼, 자의건 타의건 물리력과 밀착된 일상의 주인공들에게 느끼는 위화감만큼이나 견고하다. 그래서인지 체 게바라나 마르코스처럼 '대중적 열광'(?)에 의해 신비화된 인물이 아닌 경우, 무엇을 위한 것이었건 무장 투쟁을 일삼은 사람에게는 선입견 다분한 거리감이 따라붙는다. 폭력이란 끝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마지못해 용납이 되더라도 대항적으로 사용될 때만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금단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세계와 일상은 구조적으로 또 직접적으로 꽤나 폭력적임에도 말이다.
소설가인 저자는 십여 차례에 걸친 현지 답사와 최대한의 자료 수집으로, 잊혀져 간 혁명가의 삶을 사실에 기반하여 재구성하려 노력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자제하며 비교적 담백하게 서술하고는 있지만, 마음 깊이 주인공에 매료된 저자는 시종일관 '영웅 김약산'을 재현하는 데에 매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갈라진 조국에 덧칠된 이데올로기의 균열 속에서 잊혀진 혁명가를 되살리는 작업의 지난함을 감히 헤아려 보지만, 박제가 되어버린 위인의 삶을 보는 듯한 전형적이고 구태의연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아쉽기도 하다. 약산의 한 생을 충실히 서술하려는 저자의 노력은, 이미 감동을 전제한 평면적이고 기계적인 영웅적 인물 묘사로 인해 반감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책장을 덮고 사진 속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어쩐지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을 것만 같은 선이 굵고 강직한 얼굴을. 그의 삶은 비극적 시대의 무게에 짓눌린 진지하고 또 진지한 그야말로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마치 개인적 욕망은 일찌감치 거세당한 채 프로그램된 인간인 양 오직 조국의 독립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의 복무에 맞춰져 있다. 구한말의 조선에서 태어나 굴종과 반역의 역사를 온 몸으로 짊어지고 살았던 약산 김원봉. 교과서 접은 지가 오래라 제도 역사교육에서 '의열단'을 어찌 다루고 있는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찌됐건 그는 일제하 무장독립투쟁의 총아이자 풀 죽은 식민지 백성들의 무력감을 단 번에 날려버리는 '테러'로나마 민족의 자존심을 부지했던 '의열단'을 이끈 영웅적 인물이었다.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충절 지사의 땅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 적을 두었던 동화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교 당하는 경험을 통해 식민지 백성의 운명을 직접 체험한다. 이후 김약산에게는 기대를 품었던 경성 중앙학교로의 편입 기회가 오지만, 친일 반역자 등의 고관대작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이모할머니의 바라지로 가능한 것이란 걸 알고는 바로 귀향한다. 고향에서 왜란때 승병들을 양성하던 사명대사의 기개가 서린 표충사에 머물며 병법을 익히고 수도를 하던 그는 이 년 후 다시 경성으로, 그리고 마침내 독립운동의 열정을 불태우며 중국으로 향한다. 중국 대륙 곳곳을 떠돌면서도, 혈기왕성한 김약산의 뇌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오로지 조국의 독립. 궁극적으로는 힘 있는 군대를 만들어 독립을 쟁취한다는 목표였다. 남경의 금릉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영어 공부에 매진하던 약산은,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22세에 길림에서 뜻을 함께 한 동지들과 '의열단'을 창단한다.
의열단의 활동은 초기의 실패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금세 한계를 드러낸 3.1 만세 운동 등의 비폭력 독립운동과 해외기지 중심의 원격 투쟁 등 지지부진하던 독립운동사에 쾌거로 남은 빛나는 것이었다. 물론 의열단은 한편 요인의 암살과 집중 폭격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론을 원칙으로 하는 테러집단이기도 했으며, 그를 위한 훈련 역시 비인간적이고 냉철한 인간 병기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단원들이 자신의 운명을 자살폭탄테러라는 극렬한 선택으로 몰고가는 처절한 것이기도 했다. 단원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의백 김약산의 삶 역시, 이십 대의 젊은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진중하고 무거운 또한 음울할 정도로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잔뜩 주눅이 든 민족의 정기를 되살리려는 그들의 파격적인 활동에 자극을 받아 많은 젊은이들이 의열단원이 되고자 희망했고, 실제로 무장투쟁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지식인들 역시 초개같이 목숨을 버리며 역사의 뒤안으로 개인을 묻어갔다.
십 년에 이르는 의열단 활동 속에서 죽어간 단원들의 마지막 염원은 오직, 독립된 조국 땅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 번 불러달라는 그야말로 사소하고도 장렬한 것이었다.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길을 영도했던 의백 김약산은, 죽어간 의열단 동지들의 숙원을 가슴에 담고 마치 죽은 듯이 묵묵히 한 길을 간다. 그리고 1925년 의열단은 '결사적인 항일 군대 조직'으로의 전환을, 군자금 확보와 공동의 적 일본과 맞서기 위한 중국과의 연합을 위해 약산은 황포군관학교 입학을 선택한다. 전략적이었건 불가피했건, 조선 반도로는 들어갈 수 없었던 무장투쟁세력은 급변하는 중국의 정세 속에서 독립투쟁을 위해 감내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이 거점으로 삼은 곳은 중국땅이었고, 제국주의 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에 대항하려는 식민지 조선의 혁명가들은 안타깝게도 그 너른 땅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후 의열단은 정치군사조직으로 재정비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황포군관학교를 통해 중국과의 강고한 연합 전선을 구축한 약산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개교한다. 그리고 의열단과 한국독립당 등의 5개 단체를 묶어 대일전선통일동맹을 결성한다. 한낱 테러리스트의 조직으로 폄훼할 수 없는 인지도와 활동상을 보였던 의열단과 그를 이끈 김약산의 염원은, 당시 해외에서 난립하던 각종의 독립운동단체들과의 단일전선체 건설을 통해 제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조선혁명간부학교의 교육을 통해 인력을 양성하고, 이후 조선민족전선연맹과 조선의용대를 창설하였으며 이러한 활동은 종이호랑이처럼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임정에 비하면 가히 해외독립운동의 근간을 이루는 것과 같았다. 비록 제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임박한 해방의 기운을 감지한 후 임정에 참여하고 새로운 조국의 건설을 위해 분투한 그의 행적은 묵묵하고도 눈물 겨운 것이었다.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즐겨 읽었지만, 그에게 독서는 학습 혹은 유일한 휴식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일생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서른 두 살 첫 사랑으로 찾아온 생명의 은인 박차정과의 초혼은 독립투쟁에 목숨을 건 혁명 동지로서의 결합이었고 조선의용대의 전선 시찰에서 입은 총상 후유증으로 그녀가 죽은 후의 재혼은 곁에서 그를 보좌하던 비서 최동선의 목숨을 건 짝사랑의 결과였다. 인생사의 소소한 재미라고는 몰랐을 것만 같은 그의 삶은 무서우리만큼 집요하게 역사와 그 결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재미 없는 그러나 의미로 가득한, 어쩌면 그 시절은 생활의 재미랄 것을 찾을 수 없는 때여서 그리 간절히 역사와 개인을 동일시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점점 재미 있는 것이 차고 넘치는 시절, 목숨마저 버리고 역사의 소명을 따랐던 사람들이 사후에도 역사의 구천을 떠도는 현실이 더욱 의미 보다는 재미를 좇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김약산과 의열단. 역사 위의 그들은 때로 한 공간에서 한 뜻을 품었던 이육사와 김산과도, 때로 긴장하고 반목했지만 한 곳을 바라보았던 안창호와 김구와도, 심지어 해방정국 비명에 간 여운형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곳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 중앙학교 시절과 의열단 활동 초창기에 등장하는 나혜석과의 조우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시대, 같은 뜻을 품고 다르지 않은 최후를 맞았던 윤봉길과 이봉창 그리고 스러져간 의열단원 김상옥과 김지섭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너무나도 극명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의 잠재의식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이데올로그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을 때 좌우가 아닌 정의가 있는 편을 택했던, 그 묵묵함으로 한 길을 갔던 까닭이라면... 나 역시 '그런' 삶에 너무 큰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닐까.
2006-11-06 00:56,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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