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8. 21:57


누군들 좋아하랴만 나 역시 염치 없는 인간을 매우 혐오한다. 그러나 염치 따위는 내던져버렸기에 한없이 자유롭고 매력적인 인간에게 혹할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 연달아 떠올리는 것은 그로 인해 누군가 받았을 상처 혹은 아픔 등속이지만 그건 내가 낯 모르는 타인의 아픔마저 생각하는 인류애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모르는 새에 훈련된 어떤 '윤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의식은 대체로 내면화로 이어지는 까닭에, 알면서도 그 도의적 연상을 멈추지 못한다. 일종의 자신을 위한 윤리적 알리바이다. 너무나 매력적인 몰염치의 인간을 향한 현혹과, 그를 향한 도덕적 판단을 동시에 떠올림으로써 스스로에게 기댈 언덕을 마련하는 방어기제일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은 무섭다. 그리고 그런 사정 앞에서 강구하는 적절한 타협책은, 바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 마음이 꽤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가네코 후미코'에서, 제국주의로 치닫는 삭막한 국가 재편의 시기에 저항으로 넘실거렸던 근대 일본의 싱그럽고도 핍진한 풍경에 매료되어 집어들게 된 책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몰염치의 매력덩어리가 바로 오스기 사카에다. 내게 실천문학사의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는 양장본의 묵직함과 만만치 않은 두께, 무엇보다 그 속에 담긴 '사람'의 존재감 때문에 무척 선호하면서도 한편 부담스러운 대상이다. 한결같이 읽고 나면 후유증이 꽤 커서 나로서는 아무때나 선뜻 집어들게 되지는 않는다. 사람과 글이 모두 좋으면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잠겨있거나 사람은 훌륭한데 글이 아쉬우면 그에 대한 다른 자료들이 없나 기웃거리게 된다. 이 책은 드물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음에도 뭔가 다른 기록이 없을까 궁금해지는 경우였다. 아쉽게도 오스기 사카에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읽을거리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 
 

1885년 군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1923년 간동대진재의 혼란 속에서 테러로 숨을 거둔 오스기 사카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아나키스트 사상가이며 문필가다. 한두 줄로 요약되는 그의 삶은, 혼란한 시기 저항운동에 뛰어든 많은 혁명가들과 별 다름 없는, 거대하고 숙연한 역사적 생애다. 그는 군국소년으로 키워지던 시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억압의 실체를 깨닫고 자유를 갈망하며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이후 서구의 아나키즘 저작을 번역 출간하고 혁명 이후 러시아 공산당의 반민중성을 알리는 작업에 몰두하며 무정부주의자의 국제 연대를 위한 모색으로 중국과 유럽 등지를 오가면서 치열하게 활동했다. 집약된 삶의 줄거리는 위대한 삶의 전형으로 서술되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잡지 '개조'의 연재를 위해 집필한 '자서전'과 국제무정부주의자대회 참석을 위해 잠입한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담은 '일본탈출기'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 오스기 사카에의 면모는, 그가 역사 속에서 명멸해 간 수많은 혁명가들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인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평전이 아니라 자서전이어서 더 노골적으로 신랄하게 돋보이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분명 '보통' 인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군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병영 가까이에서 성장한 그의 유년 시절은, 이렇게 커서 뭐가 될까 싶을만치 걱정스러운 악동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선천적인 말더듬으로 내성적인 성격 역시 없지 않았지만, 남다른 호기심과 과단성(?)으로 불과 열 살에 성에 눈을 떠버린다거나 마음에 가는 소녀를 향해 과격하고 무모한 위악의 표현도 해가며 각종의 사건사고의 주인공으로 소년은 성장한다. 타고난 문학적 감수성과 섬세한 성정을 자각하기 이전 좌충우돌 못 말리는 청소년기의 에너지를 주로는 폭력적이고 파탄적인 방식으로 해소하며, 그는 스스로를 서슴없이 불량소년이라 칭할 만한 성장기를 보낸다. 어린 시절 동네 서점의 단골로 독서에 몰두하며 장래를 꿈꾸는 모습과 또래들 사이에서 단독으로 입수해 탐독하던 잡지의 글을 베껴내는 식으로 독서회의 지존을 구가하는 영악한 모습은 대의명분의 도덕률이나 사소하더라도 윤리적 가치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이후의 행보와도 일관성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택한 사상을 가치가 아닌 삶으로 내면화한 인간이며, 무엇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타고난 성향으로 더욱 조화로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유년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그는 폐쇄적인 집단주의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아슬아슬한 일탈을 일삼으며 나날을 보낸다.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사춘기의 소년들이 떼로 모인 그곳에서는, 억압된 욕망이 다양한 부작용을 낳으며 은밀히 해소되었고 그 역시 그 속에서 비정상적인 군국열을 주입하는 교육과 폭력적이고 파국적인 욕망의 분출 사이에서 유희하고 방황한다. 제국주의 교육의 폐해가 고스란히 답습되는 학교에서 철부지로 방황하던 그는 마침내 동기생 간 칼부림의 당사자로 퇴학을 당하고 이 사건이, 속에서 내밀하게 피어오르던 자의식을 감지하는 계기가 된다. 퇴학으로 귀향한 이후 열병과 같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살짝 거듭난 그가 선택한 길은 문학이었고, 물론 여전히 철부지 안하무인의 피는 이따금 솟아올랐지만 그는 대체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무사의 꿈, 무사의 죽음에 경도되었던 방자한 지난 날을 뒤로 하고 그가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동경에서의 새로운 삶과 함께 였다. 그는 제국을 열망하며 들끓는 도시에서, 새로운 정신 새로운 가치와 만나고 거리낌없는 가학의 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갈구했던 자신의 열망을 향해 매진하기 시작한다.
 

소위 위험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몇 번의 감옥행과 혁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그는, 역시 남다른 자유로운 면모를 잃지 않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책에서도 따로 지면을 할애해 해명(혹은 변명)하고 있는 '하야마 사건'이다. 이미 아내가 있었던 그를 구설에 오르고 죽음의 위험에도 직면하게 만든 사건은, 그의 두번째 아내이자 간동대진재의 혼란 속에 함께 죽음을 맞은 이토와 그와 또다른 연정을 나눈 여기자 가미치카와의 삼각관계가 빚어낸 참극이자 희비극이었다. 연애와 인간 관계에서도 서로에 대한 구속이나 권력 관계를 떠난 완전한 자유를 원했던 그는 가미치카와의 연애에 휘말린 동시에 이토 노에를 사랑하게 된다. 마침 자신이 주력하던 잡지의 폐간 등으로 좌절하고 함께하던 동지들마저 잃어 잔뜩 의기소침해 있던 그에게 다가온 두 여인과의 사랑은, 이러저러한 구구한 사정 속에서 오해와 실망과 반목을 만들고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그러던 중 집필을 위해 내려간 하야마에서, 질투와 복수심에 사로잡혀 이토와의 동행을 의심하며 '침입'한 가미치카에게 그는 목에 단검을 맞는다. 한편의 치정극이라고 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은, 자서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며 오로지 오스기 사카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해명되고 있다. 구체적인 정황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있지만, 아무래도 자기방어적인 어조가 다분한데 그럼에도 절절하게 와닿는 것은 그가 참 이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며 한편 매우 관조적인 다혈질의 인간인 것 같다는 느낌이다.
 

1부와 2부 사이에는 다른 책에선 볼 수 없었던 강렬한 핏빛의 간지 두 장이 삽입되어 있다. 그의 삶을 시각적으로 단순히 재현하면 이런 빛깔이 아닐까 싶어 그것조차 마음에 들었다. '일본탈출기'라는 제목이 붙은 2부는 그가 유럽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국제무정부주의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떠나 유랑하며 보고 느낀 소회를 기록한 일종의 견문록 모음이다.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능청스럽고 재기발랄한 문체와 유쾌하고 거칠 것 없는 솔직함에다, 서구의 문물과 혁명운동을 바라보는 동양 이방인의 예리하고 분석적인 시선이 돋보이는 글들이 묶여 있다. 1920년대 초반의 유럽은 러시아 혁명의 여파와 프랑스 반동주의의 기운으로 복잡한 정세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그는 그 거시적 변화의 현장을 실체적으로 느끼고자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러나 대체로 여유만만하고 묘하게 낙관적인 그는 일상적인 검속과 감시가 따라붙고 예정된 대회는 기약없이 연기되는 상황에서도, 자기 속의 욕망에 솔직하게 반응하며 여자도 만나고 못 먹는 와인의 맛도 알아가며 마치 위험한 배낭여행처럼 외유를 즐긴다. 그러던 중 메이데이가 다가오고, 조금은 김 빠진 수세적인 집회에서 자청한 연설로 프랑스 경찰에 연행되고 결국 정체가 탄로 나 이국의 감옥에 갇혀 매우 태평스럽고 자족적인 몇 달을 보내게 된다.  
 

나는 마코에게 전보를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이블에 앉아 이것저것 간단한 문구를 끼적거려보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싸게 먹힐 전보문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가지 적어보던 중에 다음처럼 이상한 것이 완성되었다.
 

마코야, 마코 / 아빠는 지금 / 세계에서도 유명한 / 파리의 감옥 라 상테에. // 그러나 마코야, 걱정하지 마 / 맛있는 서양요리 먹고 / 초콜릿도 먹고 / 담배도 뻑뻑 소파 위에서. // 그리고 이 / 감옥 덕분에 / 기뻐해라, 마코야 / 아빠는 곧 돌아간다. // 선물은 듬뿍, / 과자에 옷에 키스에 키스 / 춤추며 기다려라 / 기다려, 마코, 마코.
 

그리고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방안을 왔다 갔다 하며 이 노랫가락 같은 문장을 커다란 목소리로 노래하며 지냈다. 그런데 묘한 건, 조금도 슬플 일이 없었음에도 그렇게 노래를 하고 있으려니 소리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목소리가 떨리면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부분을 뚝 떼어내 옮기자니 그의 글 전반에 감도는 기운을 전하기는 어렵지만, 할 일 없는 감옥에서 빈둥거리다 문득 큰 딸아이가 생각나 전보를 친 이야기를 적은 부분을 옮겨봤다. 나는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적어도 팔할은 그의 글솜씨 덕이라고 생각된다. 구어체와 입말을 그대로 살린 그의 문체가 주는 생동감과 박진감 그리고 간결하되 적확한 묘사와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유머는,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었다. 양장본의 자서전, 이라는 형식과 내용의 무게에 미리 압도된 나로서는 쿨하고 능청스러운 어투에 수시로 행간의 반역을 구사하는 그의 이야기가 조금 놀랍고 생경했던 것 같다. 말미에 붙은 역자의 해설은 이러한 그의 문체에 대해 아나키즘적 민중예술론을 실현한 결과물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 학술적 가치 유무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읽는 재미를 선사하는 글이어서 금세 빠져들어 낄낄대며 읽었다. 어떤 당위나 권력에도 구속되지 않으려 애쓰며 윤리를 넘어선 자유로움으로 운동 자체의 삶을 살았던 사람. 그가 살았던 시대의 조건은 물론 척박하고 혼란스러웠겠지만, 그 무엇에도 속박됨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유쾌하고 뭉클했다.
 

아쉬운 점은, 그의 이름 앞에 붙는 갖가지 수식어와 그의 생애를 해설하는데 덧붙여진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위상에 대한 실감을 그다지 할 수 없었다는 점 정도. 비명에 떠난 자가, 죽음과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회고한 명랑한 글이어서도 그랬겠고 '자서전'의 경우 그의 사상적 성장과 성취에 전혀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미 넘치는 혁명가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엿보는 일의 즐거움과 깨달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감동을 주는 인간도, 상처를 주는 인간도 결국 모두 평범하다는 사실. 그들 모두 두려움에 휩싸이고 절망에 허덕이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 어차피 해석과 조명은 타인의 몫이고 어떤 렌즈를 들이댈 것이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그 삶의 과정에서 누구나 길을 잃고 헤매이지만, 결국 어떤 죽음을 맞느냐 거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을 어떻게 끌어가느냐 하는 것이 타인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는 관건인지도 모르겠다. 전단지를 돌리고 시위에 참여하고 끊임없이 글을 쓰고 또 말하고... 그들의 활동은 그렇게 일상적인 실천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때로는 총을 들고 결사하고 감옥에도 끌려가지만 말이다. 인간미 넘치는 혁명가의 스스로를 까발린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로 스스로를 옥죄며 괴로워하는 내게는 참 고마운 책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재구성된다는 것 역시, 자필만큼이나 선택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평전이 기다려지는 책이다.


2006-10-21 05:24, 알라딘



오스기사카에자서전
카테고리 시/에세이 > 시/에세이문고 > 시/에세이문고 일반
지은이 오스기 사카에 (실천문학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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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