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11. 5. 18. 22:06


오에 겐자부로라는 이름의 존재감만을 감지하고 있었을 뿐, 그의 책을 읽은 건 처음이었다. 책장을 펼치면 소설이 시작되기 전 '나에게 일어난 일을 상상에 의해 심화하다'라는 흡사 고문헌의 번역 같은 <체인지링>을 위한 서문을 만나게 된다. 일흔을 넘긴 노작가가 집필한 최후의 삼부작 중 첫번째라는 수식은, 그의 모든 저작을 미답지로 남겨둔 초보 독자에게 사실 만만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소설가에게 경의씩이나 가지기 시작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지만, 칠십 년 인생의 결산을 들춰보는 심정은 아무려나 그런 것이었다. 공감을 위한 준비 부족으로 인한 주눅 혹은 공감 부득의 안타까움을 나의 무지 탓으로 돌리는 반성의 독서. 때로 권위(?)란, 판단불능의 요상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의 처형이자 어린 시절의 지우(라고만 하기에는 인생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주고 받았던)인  '담뽀뽀'의 감독 이타미 주조의 자살을 모티브로 소설은 쓰여졌다고 한다. 작가의 분신인 '고기토'와 그의 아내 치카시, 장애를 가진 아들 아카리 그리고 사후에도 '물장군'을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화를 주고받는 고로. 네 사람의 삶의 반경에 포진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시공을 종횡하며 전개된다. 재생지 질감의 두툼한 책장 속에 녹아있는 이야기는, 오래 되어 빛 바랜 일기장처럼 회고적이고 깊숙이 두어 습기찬 종이처럼 눅눅하다.
 

무지한 중에도 외면할 수 없는 어떤 밀도로 가득 찬 이야기들은, 이를테면... 무시할 수 없는 공력과 연륜을 지닌 '어른의 말씀'에 사소한 반론이라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고 저린 다리를 꾹꾹 눌러가며 무릎 꿇고 앉아 듣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이야기 속에 빠져 잠시 잊기도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지루해져 딴 생각을 하다보면 급격한 통증처럼 다리 저림을 자각하게 되는 뭐 그런. 장구한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 그야말로 역사로 화한 자전적 삶이 한 편의 대하 드라마처럼 유장하게 펼쳐질 때, 어지간한 재기가 아니라면 사실 화자와 청자의 마음의 거리는 다소 민망한 것이 되기도 한다.
 

이른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하여 일관되게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경계하며 실천적 좌파 지식인으로 살아왔다는 소개 덕분에 그나마 집중의 노력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 엄청난 당위성을 부여하며 모티브로 차용한 '체인지링'이라는 것이 억지스럽게도 느껴졌고 일관되게 영탄조의 찬양일변도로 묘사되는 고로라는 인물에 대한 수긍도 참으로 어려웠다. 희망과 절망, 감동을 들먹이는 책 표지의 카피는 분명, 실존인물의 자전적 이야기여서 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겠지만 그렇게 안전한 감동을 전제할 만큼 과연 오에 겐자부로의 일생과 작품이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한없이 빛나는 아름다운 나날을 급습한 충격적인 '그것'이, 이후 일본의 문화계에 거대란 족적을 남긴 두 거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관계 짓고 미래의 희망까지를 불러들일 만큼 상징적인 것으로 이해될 수도 물론 있겠다. 그러나 '소설' 안에서 '그것'은 적어도 일개 독자인 내가 읽기에는 너무나 김 빠지고 극대화된 느낌이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무엇으로 삼기에 너무나 조야하다는 허탈감이 더욱 강렬했다. 마치 필생의 비밀처럼, 차마 직접 거론할 수도 없을만큼 위험천만한 비밀로 무장한 채 동어반복되던 '그것'의 실체를 읽을 때의 허망함이란. 정말 죄송하지만 뭡니까, 애비는 종이었습니까? 속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차라리 실존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진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는 듯 맥락을 종잡을 수 없는 '주장 같은 묘사'가 반복되는 느낌이어서 심지어 이것이 노장의 특권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어찌됐건 '소설'이라는 픽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자전' 소설이라는 이유로 굳이 실존인물들을 시시때때로 등장인물에 종이옷 입히듯 맞춰 상상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러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 소설은 '자전'이 중심에 놓여있는 작품이었고 하필 나는 소설이건 무엇이건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해버리는 단순한 독자였던 것이다.
 

물론 이름이나 겨우 주워섬겼던 무지한 독자의 막무가내 기대가 스스로를 배반한 독후감일 수도 있다. 다소 산만하게 전개되기는 하지만, 저자가 오랫동안 경험한 일본사회 좌우의 대립과 내밀하고 개인적인 차원의 혼란상이 그리고 고로의 자살을 둘러싼 도를 넘은 미디어의 횡포와 무례가 단지 저열한 옐로우 저널리즘의 소산이 아니라 전후 일본 사회가 축적한 사상적 불균형의 집약임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있다. 또한 작가 역시 그러한 과거와 현재의 피해자라면 피해자일 수 있겠지만 결국 미래는 또 다른 희망을 품고 있다는 화해적 결말을 끌어냄으로써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인정할 수 있겠다. 그러나 끝까지 맴도는 의심은, 무구한 환상으로 어정쩡한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 과연 정리모드에 들어선 '어른의 숙제'일까 하는 짧고 불퉁한 생각. 난 겁나게 무지하지만, 아직 시퍼렇게 젊은 것인가.
 

소심하게 덧붙이자면, 제목으로 뽑은 구절처럼 군데군데 인상적인 표현들은 차고 넘쳤다. 솔직히 소설이 자꾸만 무언가를 변명하는 느낌이어서 초반부터 묘한 저항감이 찰랑거린 탓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는데, 그건 뭐 독자의 소양 때문이라 치고. 하루가 다르게 질주하는 세상에서, 이렇게나 느리게 '인생에서 만난 모든 것을 주머니에 넣고' 줄줄이 자기 얘기를 풀어내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가 아직까지 있다는 것에 약간의 안도감이 들기도 하고. 또 여전히 그의 독자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테니 혹시나 이런 의고적 권위의 힘이 세계 한 부분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는 데에 기여하지 않을까 작품과 무관한 상상을 해본다. 


2006-11-10 01:57,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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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문학선
지은이 오에 겐자부로 (청어람미디어,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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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