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이었다는 기억 말고는 뇌리에 남은 게 없는 '아리랑'을 읽은 지 십 년이 넘었다. 많은 평전의 주인공이 그러하지만, '아리랑의 김산'은 특히나 생의 궤적이 보이는 치열함과 비극성이 그가 목표하고 살았던 삶의 내용과 의미를 압도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의 재구성이라는 관점에서, 평전은 충분히 의도적이고 절충적인 장르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료로 남은 주인공의 삶의 기록 자체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인물의 삶은 격동의 순간을 중심으로 나머지 삶의 조각들이 원심적 재편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하지만 누구나 사람일 터, 삶의 길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때로 좌충우돌하고 혹은 극점을 오가기도 한다.
물론 님 웨일즈의 인터뷰에 의해 전해진 김산의 삶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이름이 공저자로 등재될 만큼의 신빙성은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장지락으로 태어나 장북성, 유한평, 이철부, 장명 마침내 김산까지 때때로 버리고 구해야 했던 이름 만큼이나 그의 삶은 굴곡지고 험난했으며 마침내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격동에 격동, 오직 활발하게 조국의 해방과 세계 혁명의 승리를 향해 나아갔던 그의 짧은 삶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파란만장하다.
서슬 퍼런 제국주의에 신음하는 조선 땅에서 태어나 열다섯 어린 나이에 생사의 고비를 넘으며 겨울 만주를 가로질러 걸었던 소년,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다시 공산주의자로 변신을 거듭하며 이상을 향한 현실의 멍에를 마다하지 않은 청년. 중국 공산당사의 가장 처절하고 찬란한 패배였던 광주 꼬뮨과 해륙풍 소비에트의 중심에 그가 있었고, 중국 현대사의 가장 정치적이고 절묘한 협잡이었던 국공합작의 회오리 속에서 그는 스러져갔다. 일찌기 조국을 위하여 망명을 자처하고 자신을 버린 당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채, 국적과 당적의 경계 위에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올려둔 결과는 오해와 불명예로 점철된 죽음이었다.
'혁누망운'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제목을 단 음반이 있다. '우리들의 사랑법'과 '내 사랑 한반도'를 지었던 박치음이 새천년을 앞두고 내놓았던 라이브 음반이다. 혁누망운 - 혁명 누명 망명 운명,이라는 거창한 화두를 담은 동명의 노래는 그러나 미려한 목소리에 실려 가볍고 아련하게 흐른다. '그런 시대도 있었노라'는 그 노래 '혁누망운'. 온 삶을 시대와 역사에 바친 순정의 인간이 걷는 그 길은 변절과 야합이 횡행하는 시대, 장난처럼 인간을 유린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참으로 뜨겁고도 아프게 짓밟힌다. '물에 녹지 않는 소금'이 되고자 했던 그의 삶, '모든 것에 패배하고 자신에게 승리한 인생'이라 자평했던 쓸쓸한 삶. 그 애잔한 기록으로나마 복원되고 읽혀진다는 것을 다행 삼아야 하려나.
김산을 생각한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공산혁명을 위해 자신을 버린 당의 조직사업에 몸 바쳤던 사람. 국제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였던 이상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였던, 그러나 기어이 일제 특무라는 의심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전선에서의 죽음으로 명예를 회복하고자 했던 마지막 바람마저 다섯 발의 총성과 맞바꾸며 스러진 사람. 그리고 또다른 金-山들을 생각한다. 누구의 기억 속에도 마땅히 자리 잡지 못한 채 식민지 조국을 향해 마지막 눈길을 향하며 죽어갔을 수많은 그들을 생각한다. 감동을 수집하듯 평전을 읽고 그 거대한 삶에 벅차오른 가슴을 어쩔 줄 모르기도 한다. ... 심장의 감동이 현실의 용기로 화하기까지, 복잡하되 무감한 현실에 한 줌 변혁의 기운을 스스로 불어넣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김산-들을 소비해야 할까.
가끔 피쎄일(아직도 이런 말 쓴다고 가끔 타박을 듣는다. 하지만 선전전이라는 말도 마땅치 않고 전단을 돌린다고 말하는 것도 무언가 헐렁하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을 할 일이 있을 때, '가네코 후미코'와 '오스기 사카에'가 떠오르고는 한다. 내게 변혁은 언제나 거창하고 현실을 압도하는 무거운 것이었다. 그러나 평전의 행간에서 부활한 혁명적 삶의 주인공, 그들의 일상은 그들이 지향하고 몸바쳤던 그 무엇만큼 장엄하고 유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몽매간에 원한 것은 혁명이었으나, 그들이 찍어내고 뿌린 것은 고작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죽어 빛나는 이름을 얻었으나, 그들의 삶은 실은 무척이나 비루하고 초라하며 한편 시대착오적이었을 것이다.
일요일 오후, 지역 선배의 부친상을 알리는 문자를 받았다. 내가 속한 지역위원회는 내년 초 시당으로의 통합을 앞두고 차기 지역임원 선거를 시작한 터였고, 아버님을 잃은 그는 지역위원장에 출마한 단독 후보다. 학생운동과 지역운동 노동운동 민중운동을 전전하며(?) 나이는 서른 여덟, 다행히 장가는 갔으나 동갑내기 아내와 여덟 살 먹은 딸래미는 멀리 춘천에, 언제나 서너 개의 대책위를 바쁘게 넘나들며 이따금 투쟁이 없는 날에는 부천역앞 노점상에서 마주친다. 아주 가끔 양복을 빼입는 날은 당 행사나 지역 행사가 있는 날, 낮도 없고 밤도 없이 투쟁 현장을 뛰어다니는 그는 며칠 전 노점상연합회의 이웃돕기 김장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입원도 했었다. 가끔 오는 그의 연락은 언제나 투쟁이나 행사 일정을 담은 것이었고, 얼굴이나 보자는 전언도 그냥은 없다.
애틋한 마음이 되어 찾아간 문상에서 돌아오는 길, 너무 울어 눈이 빨개진 채 배웅을 나온 그의 한 마디는 어이없게도 "투표했니?"였다. 징한 빨갱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다시 '김산 평전'을 뒤적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영웅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망각의 거처로 둥지 트노라 세상의 밖에서 문득컨대 동지들 참으로 아름다웠소 수많은 전설들 수많은 신화들 수많았던 무용담들 ... 혁명과 투쟁과 사랑과 노래 꿈으로 추억으로 기억 너머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운명으로 살아가겠노라', 씁쓸하고 기운 빠지는 '혁누망운'의 노랫말이다. 그리고 김산과 아리랑을 기념하는 사이트를 서성대다가 우연히 마주친 예전 기사가 내내 맴돈다. 항일독립투쟁가들의 후손인 재중동포들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불법체류자 사면과 취업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소위 '조선족' 학자의 쓴소리. ... 문득 현실이 역사보다 무겁고, 생각이 많아진다.
2006-12-12 23:48,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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