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속 인물과 작가를 동시에 떠올리며 무슨 비밀이라도 캐는 양 골몰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은 작가의 경험일까? 이 주인공은 작가의 분신일까?
특히나 세상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아 책날개에 붙어있는 간단한 약력과 한 장의 사진, 책 말미 작가의 말 정도가 그에 대해 가늠할 수 있는 정보일 경우.. 사람에 대해 사사로운 관심이 많은 나는, 이미 마음을 사로잡고 기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작가에 대해 꽤 많은 것들이 궁금해진다. 산문집이 반가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서술자와 화자의 일치는 글을 읽는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글을 읽으면서 묘한 관음의 쾌감과 함께 작가와의 심적 거리가 좁혀지는 듯한 친근감에 기분이 유쾌해진다. 물론 이번 윤대녕의 산문은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윤대녕은 나에게 있어, 독자가 바라는 우아함을 가진 작가다.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의 이름이 쉽게 회자되고, 그의 글쓰기가 트렌드가 되더라도 혹은 그의 글쓰기가 트렌드에 편승한다해도.. 달리 보이지는 않을,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을 그의 글은 내게 남겨줬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을 차곡차곡 담아낸 이 여행 산문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소설적인 글쓰기다. 이전에 그의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윤대녕다움'은 장르의 전이에도 불구하고 오롯이 남아있다. 그러한 이유로 산문집을 읽을 때의 즐거움이 조금 반감되는 느낌도 있지만, 답답하지 않을 만큼만 레이스 커튼을 하나쯤 사이에 두고 독자에게 다가서는 그의 조심성과 예민함이 나는 무척이나 고맙다. 앞으로 그에게서 읽어낼 많은 글들에 대한 기대를 북돋아 준다고나 할까.
지난 겨울 일주일 남짓의 제주 여행에서 돌아온 직 후, <달의 지평선>을 마음에 담아 갔던 여행에서 돌아와보니 그는 또 내게 제주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밟았던 길과 내가 보았던 바다는, 덕분에 더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만 같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새벽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침대 맡에 올려둔 책을 펼쳐들고 그가 이끄는 대로 곳곳을 다녔다. 그를 따르는 여행은 현실적이고 또 몽환적이다. 산문집을 읽으며 기대하게 되는 자잘하고 소소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진다. 그냥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가 간 곳을 내가 다 가지 못할 것이지만, 그의 얘기를 듣고 상상한 그 곳들은 다분히 윤대녕적인 공간으로 마음에 남아 나를 꿈꾸게 하고 동경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가 고맙다.
2001-07-08 03:04,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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