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을 읽으며, 들어본 이름인데... 정도였던 하종강 님의 홈피를 지금껏 열심히 드나들고 있다. 묵은지같은 글들을 찾아읽으며 세상엔 아직 변명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 생각하고, 한편 그들 참 따스하고 즐겁구나 생각하며 괜히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그 하종강 님의 산문집이 새로 묶여 나왔다, '하종강의 중년일기'라는 소박한 부제를 달고서.
많은 사람들이 올라섰다가 내려선 길에 아직도 서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역시 일찍이 그 길에서 내려섰으나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도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 만남 속에서 저는 거의 매번 감당할 수 없는 소중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 떠다 주는 일이라도 성의껏 하며 살자는 것, 그래서 최소한 '길을 막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것, 그것이 길가에라도 남아 있기 위한 저의 다짐입니다.
그의 일기가 시작되는 첫 장 '풀꽃편지'의 여는 말이다. 길에서 내려선 사람들은 뒤돌아가는 줄로만 알아 서운했고, 길에서 내려서면서는 바라보는 것만도 미안해 돌아서야하는 줄 알았던 어느 시절이 떠올랐다. 물론 그저 길가에 남아 길을 막지 않는 사람이라도 되고자 한다는 저자의 도저한 겸허가 곧이 들리지 않지만, 내려섰다고 생각한 후부터 줄곧 길을 향한 짝사랑에 삶을 건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설령 그렇다해도 길가에 있기 때문에 길 위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고 그래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맴돌기라도 해야겠다는 새삼스런 의지.
'철들지 않는다는 것', 세상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에서 자주 나오는 관용구이기도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대학 생활을 한 사람들 중의 일부에게는 자연스레 떠오르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중반 거의 해마다 음반을 내며 무수히 투쟁의 현장을 달궜던 조국과 청춘의 노래 '새세대 청춘송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민망하다, 오랜만에;;;) 한총련의 진군가가 담겨있었던 그들의 세번째 음반 테이프 앞면의 첫 곡이었다.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제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는 그야말로 가열차고 패기만만한 선언과도 같은 가사의 이 노래를 우리 모두는 정말 사랑하였다. 이후의 가사는 갈수록 가관, 하염없이 점입가경인데 노래를 만든 윤민석의 행보(그러고보니 최근황은 모르겠다, 여전히 '송앤라이프'인지...)가 꽤 한결같았다는 걸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지며 가사가 전파한 주술의 힘 역시 믿을만 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 우리에게 철이 든다는 것은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멀쩡히 졸업해 사회로 나가는 것이었을까. 물론 그것이 운동의 끝은 아니겠지만 경험이라고는 그것뿐이었던 내게, 5월이며 8월의 대중집회에 얼굴을 내미는 졸업선배들과의 조우는 약간 묘한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아프게 철들고 안타깝게 철들고, 어쩌면 철들지 않고 싶었지만 철들 수밖에 없었던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소리없이 주위를 맴돌며 마음 한 켠 내어주고 있다는 걸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가끔 잊어버리곤 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철들지 않겠다'며 세상 많은 것들과 벽을 치고 모여앉은 그 속은 깊고도 고립된 청춘의 우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훌훌 넘어가는 책장을 느끼며 실은, 전작의 고요한 강렬에 비해 너무 싱거운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보잘 것 없는 이야기들 속에서, '노동'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노동'과 '노동자'를 늘 심연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들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한껏 푸근해지고 말았다. 온라인으로 이미 읽었던 글들도 적지 않고 워낙이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내가 잘 아는 마음 약하고 착한 이웃 아저씨의 공책을 들여다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가끔 그렇게 '성공하겠다는 집념으로 가득찬 성실함'을 마주 대하면 숨이 막힌다. 지하철에서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노약자에게 자리 양보 절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자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보다 더 인간의 내밀한 고민으로 시선을 돌리는 새로운 '혁명'이 왜 하나같이, 좀 더 살기 편해지는 쪽으로, 좀 더 유명해지는 쪽으로, 좀 더 돈을 많이 버는 쪽으로, 부당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탄압 받지 않는 쪽으로만 향해지는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그 친구는 10년 넘게 대학 선생을 하다가 칼국수집 주인이 된 것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멋쩍었는지, 말을 하면서 계속 더듬었다. ... 전국의 칼국수 집 주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칼국수 장사가 대학 선생 일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10년 세월 동안 자신이 노력한 분야에서 승부를 보지 못한 친구가 안쓰러웠을 뿐입니다.
운동의 당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걸려넘어지는 어떤 경직이나 사소한 일에 대한 무의식적 경시 같은 것을 그의 글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일상의 오감이 '노동'을 향해 열려있지만 잠식되거나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풍부한 외연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은, 글이 반영하는 삶의 진정성이 아닐까. 얕은 분노로 시작된 거친 합리화를 관철하기 위해 자주 공허하고 대책없는 주장을 남발하는 스스로의 가벼움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한편, 하종강 님이 말하는 '부채감'과는 차마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름 작은 부채 하나는 오래 달고다니며 느꼈던 비빌 언덕 만난 듯한 동질감.
너무 금세 읽어버려 좀은 허무하기도 하고 분량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좀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쩐지 '철수와영희'가 크게 삿된 욕심을 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기쁘게 책장을 덮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철들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또한 관성을 넘어서는 반성의 힘을 기대하며.
2007-07-06 00:45,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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