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식 비슷한 게 생겨난 후에는 누구나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믿음을 가슴 깊은 곳에 새기며 살아간다,고 나는 믿는다. 스스로를 정말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나 자신'의 고유함에 대한 무의식 같은 것이, 실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거칠 것 없는 매력이나 청춘의 눈부심 따위가 물리적으로 사라진(?) 나이가 된 후에도, 젊은 날 꾸던 꿈을 생활 뒤로 물리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유독 그랬던 때가 아련히 떠오른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아침, 전철을 탈 일이 있어 책장 앞을 서성이다 골라들었다. 여름 휴가는 가을날로 받아놨지만 어딘가로 떠날 형편은 못 되고, 그렇다고 떠나고 싶은 바람마저 아주 모른 체 할 수는 없고. 정갈하고 깔끔한 표지가 주는 단정한 느낌에 조용한 기대를 품었다. 책을 받아 훌훌 책장을 넘겨보았던 날은, 너무 공들인 아기자기한 편집이 오히려 거슬려 도로 책장에 꽂아버렸었다. 대체 무슨 기록이길래 이렇게도 유난스레 시각을 장악하려 드는 걸까 싶기도 했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상찬을 하는 책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책장을 넘긴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느꼈을 법한 진한 공명이 내게도 자주 와닿았다. 기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인간들로 북적이는지, 대다수와 다른 특이한 성정과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만 모아도 도시 하나 만들 만큼은 족히 될런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고유성과 별개로, MBTI니 애니어그램이니 하는 인간의 성향을 무리로 구별 짓는 잣대가 받는 각광 역시, 결국 어떤 부류로건 묶이고야마는 인간의 보편성에 생각이 미치게 한다.
하지만 십 년을 훌쩍 넘겨 쌓이고 쌓인 기록의 정수를, 달리는 차 위에서 집어삼키듯 읽어낸 것이 예의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이라기보다 사람 같았고, 기록이라기보다 마음 같았다. 젊은 날의 맹세와도 같은 고요한 치기를 세월이나 나이듦에 묻어버리지 않는 혹은 묻어버릴 수 없는 태생의 절절한 고백들. 참으로 많은 곳을 오랫동안 여행 중인 떠도는 영혼의 이야기들을 그저 건조하게 넘기고 있는 내가 괜히 아쉽기도 했다.
눈이 오래 머무는 행간에서는 이따금 '황색눈물'이 자아냈던 아련함이 떠올랐다. 잠재울 수 없는 열정과 물 오른 패기에 휘둘리며 빛나는 스스로에 현혹되었던 많은 청춘들이, 조금은 주눅 들고 조금은 포기한 채 평온한 평범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우리들 대다수의 삶이라는 씁쓸한 동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대다수에 속하지 않는, 삶의 모든 시간을 청춘의 질감으로 채워나가는 사람에게서 전해오는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빛나는 청춘의 한 때에 붙박혔던 낭만과 몽상을 여전히 붙들고 가는, 내 삶과는 많이 다르지만 응시하며 응원해주고픈 꿈을 접어버리지 않은 사람인가 싶었다. 방랑을 향하는 삶의 자장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혹하지 않는 나직한 울림, 동요하지 않는 조용한 끌림. 내겐 참 적당했다. 여전히 모르는 채로, 그가 내내 그리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07-08-11 01:51,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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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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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행 > 기행(나라별) > 세계일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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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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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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