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기자 정문태의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을 읽고서 마구 고무되어, 한달음에 읽어내려갔던 책이다. 사실 따로 '아시아네트워크'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미 몇 년 전에 네트워크에 참여한 아시아 각국 기자들의 글이 묶여 책으로까지 나와있었다. 뿐만 아니라 언제인지 모르게 내 책장에도 떡하니, 아마 ngo학과 수업을 청강하며 참고자료랍시고 사두었던 모양인데 도무지 기억에 없다. 새로운 일을 하면서 조금씩 극복하기 시작했지만, '아시아'에는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는 편향된 의식이 이렇게 드러나고 만다.
'아시아네트워크'는 아시아인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자는 취지로 2000년 9월 '한겨레21'을 통해 아시아 20여개 국의 언론인과 민주화운동가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랜동안 서구 외신의 눈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며 세계를 읽었던 상식의 역설을 넘어서고자 하는 독립적인 시도. 그러나 이 실험을 주도한 정문태 기자가 쓴 머리말에는 뼈아픈 반성과 자책에도 불구하고 결국 '언론인들만'의 네트워크로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함께 앞으로 펼쳐진 멀고 먼 여정에 대한 나름의 의지가 담겨있다.
뉴스상품을 장악한 언론자본의 폐쇄성과 공고함 앞에 대륙과 역사의 근친성 따위는 너무나 순진한 연대의 로망이었을까. 아무려나, 그렇게 시작된 길의 첫 번째 보고서가 나온 게 이미 4년 전이다. 책은 아시아 14개국 기자들의 기사를 주제별로 묶은 네 개의 장과 세 사람의 특별기고문까지 총 5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마지막 장 '내릴 수 없는 깃발'에서는 특별기고자들의 짧은 자서전 세 편이 이어지는데, 버마학생민주전선의 의장이었던 나잉옹과 동티모르의 초대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 그리고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지도자 야신이 그 주인공이다.
오해와 왜곡 혹은 어떤 시선이 그대로 고착되어 상식이 되어버린 아시아의 전설들에 대해 까발리는 1장 '해묵은 거짓말', 쌍동이처럼 반복되는 비극을 간직한 아시아 각국의 5월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과 한국전쟁의 내적 연관과 미국 혹은 서구에 유린당한 아시아의 공분을 담은 2장 '그들도 우리처럼',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세계화와 지역화 혹은 양자의 공존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는 3장 '혈통과 민족을 넘어', 섹스와 젠더의 문제 그리고 아시아적 인습 속에서 장벽 또는 디딤돌로 작용하는 여성을 고찰하는 4장 'sex of asia'까지가 기사 묶음이다.
글들은 기사를 재수록한 것이 많은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좀 들쭉날쭉한 느낌이 없지 않다. 심도 있는 분석 기사가 있는가 하면, 가십성의 가벼운 기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처럼 아시아에 무심해온 독자라면, 현장의 목소리와 내부자의 관점을 담은 자국의 소리가 꽤 흥미롭고 신선하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된다. 서구로부터 발신되 외신을 그대로 주워섬기는 일에 대한 비판도 과분할 만큼 나는 외신에도 별 관심 없는 편이었다. 알려면 너무 어렵고 알게 되면 심사 복잡해지는 세계의 이야기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의식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이삼 년 사이의 일인데, 특히 아시아쪽은 스치듯 들어도 그야말로 난망함을 감출 수 없는 소식들이 너무 많았다. 참 징글징글한 반복이다 생각하며 무심히 넘겼던 사연들.
책장을 덮고 문득 어렸을 적 사회과부도가 떠올랐다. 4학년이 되면서 처음 받은 것 같은데, 그 책은 이전까지의 교과서와는 뭔가 다른 차원이라는 느낌이었다. 저학년때 끝났다고 생각했던 커다란 판형에, 미술이나 음악책처럼 허랑하게 얇지 않은 두께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에 담긴 알록달록한 그림과 지도들. 사회과부도를 손에 넣은 이후로는, 덮었던 책장을 펼쳤을 때 나오는 그림에 나온 사람 머릿수를 헤아려가며 이겼네 졌네 하던 따위의 교과서 장난은 빠이빠이였다.
생소한 국명과 재미있는 지명, 복잡한 국기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우리는 이따금 아이엠그라운드 나라이름 대기, 수도 이름 맞추기 같은 학구적인 게임을 포스트교과서 장난으로 삼기 시작했다. 아싸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워섬기고, '만두'가 들어가는 네팔의 수도 이름에 깔깔거리고, 대만과 타이완이 같은 나라인지 아닌지 내기를 했다. 지배질서도 패권도 서구문명도 몰랐던 어린 마음은 그렇게 순진하게 단지 우리나라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묘한 애정과 초보적 동류의식을 피워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구본 같은 건 어쩌다 가는 과학실에나 있었고 세계지도 역시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시절, 그때 우리에게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게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었다. 아무리 뚫어져라 살펴봐도 삼면이 바다인 외로운 한반도, 아래는 재수없는 일본이 바나나마냥 휘어감싸고 있고 위로는 무서운 북한과 더 무서운 중공이 있었다. 그 위에는 아악 소련!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한 게 어디서 주워들은 5대양 6대주에 근거한 '우리 아시아' 대륙의 나라들이었다. 구라파는 너무 멀었고, 미국도 바다 건너 한참. 어린 눈에는 한반도에서 한 뼘이면 다 들어차는 아시아의 나라들이 어쩐지 친근한 이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같은 바닥에서 피어오른 탓인지 아시아의 작은 나라들은 참으로 유사한 근현대의 난국을 거쳐왔다. 하지만 일찌감치 개발독재로 진공적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에게 주입된 아시아는 언제나 우리 발치 쯤 수직적 연계선상 하에 있었던 듯 싶다. 그리하여 현재적으로 의미있는 아시아 역시 동아시아시대 중심국가로 발돋움고자 하는 대한민국 주변에 포진한 성장 잠재력과 투자 가치를 겸비한, 대장 노릇하며 이것저것 빼먹기 좋은 순진한 골목 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권력과 자본의 관점은 언제고 변할 리 만무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하고 있다. 압축적 경제성장이 아닌 한국의 민주화와 운동을 주목하고 연대하는 많은 단체들, '80년 광주를 통해 민주화의 성지를 만들어내고 87년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쟁취한' 한국을 배우겠다는(?), 군사독재 아래 고통받는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활동가들 역시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래 개천에서 난 용마냥 서구에 대한 동경과 반아시아적 사고 속에 길들여져 왔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고 소통하며 변해가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 사회과부도를 들춰보던 마음으로만 돌아가도,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는 가뿐히 과거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7-05-25 01:52, 알라딘
우리가몰랐던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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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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