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3. 11. 12. 23:45

 

 

1931년부터 1948년 사이에 발표된 조지 오웰의 에세이 29편을 시간 순서대로 엮은 책이다. 각 글이 시작되는 쪽에 집필 시기와 발표 지면, 당시 작가의 사정과 사회적 배경 등이 간략히 정리되어 있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지명 및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내용에 각주가 달려 있어 읽기의 이해를 돕는다. 빽빽한 활자들 사이에 간헐적으로 삽입된 사진들은 낮은 해상도에도 불구하고 나름 작가의 일대기를 아우르며 생생한 이미지를 전한다. 앞표지 책날개에는 ‘오웰의 에세이 전작 가운데 일부를 옮긴이가 선별하여 묶었’지만, ‘편역’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은 내가 갖고 있는 것만도 너덧 권은 되는데, 제목 때문인지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다른 책을 읽다가 관련된 부분을 발견하거나 필요할 때 부분적으로 읽어보곤 했었는데, 이번 달 모임 책이 [오웰의 장미]로 정해진 터라 작정하고 읽었다. 

 

첫 수록작인 “스파이크”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도 담긴 내용이어서 재회의 반가움 같은 것이 일었다. 주린 배로 종일 거리를 걷고 해질녘이면 노숙보다 나을 바 없는 구빈원 숙소에서 밤을 보내는 런던의 가난한 이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입장의 작가가 이채로웠던 기억과 함께, 이번에는 빈곤 못지않은 “무위”의 고통에 대해 기록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버마 시절의 경험을 담은 “교수형”에서 교수대로 호송되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장면의 묘사는 그 자체를 하나의 유명한 에피소드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게 오웰의 글에서 나왔던 거였나 싶어 새로웠다. 한 사람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행위의 반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본질에 대해 문득 깨닫고 “그리하여 사람 하나가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그만큼 누추해질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곧 아무 문제없이 임무를 완수한 이들이, 나 역시 크게 웃으며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는 듯한 상황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한 “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절대다수인 식민지인들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국주의자의 본질과 운명이 극적으로 드러나는데, 1인칭 화자로서 기술하면서도 자신의 사고와 행위를 객관화하는 냉철함이 ‘오웰스럽게’ 느껴졌다. 

 

모든 에세이가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한 견해와 주장을 담고 있는데, 절반가량은 당대의 전쟁과 관련되고 특히 직접 참전한 스페인 내전 그리고 스탈린의 소련 및 그를 지지하는 유럽 사회주의 세력의 기만과 위선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조지 오웰은 1903년에 태어나 1950년에 세상을 떠났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1차 세계대전과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2차 세계대전이 그의 생애와 겹치고 1936년부터 3년간의 스페인 내전 중 6개월을 직접 경험했다. 생각해 보면 그의 삶에서 평화로웠던 시기는 “정말, 정말 좋았지”의 배경인 세인트 시프리언스 예비학교 입학 이전의 짧은 아동기에 불과했을 것 같다. 표제작인 “나는 왜 쓰는가”에서 밝힌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은 그의 작가적 소명으로 널리 알려진 구절이고, 역자 후기의 발문으로 인용된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는 구절 역시 그의 글쓰기의 단단함을 보여준다. 한편 산문을 쓰는 네 가지 동기로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을 언급한 같은 글에서, 스페인 내전으로 자신이 선 자리를 명확히 인식하기 이전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자작시가 인상적이었다. 조지 오웰이 기반하고 지향한 정치적 글쓰기가 당위적이고 자동적인 무엇이 아니라 작가적 양심과 헌신의 소산이라는 점이 새삼 느껴졌기에 말이다. 

 

조지 오웰이 발표한 수많은 에세이 중 일부를 추려 묶는 일에는 역자의 편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대체로 익숙하게 알려진 작가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읽으며 새롭게 인지하게 된 부분들도 적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인 1939년 8월에 맺어진 독소불가침조약의 함의 그리고 오웰의 사상적 독자성과 면밀성을 보여주는 애국주의와 평화주의 등에 대한 견해가 특히 그랬다. 러시아 혁명과 소련 체제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를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전락시켰는지를, 그럼에도 계급적 대의와 운동의 명분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것들이 눈감아지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는지를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하고 이후에도 변함없는 현실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발언하는 그의 모습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좌든 우든 나의 조국”이나 “영국, 당신의 영국”, “민족주의 비망록” 등에서 내놓는 매우 세심하고 현실적인 분석은 감탄스러웠고, “물론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너무 ‘계몽’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처럼 되느니 그런 식의 훈육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정작 혁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움찔하며 물러서는 이들은 국기를 보고 ‘한 번도’ 가슴이 두근거려본 적이 없는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라는 부분에서는 좀 울컥했다. 

 

이전에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구체적인 사회상의 기초가 되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어서 놓치는 부분들에 생각이 미쳤었다. 배경지식의 부족은 맞는데, 어차피 내가 살지 않은 시공간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기 어렵지만 어떤 글을 잘 이해하고 싶다면 면밀하고 정치한 작가의 글을 잘 읽어내기 위한 독자의 성의와 상상력이 관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 쉴 곳을 찾아서]의 곳곳에 언급되는 공습과 전쟁 연습을 연상케 하는 묘사들을 약간 이례적이라고 느끼면서도 무심히 넘어 갔던 무신경함이 떠올라 살짝 민망해지기도 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조지 오웰의 많은 글들이 양차 대전 사이 빈곤에 처한 이들 그리고 전운이 감도는 사회 분위기를 공통분모로 삼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사회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신 작가가 던져놓은 유머에 낄낄대며 인물과 서사를 따라가기 바빴던 것이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일단 반성한다. 그리고 좀 뜬금없지만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에서 무척 와닿은 한 구절을, 정반대로 살고 있지만 나를 위해 옮겨둔다. “남을 위해서 살 것이면 ‘남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우회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 읽은 조지 오웰의 책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워낙 유명해서 안 읽었지만 읽은 것 같았던 [동물농장]과 [1984]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과 [카탈로니아 찬가], [버마 시절]을 읽고 비로소 조지 오웰에 매료된 후에야 뒤늦게 읽었던 것 같다. 작년에 현암사에서 나온 소설 전집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그의 작품들을 읽고 나자, 몇 년 전 그의 책들을 몰아 읽으며 빠져들었던 기쁨이 떠올랐고 기대하던 [오웰의 장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오웰의 장미]를 읽기 전 이따금 펼쳐보며 묵혀뒀던 이 책을 먼저 읽은 건 잘한 일이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세부 내용은 당연히 희미해졌지만, 연대기 순으로 실려 있는 에세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어렴풋하게 남겨진 책들의 기억과 인상을 환기하고 때로 아주 잊고 있던 것들을 되살려주었다. 역자 후기의 제목인 “언어의 타락과 오늘의 글쓰기”를 방향타로 작가 조지 오웰의 문적을 최대한 담아내려 애쓴 책이라고 느꼈다. 길지 않은 인생, 참 바지런하게 읽고 쓰고 움직이며 살았던 정직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역시나 일신의 안락과 쾌락만 탐하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조지 오웰•이한중 옮김

2010.9.15초판1쇄 2018.11.19초판16쇄 발행, 한겨레출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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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어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