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같은바람2022. 6. 28. 15:46

 

 

부제는 '동네책방 역곡동 용서점 이야기', 그 서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예전 ebs 책방 탐방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전공과 무관하게 책 파는 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7년간 관련 일들을 했다는 저자는 안식년으로 6개월의 자전거 여행을 다녀와 고양시 덕은동에서 첫 번째 용서점을 열었고, 이후 부천시 역곡동에서 두 번째 용서점을 운영 중이라고 한다. 4년차를 맞는 2020년 봄,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궁금해하며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여전히 그곳에서 정겨운 동네사랑방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다 읽고 나니 조금 궁금해졌다.

 

1부 "어쩌다, 서점"에는 덕은동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행을 마치며 바랐던 대로 여행 강연을 하며 생활하던 중 오랜 지인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고, 40평 지하 공간에서 용서점이 시작되었다. 11월 중순에 제안을 받아 12월 한 달 준비하고 1월 초 오픈. 이케아 책장 수십 개를 조립해 1만 권 서가를 마련했으나 자신이 소장한 천오백 권 남짓의 책으로 채우기에는 턱없이 넓은 공간, 얼마 뒤 젊은 날부터 간직한 책방의 꿈을 위해 2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던 지인 아버지의 서가 정리를 필두로 이런저런 인연들의 책을 정리하고 서점을 통해 새 독자를 찾아주는 일이 반복된다. 저자는 매일 점심 시간에 맞춰 수십 권의 책 이야기를 담아 카드뉴스를 전했고, 지인들이 서점의 첫 번째 타겟으로 홍보 대상이자 구매자가 되어주었다고 한다. 온라인 판매가 중심이기는 했지만, 저자 스스로도 '땅 짚고 헤엄치기', '순풍에 돛 단듯'이라고 표현할 만큼 순조롭고 여유로운 서점의 시간은 9개월로 막을 내린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어머니의 병원비와 간병을 위해 덕은동 서점을 닫게 된 것이다.

 

서점을 닫고 취직을 준비하던 저자는 "그만두지 마" 어머니의 완강한 한 마디에 집과 병원의 동선을 고려해 새로운 서점 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역곡동에 둥지를 튼다. 20년간 운영하던 세탁소가 문을 닫은 자리, 운명처럼 그곳은 세탁소가 들어서기 전 '드래곤북스'라는 책 대여점이이었던 곳이었다. 2부 "이상한 동네, 수상한 사람들"에서는 역곡동 용서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어머니 간병으로 오후 다섯 시에야 문을 열고 들쭉날쭉 운영을 했음에도 온라인 판매 중심의 시즌 1과 달리, 서점은 시작부터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에 크게 힘을 입은 것 같다. 동네에 서점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이웃들의 인사가 전해지고, 주인장의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해 아예 오전 시간 서점을 지켜주는 독서 모임이 생기기도 한다. 서울에 초근접한 지역적 조건으로 어린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은 오히려 소외되기도 했던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인접 공간들과의 콜라보를 통해 동네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동안 서점을 오가는 동네 사람들은 점점 늘어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점 초기 저자의 취향이 크게 반영됐던 서가는 동네에서 만난 다양한 이웃들의 의견과 취향을 어느 정도 흡수하고, 서점을 알리고 문턱을 낮추기 위해 입구 매대에 마련했던 "천 원 코너"는 생각지 못했던 독자들과의 인연을 이어준다.

 

3부 "일단 모입시다"의 첫 페이지에는 모임에서 알게 된 순우리말이라는 '운김'('여럿이 함께 일할 때 우러나오는 힘, 사람들이 있는 곳의 따뜻한 기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의미가 마음에 들어 어떤 방식으로든 애용하고 싶은 단어"라는 발문이 실려 있다. 서점에 온기를 불어넣는 모임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서점 주인으로서 저자의 고민과 바람이 많이 담겨 있는 3부의 이야기들에서는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나로서는 언감생심인 저자의 열정이 충분히 느껴졌다. 작가 행사를 거듭하며 저자는 책방 홍보나 신선한 경험보다 중요한 서점의 기초체력을 생각하고 동네 손님들이 주축이 되는 모임을 본격적으로 고민했고, 병원에서 숙식하며 1년을 보낸 후 정부 지원 간병서비스 덕분에 서점에 집중할 시간을 얻게 된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서점을 지키기 시작한 저자는 운명처럼 만난 동네의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단골들과 의기투합해 쓰기, 읽기, 필사 등 여러 모임을 함께한다. 하루 12시간이라니 너무하다 싶지만, 낮에는 책을 팔고 오후에는 모임으로 서점의 힘을 키워가는 일상이 종일 한곳에 매이는 자영업자의 고충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이상적인 리듬'이라고 적고 있다. 대체로 긍정적인 면을 부각한 모임과 서점에 대한 기록들이 따뜻하고 편하게 읽혔는데, 물론 굳이 적지 않은 이면들도 있을 테고 용마켓 등 실패한 시도에 대한 기록도 있기는 하지만, 책을 매개로 만난 이웃들과의 다정하고 정겨운 이야기들이 가득한 건 어느 정도 저자의 성정 덕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장차 책방이 될 공간에서 처음 읽은 책이다. 2주 전 용달로 책장과 책상, 식탁, 의자, 엄빠네를 거쳐 영등포를 거쳐 통영까지 따라온 오래된 서랍장, 20년이나 쓴 냉장고에 책장 하나 채울 만큼의 책들을 먼저 옮겼다.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아니고 당장 책방을 열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책들은 집에 두고, 여행 책방 통영에 관련된 책들과 오래된 문학 서적 등을 나름 심사숙고해 내보냈다. 너무 습한 날씨가 계속되니 벌써 책들이 흐물흐물해지고 표지가 말리기도 해서, 책방을 한다는 건 미처 몰랐던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여름은 긴 준비 기간이 될 테지만 7월 1일부터는 휴무일로 정한 월화를 빼고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나가기로 했기 때문에, 언젠가를 위해 사두기만 한 책방에 관한 책들을 한 권씩 읽으려 한다. 몇 년 전부터 책방 관련 책들을 주섬주섬 사모으며 가끔 읽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모든 게 사람에 달렸다는 성급하고 안이한 결론이었다. 나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방식대로 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삶을 통해 깨닫고 돌아보며 아주 조금씩은 내가 원하는 내 모습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건 중요한 것 같다.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게 관건인 것 같은데, 책을 읽는다고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 노력마저 않기에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읽기는 읽어야겠지.

 

책을 읽는 시간은, 드물게 무척 불쾌하고 억울하고 짜증스러운 마음을 달래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날 설치한 냉난방기 작동이 이상해서 기사님께 전화드렸더니 다시 들른다기에 시간 맞춰 나갔다가, 설치할 때와는 완전히 돌변한 짜증스럽고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에 적잖이 충격을 먹었다. 시간이 갈수록 설정온도와 멀어지는 냉난방기 본체의 표시온도와 실내온도에 대해 물었는데, 마치 인버터 방식이 지난달쯤 개발된 신기술인 양 강조하며 내가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면서 나로서는 기계 결함이든 설치 불량이든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뽀개고 그는 떠났다. 두어 시간 냉난방기를 작동시키며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설정한 제습모드 26도와 아랑곳없이 냉난방기 본체의 표시온도는 19도까지 떨어지고 실내온도는 반팔로 견디기 힘들 만큼 내려갔다. 인버터 아니라 인버터 할아버지라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무례하고 제멋대로인 기사와 다시 소통하고 싶지 않아 일단 가게를 나섰다. 덕분에 "낮 12시, (미래의) 책방 문을 엽니다"의 첫날이 될 7월 1일의 핵심 업무는 냉난방기 작동 관찰 및 판매한 총판 사장님과의 통화가 될 예정이다.

 

집에 와서도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짜증이 가시지 않은 걸 느끼며 그동안 내가 참 곱게 살았구나 자위하며 잊기로 했는데, 직후의 충격을 완화시켜준 이 책에도 약간의 고마움을 전해야 할 것 같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곡동 용서점은 얼마 전 문을 닫았고 원미동 용서점이 근래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옮겨간 사연은 알 수 없지만 부천에서의 책방을 이어가는 걸 보면 저자에게는 좋은 곳 좋은 일인 모양이다. 책을 읽으며 한참 전 4년간 살았던,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보니 나름 화양연화였던 나의 부천 시절에 대해서도 잠시 떠올렸다. 이 역시 고마운 일이다. 

 

 

박용희
2020.5.1초판1쇄인쇄 5.8발행, 꿈꾸는인생




'비밀같은바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0) 2022.07.17
[작별인사]  (0) 2022.07.16
[내 마음의 도서관 비블리오테카]  (0) 2022.06.25
[김약국의 딸들]  (0) 2022.06.07
[그림으로 나눈 대화]  (0) 2022.06.05
Posted by 나어릴때